[현장칼럼] 갑진년 `대만 선거` 지구촌 달군다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올 해는 지구촌 곳곳에서 선거가 열린다. 한국, 미국 등 전 세계 약 76개국에서 굵직한 선거가 줄을 잇는다. 인구로 치면 최소 42억 명이 투표소로 향한다. 가히 '슈퍼 선거의 해'다.
새해 벽두 지구촌 선거의 첫 스타트는 대만이 끊는다. 다음 주 13일 2300만명 대만 국민의 새 지도자가 선출된다. 대만 총통 선거 결과에 따라 넓게는 국제정치 지형이 요동칠 수 있고 좁게는 세계 반도체시장의 판도가 새로 짜일 수 있다. 나아가 우리 반도체 업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만 선거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대만의 정치지형은 다소 복잡하지만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집권당인 민주진보당이 있다. 청나라 시절부터 대만 원주민을 밀어내면서 일찌감치 타이완 섬에 터를 잡은 본성인이 주 지지층이다. 이들은 독립과 친미를 지향한다. 또 이에 맞서는 제1야당인 국민당이 있다. 이들의 지지기반은 국공내전 패배 이후 대륙에서 넘어와 외성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로, 공산당을 적대시하지만 언젠가 대륙과 통일되는 꿈을 꾸고 있다. 대만 중심의 통일을 지향한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친중적이라는 평가다. 그외 유력 정당으로 대만민중당이 꼽힌다. 2019년에 창당한 민중당은 민진당과 국민당의 독주를 막고 제 3의 길을 내세운다.
이들이 한판 승부를 걸고 있는 1·13 선거는 특히 미국과 중국의 대리전 양상을 띤다. 대만해협을 두고 미중 파워가 격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 3대 국제수송로이자 동아시아의 전략 거점인 대만해협을 중국이 장악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반면 중국은 독립 성향의 집권당 후보가 당선되면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2016년 들어선 차이 총통 정부와 일체의 접촉을 끊은 후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친중 총통을 세우겠다는 의지다.
선거를 일주일 여 앞둔 지금, 독립·친미 성향 집권당 후보의 안정적 지지세가 확인되고 있다.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국민당 후보를 11%포인트(p) 이상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이어 나온다. 여당의 재집권 가능성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럼에도 속단은 이르다. 지지율 3위에 머물고 있는 민중당 후보가 전략적 선택으로 정권 교체를 주장하면서 '대만판 안철수' 역할을 선택한다면 판세는 국민당 승리로 귀결될 수도 있다.
선거전 레이스에서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의 이력도 눈길을 끈다. 그는 국립 대만대 물리치료학과와 미 하버드대 공공위생학과 석사학위를 받은 의사 출신이다.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는 중앙경찰학교 출신이다. 이 두 라이벌의 대결구도도 흥미롭다. 민진당 정권이 계속되면 양안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덩달아 조 바이든과 트럼프 간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반중국 경쟁은 더욱 심화할 수 있다. 민진당 라이칭더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하면 중화민국을 지키지 못한다고 일찌기 선언한 바 있다. 반면 국민당 허우유이가 승리하면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은 더 노골화 양상을 띨 것으로 예측된다.
어찌됐든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로서는 대만 선거가 남의 일 같지만은 않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TSMC를 비롯한 대만 테크 산업도 요동칠 것 같다.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디리스킹' 전략에 따라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만선거는 이래저래 우리에겐 또다른 시험대다.
정부는 누가 대만의 총통이 되든 주요 후보의 공약과 성향을 파악하고 예상되는 정책을 미리 대비해야 할 것이다. 어떤 변수가 생겨도 다가올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 전략이고 생존법이다. 우리나라도 4월에 총선을 치른다. '정치가 던지는 위험'이라는 책을 펴낸 에이미 제가트 스탠퍼드대 정치학 교수는 "2024년은 앞으로 인류의 역사를 결정짓는데 매우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24년 세계는 어디로 갈까. 이번 대만 선거에 촉각이 곤두서는 이유다.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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