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전쟁 수단 아닌 평화의 사도여야
[왜냐면] 고승우 | 80년5월민주화투쟁언론인회 대표·언론사회학 박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끔찍한 양상으로 진행하면서 전쟁에 대한 언론의 보도, 전쟁 저널리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전쟁을 벌이는 당사국에게 적군은 악, 불의이고 아군은 선, 정의로 단순화된다. 적의 적은 동지이며 동맹은 최상의 가치로 칭송된다. 전투 현장에서 벌어지는 살인은 애국 행위로 칭송된다. 이를 보도하는 전쟁 저널리즘은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데 기여하는 것 등을 보도 윤리로 삼고 있지만 현실은 간단치 않다.
전쟁 상황에 대한 언론 보도는 전쟁 당사국 등의 이해관계와 직결하면서 갖가지 보도 통제, 심한 경우 언론 보도 억제를 노리는 수법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전쟁 보도는 전쟁 당사국의 공식 발표에 의존하거나 전쟁터의 참상과 비극을 전달하는 비중이 커진다. 전쟁이 시작하면 검열을 하거나 당사국은 언론을 수단으로 삼아 적에 대해 심리전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아 언론이 전쟁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기도 한다. 피아를 구분치 않는 보도가 어려워지고 언론도 전쟁 수행의 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벌어지는 반인륜적 참상이, 열악한 취재환경 속에서 시시각각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있지만 유엔 등 국제 사회가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이스라엘은 지난 10월7일 하마스의 공격으로 1200여 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인질로 잡힌 것을 강조하며 공격을 정당화한다. 팔레스타인 쪽은 다른 논리를 내세운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하면서 발생한 사태가 원인으로 분쟁의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주장 가운데 어느 쪽을 주목하고 정당화하느냐에 따라 언론 보도도 크게 달라진다. 전쟁은 인간의 이성적, 합리적 사고나 판단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가자지구나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전쟁 당사국이나 이해관계가 큰 쪽에서는 전투 현장에 대한 접근 통제는 물론 전쟁의 명칭 등 보도 용어를 문제 삼거나 일방적 주장의 목소리를 높이는 등 언론 보도에 예민하다. 전쟁 당사국들은 진위 여부를 쉽게 가릴 수 없는 프로파간다(선전·선동)를 유포해 자신을 방어하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언론의 입지도 좁아진다.
서구 언론은 전쟁 당사국의 눈치를 살피는 과정에서 전쟁 지휘부가 발표하는 사항을 받아쓰는 일을 중요시하게 되고 취재 편의, 객관성 등을 내세워 중동 지역 출신 언론인을 앵커 등에서 배제하는 내부 통제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전쟁의 원인, 그 타당성이나 합리성 등에 대한 보도보다는 전투 현장 상황에 대한 보도의 비중이 커지기 마련이다. 이는 전쟁 저널리즘이 처하게 되는 일반적 과정의 하나다.
최근 벌어지는 두 개의 전쟁처럼 전쟁 당사자들은 전쟁 수행 과정에서 아군의 정당성, 적군의 전쟁 범죄를 부각시키는 방편으로 언론을 이용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자신들이 행하는 군사적 행동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기 위한 정보만을 언론에 제공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언론의 입장에서 상업적인 뉴스 가치와 사실관계나 진실 확인 등을 놓고 고민하지만 결국 언론사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 태도가 결정된다.
전쟁 보도가 포격이나 공습 등이 벌어지는 전투 현장의 영상 등을 중시하면서 전쟁 자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전쟁 당사자들이 번갈아 가해자, 피해자가 되는 식의 공방전을 보도해 전쟁 참상을 널리 알리고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크게 할 수 있다. 동시에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전쟁 당사자의 일방적 주장뿐 아니라 제3자의 객관적 입장 등을 소개할 때 이를 언론이 보도하면서 근본적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전쟁은 일단 발생하면 전시 총동원 체제가 되면서 국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는 점에서 전쟁 예방을 위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 상식이다. 일단 전쟁이 발생할 경우 언론이 전쟁의 한 수단으로 전락·기능하는 것은 역사에서 반복됐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전쟁은 흔히 정치의 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은 제4부로서 평화를 유지하고 그 질을 높이려는 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한반도의 경우 가자지구처럼 바다와 대륙에 갇힌 형국으로 전쟁이 날 경우 그 피해가 극심할 것이라는 점에서 언론이 평화의 사도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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