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느라' 들었어요…2023년, 나의 근무일지 4곡 [MD칼럼]
[강다윤의 카페인]
길을 걷다가 우연히,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자연스럽게. 때로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신곡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다가. 차곡차곡 쌓아둔 플레이리스트 외에도 일상에서 노래를 들을 일은 많았다.
그리고,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일하느라' 들은 노래들도 있다. 발매 전 신곡 소개 기사를 써야 해서,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프레스 쇼케이스 무대를 지켜보다가, 휴일에 노트북을 짊어진 채 콘서트에 갔다가.
때로는 아직 세상에 나오기도 전인 곡을 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명곡을 다시 듣기도 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그렇게 '일하느라' 들었음에도 기억에 남고 마음에 들었던 곡을 꼽아봤다. 노래를 듣게 된 날짜 순으로.
▲ 2023년 5월 13일 들었던 조용필의 '비련'.
쉬는 날 노트북을 챙겨 들고 잠실주경기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보게 된 조용필의 단독 콘서트 '2023 조용필&위대한 탄생 콘서트'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이 있었다. 조용필을 멀리서나마 본 것도, 조용필의 노래를 직접 들은 것도, 조용필의 콘서트를 관람한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그렇지만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래서 가왕(歌王)이구나, 이 사람이 가왕(歌王)이구나. 시작과 동시에 하늘을 가득 채운 불꽃, 돌출 하나 없음에도 잠실을 꽉 채우는 존재감, 쩌렁쩌렁한 가창력, 짧은 멘트 뒤 말 그대로 휘몰아치는 무대까지. 그대로 조용필에게 휩쓸려 순식간에 2시간이 사라졌다. 압도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조용필이 "기도하는"이라 입을 열었을 때 전율에 휩싸였다. 당연하다는 듯이 "꺄악"하는 함성이 따라왔다.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했던 전설적인 '비련'의 첫 소절을 직접 들은 것이다. 3만 5천 관객, 어두운 밤 반짝이는 응원봉, 저 멀리 조용필이 서있는 무대와 조명이 어우러져 더욱 심장을 뛰게 했다. 역사의 한 순간에 있는 기분이었다.
▲ 2023년 6월 16일 들었던 에이티즈의 '바운시'.
에이티즈의 미니 9집 '월드 에피소드 2 : 아웃로우(THE WORLD EP.2 : OUTLAW)' 발매 기념 쇼케이스가 열렸지만 가지 못했다. 마음대로 일정을 가는 것은 아니니 K-직장인답게 '칼퇴'의 기쁨을 누리기로 했다. 대신 쇼케이스 다음날, 오후 1시 발매되는 타이틀곡 '바운시(BOUNCY) (K-HOT CHILLI PEPPERS)'의 신곡 소개 기사를 쓰게 됐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클릭하자마자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비트가 너무 '맛'있었다. 카우보이 홍중이 마라의 세상에서 '청양고추'를 외칠 때 몸이 들썩였다. 민기가 자신의 이름을 넣은 랩 파트도 너무 좋았다. 직설적이고 꾸밈없는 외침이 화끈했다. 귀에도 입에도 착착 달라붙었다. 유쾌하고 재치 넘치는데 재밌기까지 했다.
뮤직비디오 속 에이티즈가 '기차놀이'와 '림보' 안무를 펼칠 때 무대를 봤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듣고 눈으로 담고 싶은 욕심이 나는 곡이었다. 뒤늦게 미디어 쇼케이스 영상을 찾아보며 아쉬움을 삼켰다. 그 마음을 '바운시(BOUNCY) (K-HOT CHILLI PEPPERS)' 음원 다운로드로 달랬다. 보라색 앨범과 함께 홍중의 포토카드를 품에 안은 것은 덤이다.
▲ 2023년 8월 21일 들었던 악뮤의 '후라이의 꿈'.
무더운 여름, 악뮤의 네 번째 싱글 '러브 리(Love Lee)'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지하철을 타고 합정역에 내리자 기자간담회가 열리는 YG엔터테인먼트 신사옥이 유독 멀고도 멀게 느껴졌다. 더위에 지친 건지, 일에 지친 건지, 피로에 지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부지런히 노트북 자판을 두드릴 때 들린 '후라이의 꿈'이 위로처럼 다가왔다. 지금 닥친 상황에 꼭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난 차라리 흘러갈래'라는 가사가 반가웠다.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고민 하나 없이 퍼져 있는' 계란 프라이이고 싶은 게 나뿐만은 아니라서.
밝고 경쾌하고 발랄한 '후라이의 꿈'은 한동안 출근송이 됐다.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후라이'의 이야기를 흥얼거렸다. '일하느라' 들었던 곡이지만 버겁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일상을 파고들어 마음을 달랬다. 끝없는 생각과 고민 속에서 혼자만의 한숨이 아니라고 말해준 곡.
▲ 2023년 11월 16일 들었던 빅스의 '암네시아'.
미니 5집 '컨티뉴엄(CONTINUUM)' 발매를 앞두고 빅스의 라운드 인터뷰가 있었던 날, 타이틀곡 '암네시아(Amnesia)'가 아주 짧은 순간 귀를 사로잡았다. 빅스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4년 2개월 만의 신보에 기대했을 점을 충족시키면서.
'암네시아(Amnesia)'의 몽환적인 보컬과 중독성 있는 기타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빅스가 있다. 다만 한층 보컬이 깊어지고 감정선이 무르익었을 뿐이다. 특유의 컨셉추얼함도 뱀파이어나 늑대인간 등 직관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뮤직비디오에서 풀어내며 놓치지 않았다. 매혹적인 빅스의 색을 유지하면서 신선함을 더하는 데 성공했다.
레오, 켄, 혁 세 사람뿐이지만 빈자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뚜렷한 성장과 단단한 결속이 있었다. 무엇보다 데뷔 11주년을 맞은 이들이 연속성을 노래하며 '빅스'로서 무한한 여정을 그리는 것이 빛났다. '별빛' 아래 낭만과 오랜 시간 함께한 현실 그 사이를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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