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한창완 법무법인 태평양 국제규제·분쟁대응연구소장 | 중국 법원은 어떻게 전 세계 표준특허와 통상에 영향을 미쳤나
무역의 증가와 기술 발전으로 세계는 연결된다. 새로운 기술이 계속 등장하고 있어 다양한 제품이 국경을 넘어 원활히 교역되려면 일정한 기술 표준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제조한 제품과 미국에서 제조한 제품 간에 사용한 기술이 다르다면 이 제품 간에 서로 의사소통하거나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품이나 서비스 간에 일정한 규격을 정하는데 이를 표준이라고 한다.
이 표준을 준수하기 위해 꼭 사용해야 하는 기술에 관한 특허를 ‘표준특허’ 또는 ‘표준필수특허(SEP·Standard Essential Patent)’라고 칭한다. 기업은 특허가 있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표준에 부합하는 제품을 생산할 수 없고, 표준을 따르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허권자로부터 허가(실시권)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5G(5세대) 통신에 관한 표준특허를 가진 우리나라 삼성전자와 LG전자, 중국의 화웨이 등 특허권자의 허가를 받고 그 특허에 따른 기술을 사용해야만 5G 표준을 준수한 휴대전화나 태블릿 PC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언론이 자주 보도한 삼성전자와 애플 간 미국 특허소송 역시 표준특허를 둘러싼 분쟁이다.
그런데 국제표준화기구(ISO)는 표준을 준수한 제품이 널리 생산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특허권자로 하여금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건으로 비차별적으로 기술 실시를 허용하도록 한다. 이를 프랜드(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조항이라고 한다. 실시권자인 기업은 FRAND에 따른 합리적인 실시료를 특허권자에게 지급하고 그 기술을 사용해 표준을 준수한 제품을 생산해 판매할 수 있다.
여기서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특허는 각 국가에 개별적으로 등록하고 그 국가에서만 효과가 있는 반면, FRAND에 따른 실시(사용)료는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보통 전 세계적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정해진다. 특허권은 이를 등록한 국가에서 효력을 가지고, 특허권자는 특허를 침해한 자를 상대로 개별 국가의 법원에 특허침해 금지나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한다. 특허를 침해한 제품이 여러 국가에서 사용됐다면, 특허권자는 여러 국가에서 모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이에 반해 FRAND에 따른 실시료가 정해지면 이는 전 세계적으로 효과가 있는데, 여러 국가의 법원이 모두 실시료를 정하는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특허권자 A는 자신에게 유리한 국가의 법원에 소를 제기하고, 상대방 B는 실시권자에게 유리한 국가의 법원에 소를 제기함으로써, 동일한 FRAND 실시료를 둘러싸고 여러 국가의 법원에 병행 소송이 존재할 수 있다. 만약 양 법원이 각기 다른 금액의 실시료를 정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분명하지 않다.
이처럼 국내적 특성이 있는 특허권과 초국경적 특성이 있는 FRAND의 성격 차이와 FRAND에 관한 여러 국가 법원의 관할권 행사 가능성에 따른 병행 소송 진행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법적 절차 중 하나가 ‘소송금지명령’이다. 소가 제기된 법원이 당사자 일방의 신청에 따라 상대방이 다른 국가에서 소송이나 집행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다른 국가 법원에서 병행 소송이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소송금지명령 적극 발령하는 中 법원
최근 중국 법원이 소송금지명령을 적극 발령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최초 사례가 화웨이와 컨버전트(Conversant) 간 분쟁이다. 미국 기업 컨버전트는 노키아로부터 2G, 3G 및 4G 표준특허를 양수했고, 영국, 독일 등 여러 국가의 법원에 화웨이를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독일 법원은 화웨이에 특허침해 제품의 판매, 사용 및 수입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와 별도로 화웨이는 중국 법원에 소를 제기했고, 중국 법원은 컨버전트에 중국 소송이 완료될 때까지 독일 법원의 결정을 집행하지 말고, 위반 시 매일 100만위안(약 1억8000만원)의 벌금을 납부하라는 소송금지명령을 내렸다. 그 이후 중국 법원은 샤오미, ZTE, 오포(OPPO) 등이 특허권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특허권자로 하여금 중국 이외 지역에서 소를 제기하는 것을 금지하면서 이를 위반하면 벌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소송금지명령을 했다.
미국, 영국 등 다른 국가의 법원 역시 소송금지명령을 내리지만, 중국 법원의 결정은 특정 국가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의 소송을 금지하여 그 범위가 넓고, 막대한 벌금도 부과했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중국 법원이 광범위하면서도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는 소송금지명령을 내리자, 특허권자와 실시권자는 실시료를 합의하여 관련 소송을 종결했다.
중국 법원의 결정으로 인해 특허권자와 실시권자 사이에 새로운 균형이 발생하고 결국 합의에 이르렀는데, 이런 내용의 소송금지명령을 받은 입장에서는 막대한 벌금을 납부할 위험을 무릅쓰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중국 법원이 광범위하고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는 소송금지명령을 수차례 내리자, 유럽연합(EU)은 중국이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Trade Related Intellectual Properties)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분쟁 해결 절차를 개시했다. 그동안 미국, 영국 등 법원이 사기업 간 분쟁에서 소송금지명령을 내리더라도 WTO 분쟁 해결 절차가 개시되지 않았지만, 중국 법원의 광범위한 소송금지명령이 결국 통상분쟁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중국 법원의 소송금지명령은 특허권자와 실시권자 간 관계와 국가 간 통상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WTO 분쟁 해결 절차에서 내려지는 결론에 따라 그 관계가 다시 변할 수도 있다.
앞으로도 신기술은 등장하고, 표준을 취득하기 위한 기술 혁신 경쟁도 계속될 것이다.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기 위해 표준특허가 부여된 기술을 사용하고, 그에 따른 분쟁이 여러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가능성도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기업 중에는 표준특허를 가지면서 동시에 다른 기업의 표준특허를 실시해야 하는 양면적 성격을 가진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그 대응 방안을 일률적이고 추상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다. 결국 개별 사안에서 특허 내용과 성질, 상대방과 관계, 관련 국가의 실무적 태도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다소 상투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기업은 여러 국가의 법원에서 소송금지명령이 활용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구체적 사안에서 필요하다면 이를 스스로 활용하거나 상대방이 이를 활용하는 것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keyword
표준필수특허(SEP)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수립한 표준규격을 준수하기 위해 필수로 사용되는 기술에 관한 특허
프랜드(FRAND)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이란 용어의 약자.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한 특허권자는 FRAND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에 따라 특허 사용을 협의해야 한다.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
특허권, 의장권, 상표권,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에 대한 WTO 차원의 다자간 규범. 지식재산권에 대한 국가 간 보호가 무역 마찰의 주요 쟁점이 됨에 따라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주요 의제로 논의돼 1995년에 발효된 WTO 협정의 부속 협정으로 채택됐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