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욱의 밀리터리 밸런스 <18>] 북한의 군사 정찰위성 발사와 9·19 군사합의 파기
북한은 2023년 11월 21일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발사했다. 발사는 오후 10시 42분, 기습적으로 실시했다. 위성을 탑재한 ‘천리마-1’호 우주발사체는 약 11분 45초를 비행해 위성을 지구 저궤도로 올렸다. 5월과 8월 두 차례 발사 실패 후 세 차례 만에 드디어 발사에 성공했다. 북한은 정찰위성 발사가 자위권 강화를 위한 합법적 권리이며, 전쟁 준비 태세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는 자위권은커녕, 핵 공격을 위한 준비 단계다.
정찰위성의 전략적 의미
사실 북한이 발사한 만리경-1호 위성은 우리 기술로 보면 민간 위성에도 못 미치는 한심한 수준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 위성의 광학센서로는 일본제 DSLR 카메라가 장착됐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는 1차 발사 때 추락한 위성을 인양해 확인한 결과로 보인다. 일본제 DSLR을 채용했다는 뜻은 우리가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캐논이나 소니 같은 제품을 광학센서 대신 장착했다는 말이 된다.
이렇게 DSLR에 망원렌즈를 물려서 지구 저궤도에서 촬영하면 해상도는 3~5m 정도다. 해상도에서 얘기하는 길이는 바로 픽셀 하나의 크기다. 즉 그림을 구성하는 작은 점 하나가 3~5m라는 뜻이다. 통상 차량의 형태를 구별하려면 해상도가 30㎝ 정도, 만에 하나 차량 번호판 비슷한 것이라도 식별하려면 해상도는 15㎝ 이하가 돼야 한다.
그래서 현재 군사용으로 사용하는 위성은 해상도가 15~30㎝다. 해상도가 3~5m라면 지상의 차량은커녕 커다란 여객기도 식별하기 쉽지 않고, 커다란 지형지물을 식별할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1999년 올렸던 우리별 1호 위성의 해상도가 6.6m급이었다. 한마디로 우리보다 20년은 기술적으로 뒤처져 있다. 하지만 해상도가 뒤떨어져도 북한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어떤 건물을 공격할지를 고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의 정찰위성 획득은 한반도 지형지물의 독자적인 촬영 능력을 의미한다. 위성 발사에 성공한 후 김정은이 며칠 동안 매일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북한 위성이 전술적 정보 수집에 별다른 기능을 못 해도, 핵 타격을 위한 전략적 표적을 파악하는 데 도움만 줄 수 있어도 북한 입장에서는 충분하다. 그래서 김정은은 위성 발사를 놓고, ‘만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기존의 핵미사일)’과 함께 ‘만리를 굽어보는 눈(정찰위성)’을 보유하게 됐다고 만족을 표시했다.
우주발사체와 북·러 협력
정찰위성만큼이나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위성을 우주 공간으로 올린 천리마-1호 로켓이다. 사실 북한이 1·2차 발사에 실패했던 것은 바로 로켓 때문이었다. 천리마-1호는 애초에 화성-15호에서 사용된 ‘백두산 혁명엔진’을 그대로 채용하고 있는데, 사실상 화성-15 ICBM을 위성 발사에 맞게 외양만 개조한 것이다.
2023년 5월 31일의 1차 발사 실패는 2단 점화에 실패한 것이고, 덕분에 우리 군은 잔해를 모두 수거하여 북한의 능력을 분석할 수 있었다. 8월 24일의 2차 발사 때는 3단 분리 후 실패라고 북한이 발표했다. 위성 발사는 사실상 ICBM의 정상 각도 발사로 볼 수 있는데, 거칠게 말하자면 천리마-1호는 화성-15 ICBM의 정상 각도 발사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3차 발사는 명백한 성공이었다. 사실 여기에는 뚜렷한 변경이 있었다. 천리마-1호의 1단 로켓이 화성-15의 것 대신, 화성-17의 것으로 바뀌었다. 화성-17은 화성-15보다 두 배나 강력한 추력을 갖는다. 즉 여태까지의 발사 실패가 추력 부족에 의한 것으로 판단하고 로켓을 교체했다는 말이다. 아마도 1차 발사 실패 이후부터 1단 교체를 준비해 왔을 것이고, 2차 발사 때 적용되었는지는 미지수지만, 3차 발사 때는 드디어 완성된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발사 성공은 결국 화성-17 ICBM의 정상 각도 발사 시험의 성공을 의미한다.
한편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수정하고 발사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 스스로의 힘만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실제로 북한의 위성 발사 직후 축하 사진에서 러시아인의 존재가 확인됐다. 김정은은 9월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푸틴과 만나 우주 협력을 약속받았었다. 11월 발사 때까지 러시아가 하드웨어를 직접 지원하기는 촉박했겠지만, 우주 전문가를 파견하여 정확한 위성 발사 데이터를 계산하고 발사체를 검증하여 위성 발사를 성공시키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실 하드웨어보다 중요한 것이 발사 데이터와 경험이고, 미국 다음으로 경험이 풍부한 러시아는 북한에는 매우 유용한 후원자다.
우리 정부 대응과 북한의 9·19 군사합의 파기
북한이 위성을 가지고 핵 공격 준비에 활용할 것은 너무도 명백히 예측될 수 있는 일이었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면 9·19 군사합의 가운데 일부 조항을 중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9·19 군사합의 전체를 파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행 금지 조항만을 중지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9·19 군사합의를 무려 3600회 이상이나 위반하면서 마음대로 행동해왔지만, 정작 이런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한 항공 정찰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하자, 우리 정부는 부득불 9·19 군사합의 1조 3항 비행 금지 구역에 대한 효력 정지를 발표했다. 그러자 북한은 즉각적으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발표했다. 합의 파기를 발표하자마자 북한은 곧바로 GP(경계초소)로 중화기를 반입했다. 애초에 파기되어서 없어졌어야 할 GP가 멀쩡히 기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게다가 이렇게 북한이 즉각적인 합의 파기를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에 9·19 군사합의가 애초에 중요한 제한 사항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북한으로서는 9·19 군사합의를 한국이 준수하고 있는 상황이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유리했지만, 북한은 자국에 큰 이익이던 비행 금지 구역이 무효화되자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전격 무효화를 발표한 것이다.
북한은 이후 모든 비난을 한국 정부에 돌리기 위해 다양한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GP의 중화기 도입은 시작일 뿐이고, 전연군단에 전술핵무기와 운용부대를 배치하면서 긴장을 높일 것이다. 최초에는 접경 지역의 부대 이동에서부터 총격, 무인기의 영공 침범 등을 수행해 우리의 대응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면서 약한 수준에서 점차 강도를 높여갈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민·군 협력이 중요
2024년에는 대한민국의 총선과 미국 대선이 겹친다. 북한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도발 강도를 높일 것이 명백한 한 해다. 특히 북한은 9·19 군사합의 파기 책임을 우리 정부에 미루고 국내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수준의 도발을 가해올 것이다. 9·19 군사합의가 엄청난 평화의 기제였던 듯 포장하면서 보수 정권의 잘못으로 돌릴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9·19 군사합의는 운용적 군비 통제였다. 그리고 검증 없는 군비 통제는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 허상으로 우리 안보를 뒤흔들고 대북 경계 태세를 허문 이들은 누구인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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