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흔들리는 美 리더십…증가하는 글로벌 무질서의 위험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의 2023년 9월 통계에 따르면, 세계 무역금융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5.8%로 1년 새 1.6%포인트 늘어 유로화(5.4%)를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랐다. 미국이 2018년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시장에서 위안화의 입지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글로벌 경제 구루(guru·권위자)들 사이에 적잖은 화제가 됐다. 미국의 무역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쌓은 영향력을 발판으로 위안화 무역 결제를 확대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원유 거래에 위안화 사용을 용인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미국 주도의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당한 러시아가 자국산 원유를 위안화로 거래하는 우회로를 찾은 것도 위안화의 위상 강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중국은 브라질과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를 확대하기로 하는 등 브릭스(BRICS) 국가 등을 통해 미국의 견제를 뚫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브릭스는 2024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6개국을 회원국으로 맞이하는 등 세력 규합에 나서고 있다. 필자는 그러나 달러 패권 등 서방 주도의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현실이 중국 등이 추구하는 대안적 질서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 국제 무질서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방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 약화가 글로벌 경제 리스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2023년 서방 주도의 세계경제 질서는 좋지 않았다. 놀랍게도 주요 원인은 일부에서 예상했었던 중국이 주도하는 대안적인 국제 질서 출현이 아니다. 서방 주도 세계경제의 효과와 정당성에 대한 의심이 내부적인 갈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새로운 국제 질서가 출현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서구 주도의 질서에 대한 대안을 구축하여 자립하기로 함에 따라 세계경제는 분열이 심화되고 미국의 리더십 역할이 약화되며, 시스템 전반의 무질서로의 전환이 가속화될 위험이 있다.
사실 2023년 훨씬 이전부터 서방 경제 질서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지난 15년 동안 서방 경제 질서는 일련의 정책적 실수로 인해 신뢰성과 원활한 기능이 약화됐고, 일련의 혼란이 발생했다. 여기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무역·투자 제재의 무기화, 코로나19 백신의 불균등 배포, 인플레이션을 ‘일시적’이라고 잘못 규정한 중앙은행의 공격적 금리 인상이 초래한 결과 등이 포함된다.
다자주의 체제는 기후변화와 글로벌 사우스의 막대한 부채 같은 긴급한 글로벌 도전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더욱 약화되었다. 이러한 압박이 심화되면서 서방이 주도하는 국제기구는 점점 더 비효율적이고 포용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023년에는 두 가지 사건이 서구 주도의 질서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첫째,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러시아의 ① 국제은행간통신협회(스위프트) 국제 결제 시스템 사용을 제한하고 석유 수출 가격을 제한하는 등 표면적으로는 숨 막히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활발한 무역 관계를 유지해 왔다. 러시아 기술자들이 고안한 임시 무역 및 결제 체계는 비용 효율적이지 않지만, 러시아는 이를 통해 국내 경제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게다가 서방의 제재를 우회하려는 노력으로 러시아는 점점 더 많은 국가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다(아직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이지만). 제재 체제의 제한적인 성공으로 인해 전 세계 국가가 서방이 주도하는 경제 질서의 일부가 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약화했다. 둘째,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서 미국의 역할은 다수 국가에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겠다는 서방의 공허한 약속과 일관성 없는 국제법 준수의 실체를 드러냈다.
필자는 최근 가자 지구 여행 동안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경고했던 비전투원 보호 부족, 보건 시스템 붕괴, 유엔의 인도주의 활동가들의 기록적인 사망자 수, 광범위한 기아와 질병, 시민 무질서, 민간인의 대량 이주 등 임박한 위협을 반복하는 많은 이를 만났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인정했듯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은 10월 7일(이하 현지시각) 하마스의 이스라엘 국민 대량 학살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하며, 이스라엘은 국제적 지지를 잃고 있다. 가장 최근 유엔 총회 휴전 촉구 결의안 표결에서 153개국이 찬성하고 10개국만이 반대했으며 23개국이 기권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무시하고 수천 명의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을 폭격할 수 있는 면죄부를 허용한 것에 대해 개탄하는 국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현재 가자 지구의 상황을 “지상의 지옥”이라고 반복해서 비유한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의 필립 라자리니 집행위원장의 경고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가자 지구의 인도주의 위기가 계속 악화되는 가운데 몇몇 국가는 미국이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제지하지 않음으로써 의도치 않게 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이 가자 지구의 인도주의 휴전을 촉구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지 하루 만에 의회를 우회하여 이스라엘에 더 많은 군사 지원을 제공하기로 한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은 이러한 인식을 더욱 강화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입장에 관계없이, 이러한 상황은 서구 주도의 국제 질서의 효율성과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세계경제의 단극화에서 다극화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위험이 있다. 중견국들이 세계 무대에서 점점 더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서방에 동조하는 소규모 국가들이 ②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가 될 가능성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서방 강대국들은 이러한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이미 발생한 피해를 되돌리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정치 지도자들은 기존의 다자간 구조를 강화하여 추가 분열의 위험을 완화하고 국제적 무질서로의 급속한 추락을 막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시작으로 주요 기관의 과거 개혁 이니셔티브를 재활성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며 주요 초점은 의견과 대표성, 서구 이익에 부합하는 구시대적 임명 절차의 폐지, 운영 절차의 현대화에 맞추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세계를 잘 섬겨온 서구 주도의 질서에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국제 체제가 실패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체제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글로벌 무질서가 초래될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단기적으로 모두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복잡하고 증가하는 장기적 도전에 대처하는 우리의 집단적 능력을 저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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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① 스위프트(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s)는 전 세계 1만1000여 개 금융기관이 금융 거래를 주고받는 전산 시스템으로, 1973년 미국, 유럽의 약 230개 은행이 은행 간 자금 이동 및 결제를 위한 데이터 통신 시스템 설치·운용 목적으로 결성한 협동조합으로 출발했다.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2022년 2월부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은행들을 SWIFT 결제망에서 배제하고 있다. SWIFT 결제망 접속이 차단되면서 석유·가스 등의 수출 대금을 받지 못하는 등 러시아 경제가 글로벌 교역에서 배제됐다. 이에 러시아는 SWIFT를 대체해 루블화로 석유 대금 등을 결제할 수 있는 자체 루블화 결제 시스템(SPFS)을 구축하고 중국의 위안화 결제망(CIPS)을 통해 석유 대금을 결제하는 우회로를 만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는 브릭스(BRICS) 등을 통해 미국 달러 패권에 대항하는 대안적인 금융 결제 시스템 구축을 주장하고 있다.
② 미국에서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주(states)를 뜻하며, 흔히 ‘부동층 주’라고 불린다. 즉, 전통적으로 공화당 우세 지역이거나 민주당 우세 지역이 아닌 곳을 말하는 것이며 주로 중서부 지역이 해당한다. 스윙 스테이트는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곳으로 주목받는다. 필자가 미국 정치에서 사용되는 이 용어를 국제 질서에 사용한 이유는 전통적으로 미국 편에 기울었던 국가들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미국에 비우호적인 결정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동 패권 전략에 핵심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 위안화의 석유 대금 결제를 논의하고, 친미 국가인 호주가 최근 중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게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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