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철 칼럼] 한동훈의 ‘동료시민’은 누구인가

장인철 2024. 1. 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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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있는 시민’ 호응 바라는 마음 불구
윤 정부 서툰 ‘엘리트주의’에 중도층 이반
‘부자’ 아닌 중산ㆍ서민이 정책 중심 돼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동료시민과 함께 공동체를 지키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취임 이래 애써 부각시킨 ‘동료시민’이라는 용어가 적잖이 관심이다. 그 뜻이 뭔지, 왜 굳이 동료시민이란 말을 썼는지 등에 관한 논의와 해석도 분분하다. 어쨌든 한 위원장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국민’이라는 말에 비해 동료시민은 “개개인을 자유와 권리의 주체이자 연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표현”이라는 해석이 있다. “동료시민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십시오”라고 했던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취임연설이 떠오른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여러 문맥상, 한 위원장 자신은 동료시민을 ‘양식을 갖춘 시민’, ‘공동체를 지키고 더불어 나라의 미래를 준비할 만한 시민’ 등으로 여기는 듯하다. 현실적으론 취임사에서 목소리를 높인 것처럼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 세력과 개딸 전체주의 세력과 결탁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보는 시민”을 향한 지지의 호소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한 위원장의 호소가 얼마나 먹힐지는 의문이다. 당장 지난 대선 때 48.56%를 기록했던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최근 37%대까지 하락한 상태다. 새해 첫날 정당 지지율(리얼미터) 역시 국민의힘이 38.1%인 반면, 더불어민주당이 43.6%로 민주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거의 흔들리지 않고 있지만 여당에서는 중도층 이반이 여전하다. 이반한 민심이 돌아오지 않는 원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절실하다.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인사에 대한 지적이 있는가 하면, 통합의 실패와 당정관계 파행, ‘이태원 참사’부터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 이르는 무능과 무책임이 거론되기도 한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만만찮은 반감도 분명히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쟁적 이슈들만으로 민심이 크게 이반했다고 본다면 너무 안이하다. 지금 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민주당에 한참 못 미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윤 정부의 경제ㆍ사회정책에 대한 민심 저변의 실망과 배신감이 저류에서 작용하고 있다고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로 돌아선 중도 유권자들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중산층에 못 미치는 서민들이었다. 2022년 NH투자증권의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중산층 이상이라고 여기는 소득과 순자산 기준은 4인 가족 기준 각각 월 소득 686만 원, 순자산 9억4,000만 원이었는데, 실제로 이는 각각 소득 상위 24% 이내와 순자산 상위 11%에 해당하는 인구였다. 소득 기준으로만 따져도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에게 투표한 48.56% 중 24%포인트에 해당하는 유권자들은 스스로 중산층 이하라고 여기는 집단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비록 민주당 정권을 비토했지만, 윤 정부가 그들과는 다른 합리적 방식으로 양극화 완화 등 사회ㆍ경제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윤 정부는 출범 이래 종부세 완화부터 상속ㆍ증여ㆍ양도세 감면에 이르기까지 마치 서울 강남주민들이나 좋아할 ‘부자감세’에 더 힘을 쏟는 듯한 인상을 줬다. 심지어 경총까지 나서 대ㆍ중소기업 근로자 임금 양극화를 경고했음에도 관련한 아무런 정책조차 내놓지 못했다. 서민ㆍ취약계층에 대한 ‘두터운 지원’도 불우이웃돕기 수준의 정책적 인식에 머물렀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노동당 출신이지만 정체된 유럽 좌파의 한계를 넘는 ‘제3의 길’을 추진함으로써 정치적 성공을 거뒀다. 한 위원장의 정치도 자유시장주의 원칙에 기반하되, 그 한계를 더 적극적으로 보정하고 개선하겠다는 전환적 정책 패러다임을 명확하게 제시하기 바란다. 이제 양식에 기댄 호소 정도론 동료시민의 '미워도 다시 한번'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인철 수석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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