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 의지로” 분권·혁신…결과 미흡했지만 씨앗은 뿌려
정부혁신·지방분권위 첫 보고
“과세자료까지 투명하게 공개…
부동산과표와 교육예산 연계를”
“실패해도 잠재력 있으면 상을”
혁신적 아이디어들 제안·공유
지방분권 핵심은 재정독립
“국가보조금 포괄적 재원 전환
중앙-지방 관계, 정치적 결단을”
“사무 지방이양 재정 수반해야”
다양하고 진지한 목소리들 나와
미시적 업무혁신에 주력한 결과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변화 끌어내
부패·관료적 경직성은 손 못대
2003년 3월6일(목) 청와대 국정상황실 직원 30명과 회식을 했다. 신문 가판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상황실이 매일 언론을 점검하기 때문에 각 부처에서 언론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공무원들 업무를 방해하는 소위 4적이 있는데, 감사원, 야당, 언론, 청와대라고 한다. 예컨대 교육부에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를 청와대에 보고하는 부서가 네댓 군데나 된다고 하니 얼마나 불합리하고 낭비적인가.
4월17일(목) 오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첫 대통령 보고가 있었다. 윤성식 교수의 ‘정부개혁 추진전략과 계획’ 주제발표가 있었고 위원회는 행정개혁(정용덕), 재정세제개혁(유일호), 전자정부(서삼영), 인사개혁(남궁근), 지방분권(김병준) 5개 분과로 운영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숭실대 이진순 교수가 중요한 발언을 했다. 첫째, 한국은 조세부담률 20%, 공공부문 취업자 7%(선진국은 10~15%)에 불과한 작은 정부다. 정부 기능을 재편해 지시 위주의 국, 과를 폐지하고 시장 지원에 재배치해야 한다. 둘째, 투명성과 공개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핀란드는 과세자료를 공개해 의사, 변호사 소득이 다 공개되고 국민이 감시한다. 셋째, 교육을 지방으로 보내자. 부동산 과표를 교육예산과 연계시키면 교육, 부동산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삼성 출신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삼성 개혁이 1993년부터 5년간 지지부진이었는데 오전 7시~오후 4시 탄력근무와 1998년 구조조정 위기 덕분에 해결됐다면서, 지표화와 업무혁신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상욱 위원은 “위원회에 참가하는 공무원들이 변화의 주체가 돼야 한다. 공무원은 일을 시키면 하지만 열정이 없다. 일본 소니사는 연말에 최고상과 최악상을 시상한다. 최악상은 비록 실패했더라도 잠재력이 있을 때 주는 상이다”라고 말했다. 고건 총리도 “공무원들은 남이 만든 안의 추진에 소극적이므로 워크숍 등 참여가 필요하다”고 동감을 표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전체 개혁 구도를 먼저 그려야 한다. 국민 지지를 얻어내면 좋지만 인기 위주로 가면 머지않아 실패한다. 국민에게 우직하게 접근하는 게 좋다. 세제개혁은 싸움이다. 서비스 개선보다 뿌리부터 고쳐나가자. 혁신팀을 만들어 반드시 개혁해내자, 개혁은 반드시 하겠다. 필요하다면 재정제도, 조세제도 다 고치겠다.”
5월22일(목) 10:40 정부혁신 대통령 제2차 보고가 있었다. 행정개혁(정용덕) 지방분권(오재일), 재정세제개혁(유일호) 관련 간사들의 보고가 있었다.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은 “지방이 스스로 지방세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는 관광세, 이런 식으로 각 지자체가 독창적 아이디어를 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노 대통령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공무원이 주도하는 정부혁신이 돼야 한다. 부처는 기존 인력 범위 안에서 새 일을 발굴하고 기존 일을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정부혁신은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다. 재정분권, 재정세제개혁이 핵심이다. 인허가권을 축소하고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포괄이전해 지방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세목, 세율은 지방에서 정해야 하고 지방의원 보수도 지방에서 정해야 한다.”
6월11일(수) 오후 5시 배순훈 동북아위원장이 내 사무실에 찾아와 차 한잔을 했다. 배 위원장이 자신과 친한 중국의 우지추안(吳基傳) 중국 신식산업부(한국의 정보통신부) 장관이 본인 임 기중 한국 상대역이 12번 바뀌었다고 하더란다. 한국은 장관 수명이 너무 짧아서 문제다. 나는 노 대통령에게 장관 수명이 짧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으니 제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하시라고 몇번 건의했는데, 나중에 보니 장관 수명이 과거보다 조금 길어지는 데 그쳤다.
6월18일(수) 오전 10시부터 중앙인사위 기능 개편 회의가 대통령 집무실에서 열렸다. 정부혁신위 김병준 윤성식 교수, 행자부와 중앙인사위 책임자들이 참석했다. 인사 기능을 행자부에서 중앙인사위로 옮기기로 거의 결론이 났다. 행자부 공무원 1100명 중 500명 이상 이동이 예상된다고 한다. 다만 김두관 행자부 장관이 공무원들의 사기를 생각해 일단 보류해달라고 요구해 결론은 유보됐다. 이날 오후 5시 김경섭 조달청장이 찾아왔다. 조달청이 과거 수의계약하던 것을 내부 심의회의에 회부해 입찰, 경쟁하는 아이디어를 실천한 공로로 유엔(UN) 정부혁신상을 받았다고 한다. 작지만 큰 개혁이다.
6월26일(목) 오전 10시반 정부혁신위와 균형발전위 공동 주최 재정분권 회의가 열렸다. 오재일(전남대) 교수가 자주재원 확대방안을 주제발표하면서 국고보조금을 포괄적 재원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 처지의 역전이 필요한데 이 문제는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김진표 경제부총리는 중앙 대 지방의 재정이 44:56이지만, 지방 몫 56 안에는 끈 달린 돈이 많아 실제로는 그만큼 안 된다면서 지방소득세, 지방법인세, 지방부가가치세를 국세청이 걷어 지방에 돌려주는 독일식 공동세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수도권 과밀부담금 700억원을 서울과 지방이 반반씩 나누는데, 서울 몫은 서울 개발을 촉진하는 부작용이 있으니 전액 지방에 주자고 했다. 김두관 행자부 장관은 “중앙정부는 효율적이고 지방정부는 비효율적이라는 가정 자체가 틀렸다. 예를 들어 (재량껏 사용하는) 교부세 방식으로 지금보다 지방재정에 순증이 있어야 한다. 지금 나온 초안에는 순증이 없다. 지방에 몽땅 넘겨준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분권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이기우(인하대) 교수는 “지방정부의 평균 재정자립도가 17%이므로 한국은 17% 지방자치에 불과하다. 1991년 이후 중앙정부 사무의 5~7%에 해당하는 5천~7천건이 지방에 이양됐지만 재정이 수반되지 않아 형식적 이양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결론을 내렸다. “사고의 틀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21세기는 분권의 시대, 민주화, 다양화의 시대라고 하는 가설이 맞는지 검증해보자. 균형발전하겠다고 30년간 말해왔고 여러 정책을 써왔지만 항상 실패하고 지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조세문제로 너무 논쟁할 필요 없다. 국세에서 걷어 지방에 주되 교부세, 특별교부세, 양여금, 보조금의 성격을 뚜렷이 해야 한다. 반드시 중앙정부가 해야 하는 사업만 중앙에 남기고 나머지는 몽땅 지방에 주자. %는 그 결과로 나온다. 국가개조를 한다는 의지를 갖고 각 부처가 과감히 일을 지방에 나눠주고 새 일을 하자.”
8월14일(목) 10:30 서삼영 박사가 전자정부 로드맵을 보고했다(세종실).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내용이 좋아 수출도 가능하겠다. 기념비적 업적”이라고 극찬했다. 박봉흠 예산처 장관이 예산 적극 지원을 약속했다. 최종찬 건교부 장관은 “정보화에는 업무혁신(BPR)이 따라줘야 효과가 있다. 사용자친화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은행보다 우체국은 불편하고 국세청 홈택스는 사용하기 불편하다”고 지적했다.
2022년 현재 한국은 유엔이 발표한 전자정부 평가에서 193국 중 3위에 올라 있다. 참여정부가 초석을 잘 놓은 공이 있다. 참여정부의 정부혁신은 종래의 조직 변경 대신 미시적 업무혁신에 주력해 눈에 띌만한 큰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 부패나 관료적 경직성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마음이 여린 탓에 항명하는 행자부 공무원들, 교육혁신을 거부한 교육부를 일벌백계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노 대통령의 강력한 분권 의지에도 불구하고 분권 비토세력의 방해로 지방분권 성과가 약했던 점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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