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죽과 폭격…새해 맞이한 지구촌의 두 풍경

2024년 첫날 지구촌 곳곳에서는 축포와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며 희망찬 한해를 기원했다. 하지만 해를 넘긴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에서는 폭죽 대신 포성이 울려퍼졌다.

2024년 1월1일(현지시간) 호주 시드니에서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일대 에서 새해 맞이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드니 100만명 인파, 아시아 각지에서도 축포

가장 먼저 새해를 맞이한 지구 동쪽 끝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는 도시 초고층 빌딩인 스카이 타워를 수놓은 레이저 조명과 애니메이션 쇼를 비롯한 불꽃놀이가 새해를 밝혔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오페라 하우스 50주년을 기념하는 1만3500발의 불꽃이 새해 밤하늘을 수놓았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일대에서 열린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 모여들었는데 이는 시드니 주민 5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수다.

1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새해맞이 행사에서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 파르테논 신전 위로 화려한 불꽃이 터지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아랍에미리트의 부르즈 칼리파 등 세계적 랜드마크도 2024년을 알리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레이저 쇼로 물들었다. 케냐 나이로비에서는 폭죽소리와 환호성이 울려퍼졌고 인도 뭄바이에서는 수천명의 사람들이 아라비아해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며 새해 희망을 기원했다.

새해 불꽃놀이가 펼쳐진 대만 타이페이. EPA 연합뉴스

중국은 안전 문제로 대부분 지역에서 불꽃놀이가 금지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조용한 새해 첫날을 보냈다. 베이징에서는 축포 대신 춤과 공연으로 새해를 맞이했고, 충칭에서는 군중들이 모여 풍선을 띄우며 새해 소원을 빌었다.

홍콩과 대만에서는 화려한 새해 행사가 펼쳐졌다. 홍콩에서는 수만명의 인파가 빅토리아 항구에 모여 불꽃놀이를 즐겼고 태국 방콕의 차오프라야 강, 대만 타이베이 101빌딩 등 각지에서 새해맞이 축포를 터뜨렸다.

‘테러 위협’ 유럽·미국, 삼엄한 경비 속 신년 축제

프랑스 파리 개선문이 신년 축하 행사 동안 불빛 쇼가 펼쳐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새해 축하 행사를 보기 위해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 모인 인파. AP연합뉴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관련 긴장으로 보안이 강화된 가운데 신년 행사가 진행됐다.

독일 경찰 당국은 새해 전날 쾰른 대성당 테러 시도와 관련된 이슬람 극단주의자 3명을 추가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슬람국가(IS) 연계 세력의 테러 위협이 보고되는 등 긴장이 고조됐다. 이에 4500명의 경찰이 베를린 거리 질서 유지에 나섰고 시내 일부 지역에서는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금지됐다.

파리 올림픽이 개최되는 2024년을 맞아 화려한 새해 행사가 펼쳐진 프랑스에서도 전국에 총 9만명의 보안 인력이 배치됐다. 특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한 테러 위협이 제기되면서, 수십만명의 인파가 샹젤리제 거리로 몰려나온 파리에만 6000여명의 경찰이 투입됐다.

새해 전야 행사가 열린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색종이가 뿌려지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새해 전야제를 축하하는 사람들. AFP연합뉴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대 인파가 운집한 미국 타임스퀘어에서도 유명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축하 행사가 열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으로 촉발된 시위가 뉴욕 중심부에서 거의 매일 열리고 있는 가운데 경찰은 행사장 주변에 완충 지대를 만들어 충돌 위험을 차단하고 드론 감시를 강화했다.

전쟁 속 가자지구엔 어둠 가득, 음식과 지낼곳 찾아 헤매

가자지구 남부 라파 난민촌의 실향민들이 모닥불 주변에 모여 새해를 맞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새해 팔레스타인 국민들과 연대하는 의미의 불을 밝히고 있는 파키스탄 사람들. EPA연합뉴스

해를 넘긴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자지구와 우크라이나는 축포가 아닌 포성으로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 전날에도 계속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피란민들은 남부 국경도시 라파에서 음식과 물, 지낼 곳을 찾아 헤매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어린 조카들을 잃은 중년 남성 아부 압둘라 알아가는 “올해는 폐허가 된 집터로 돌아가 텐트라도 치고 살고 싶다”고 간절한 희망을 전했다. 6주 전 딸을 낳은 아이다 엘슐리는 알자지라에 “딸을 위한 옷 한 벌 마련하지 못했다”면서 “이 싸움을 멈추기 위해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세상에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와 파키스탄에서는 가자지구와의 연대를 위해 새해 축제를 취소하고 축하 행사를 기도와 의식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스라엘도 축제 분위기에 젖지 못했다. 텔아비브의 고층빌딩에는 하마스에 붙잡힌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노란색 조명이 비춰졌다. 조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이모 모란 타야르는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삶과 시간은 멈춰져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2023년 12월 3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한 어린이가 “아빠,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달 후면 전쟁 발발 3년째를 맞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새해 첫날에도 포탄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전투를 이어갔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새해 소망으로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꼽았다. 키이우 시민 테티아나 쇼스트카는 “승리를 기다리고 있고 우리가 승리할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현지 매체 키이우포스트는 신년 인사를 통해 “2024년이 우크라이나에 승리를,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선 전통적으로 붉은 광장에서 열리던 불꽃놀이와 콘서트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취소됐다. 전날 러시아 국경도시 벨고로드에서 발생한 포격으로 24명이 사망하자 블라디보스토크 등 지방 당국들도 신년 불꽃놀이를 취소했다. AP통신은 축제가 취소되었음에도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고, 일부는 환호하며 새해를 맞았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전날 일요 미사에서 2023년을 전쟁의 고통으로 얼룩진 해로 회상하며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민, 수단 국민과 많은 이들”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폭력 사태가 발생한 나이지리아와 로힝야 난민들에 대한 지속적 관심도 호소했다.

그는 “무력 충돌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얼마나 많은 고통과 빈곤이 발생했는지 자문해야 한다”며 “이들 분쟁에 관련된 이들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