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이드·파일럿·집사 … AI 만난 로봇의 무한변신
#1. "여행을 지금 시작하나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이 묻는다. "따라오세요, 여러분." 로봇개에 대규모언어모델(LLM)이 장착되면서 단순한 물리적 로봇에서 지능형 로봇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2. 항공기 조종석에 앉은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가 조종간을 움직인다. 로봇은 관절로 이어진 팔과 손을 이용해 이륙과 착륙은 물론 비상시 사태에 대응하도록 훈련받았다. 자율주행 항공기가 없더라도, 항공기를 자율주행할 수 있는 셈이다.
오픈AI의 챗GPT와 같은 생성 인공지능(AI)을 로봇에 접목하면서 벌어지는 장면들이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을 잇는 'GPT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로봇 두뇌에 연결하면 로봇은 마치 사람처럼 작동한다. AI가 텍스트 이미지 생성과 같은 지식 근로자 활동 영역에서 벗어나 특정 분야 노동을 대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곳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다.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봇개 스팟에 챗GPT API를 연동해 로봇을 투어 가이드로 업데이트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로봇개에 스피커를 장착하고 텍스트를 음성으로 전환해 투어 가이드로 변신시킨 것이다. 또 로봇개 위에 달린 그리퍼(손에 해당)를 움직여 마치 로봇이 말하는 것 같은 인상도 심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수석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맷 클링겐스미스는 "로봇개에 스크립트를 제공하고 이를 카메라와 결합했다"면서 "로봇개는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로봇개는 사내 투어 용도로 적합하다. 이미 주변 환경을 알고 있기 때문에 회사를 방문한 고객들이 로봇개를 따라다니면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심현철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팀은 비행기 전체를 자율주행으로 개조하지 않고도 로봇을 통해 자동 항법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 파일럿 개발에 착수했다. '파이봇'이라고 명명된 로봇은 관절이 있는 팔과 손가락으로 비행 조종 장치를 움직인다. 또 로봇은 조종하는 동안 카메라를 통해 항공기 내부와 외부 상태를 모니터링한다.
파이봇은 키 165㎝, 몸무게는 65㎏ 수준이다. 이는 물리적 로봇에 AI를 결합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파이봇이 조종 설명서를 컴퓨터 파일 등 형태로 읽고 이해한 뒤 조종석에 앉아 비행기를 다루는 것이다. 특히 로봇은 비행 조종 시뮬레이터에서 항공기 시동, 지상 이동, 이착륙, 순항 등의 전 과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현재 연구진 목표는 실제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이다. 이처럼 로봇 파일럿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것은 LLM인 챗GPT를 연동했기 때문이다. 항공기 조작 매뉴얼과 비상 대처 절차를 담은 자료를 챗GPT에서 사고 발생 즉시 뽑아 가장 안전한 비행 경로를 찾아낸다는 설명이다.
초거대 AI를 로보틱스와 접목해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로 적용하기 위한 치열한 기술 경쟁이 불붙고 있다. 디지털 공간 내에만 머무르고 있는 AI 기술을 로봇에 적용해 기계가 사람처럼 인식·행동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챗GPT처럼 자연어 명령만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집어 새로운 위치에 내려놓는 수준에서 벗어나 AI를 통해 로봇이 일상적인 상황을 예측하고 사람과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시대가 코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AI 모델이 급격하게 발전한 덕분에 기술 개발 속도에 탄력이 붙어 가능해졌다. AI 로봇 시장은 향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분석업체 넥스트MSC에 따르면 AI 로봇 시장은 2021년 956억6000만달러에서 연평균 32.95% 성장해 2030년 1847억달러로 2배 가까이 커질 전망이다. 넥스트MSC는 "AI 로봇은 딥러닝을 사용해 명시적인 지시를 따르지 않고도 학습하고 적응하는 로봇"이라면서 "사무실 서비스에 AI 로봇을 활용하는 사례가 확대되면서 시장 성장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도의 '로봇 두뇌' 선점전도 치열하다. 챗GPT 등장 이후 기업들의 자체 LLM 개발이 활발했듯, 기업들은 자체적인 로봇용 AI 모델 구축에 나서기 시작했다. 도요타연구소(TRI)는 지난해 9월 AI를 통해 로봇을 고도화하는 교육 기법을 공개하면서 이를 로봇용 '대규모행동모델(Large Behavior Model)'로 정의했다. TRI는 "(자체 개발한 LBM이) 2024년 말까지 1000가지의 새로운 기술을 로봇에 가르칠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은 지난해 7월 로봇을 위한 AI 모델인 로보틱스 트랜스포머2(RT-2)를 공개했다. 프로그래밍이나 별도의 훈련 없이도 스스로 학습해 명령을 이해하는 로봇 특화 AI 모델로 지난해 공개한 RT-1의 개량판이다. RT-1의 경우 물건을 들어 옮기고 서랍을 여는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엔지니어의 프로그래밍 작업이 일일이 필요했다. RT-2는 할 일을 일일이 입력하지 않아도 인터넷상 이미지와 텍스트를 바탕으로 스스로 기술을 습득해 실행 방법을 찾아낸다. RT-2를 탑재한 로봇은 인터넷 웹상에 나오는 시각적 정보를 학습해 이미 쓰레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훈련 없이도 이를 식별할 수 있다.
예컨대 로봇에 '못을 박고 싶은데 망치가 없다'고 말하면 카메라 센서로 물건을 인식해 주변에 있는 돌덩이를 집어주는 식이다. 구글은 이를 '시각-언어-행동' 모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RT-2가 LLM을 일종의 인공두뇌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글은 당장 로봇을 출시하거나 판매할 계획이 없고, 해당 모델을 통해 실물 로봇을 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로봇을 훈련하기 위한 알고리즘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AI 에이전트 '유레카(Eureka)'를 공개했다. 오픈AI의 LLM GPT-4의 자연어 기능과 강화학습을 결합해 로봇이 복잡한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처럼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거나, 서랍과 캐비닛 열기, 공 던지기와 잡기, 가위 사용 등 30여 가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이상덕 기자 / 황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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