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쌍성에 외계행성까지… 천문학 미래 밝힌 `반백살 망원경`
50년전 세워진 국내 최초 국립천문대
최고령 61㎝ 반사망원경 지금도 건재
소행성·외계행성 발견 등 성과 눈부셔
변광천체 연구로 유수 논문 다수 활용
노후화에 대체 망원경 도입 목소리도
지난달 28일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이 맞닿아 있는 소백산 자락. 소백산국립공원 입구를 지나 죽령 옛고개로 올라가는 산능성이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며칠 전 50㎝가 넘는 많은 눈이 내려 소백산은 순백의 설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다행히 매섭게 몰아쳤던 강추위가 한풀 꺾여 눈이 녹아 어렵지 않게 죽령을 올라갈 수 있었다.
죽령휴게소주차장에 도착해 스노체인을 장착한 대형 SUV로 갈아타고, 일반 차량이 진입할 수 없는 가파른 경사의 울퉁불퉁한 산길을 따라 더 올라갔다. 죽령옛고개 길과 달리 산길에는 제법 많은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나뭇가지에 핀 눈꽃이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 겨울산의 비경을 더했다. 차량은 눈길에 살짝살짝 미끄러지는 듯 아슬아슬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거친 엔진소리와 함께 정상에 다다르자 순백의 설산이 손님을 맞아줬다.
◇소백산천문대 지키는 국내 최고령 61㎝ 반사망원경
30분 좀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천문대인 '한국천문연구원 소백산천문대'다. 소백산 정상 인근인 해발 1394m의 연화봉에 위치한 이곳 천문대는 전주 주말까지만 해도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맹추위가 이어졌다고 했다. 이날은 영상 1도로 기온이 많이 오르고 하늘이 청명했지만,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매서운 칼바람으로 인해 바깥에 오래 있지 못할 정도로 체감 온도가 낮았다.
박영식 소백산천문대장의 안내를 받아 5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국내 최고령 연구용 천체 망원경인 61㎝ 반사망원경을 보기 위해 연구동의 동쪽 관측돔으로 갔다. 61㎝ 망원경은 한 눈에 봐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박 대장이 스위치를 누르자 '드드득' 하는 쇳소리와 함께 천장의 돔 개방구가 서서히 열리고, 관제실의 조종에 따라 망원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61㎝ 망원경은 사람의 눈으로 천체를 보는 방식이 아니라, 망원경 경통 아래에 달려 있는 CCD 카메라가 관측하기 전에 정해 놓은 장소와 노출 시간, 필터 종류 등에 따라 촬영한 영상을 통해 관측한다. 박영식 대장은 "일반인들은 망원경에 눈을 대고 별을 관측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연구용 망원경은 미리 설정된 명령에 따라 컴퓨터를 통해 천체관측이 이뤄진다. 심지어 원격 방식으로 망원경이 있는 곳에 가지 않고 관측하는 게 일반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50년 전 '최초 국립천문대'로 출발… 올해 반 세기 맞아
소백산은 해발 1000m 이상, 1년 청천일수 200일 이상, 광공해 적은 지역 등의 기준에 부합하다는 전문가 의견에 따라 천문대 부지로 확정됐다. 당초 천문대 부지로 자연과 생태환경이 빼어난 비로봉이 거론됐지만,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를 우려해 인근의 '연화봉'으로 최종 결정됐다. 1973년 시작해 5년 만인 1978년 9월 준공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천문대 건립이 최종 확정되자 망원경 기종 선정을 놓고 61㎝ 반사망원경과 38㎝ 굴절망원경으로 의견이 갈라졌지만, 61㎝ 반사망원경으로 최종 결정됐다. 61㎝ 망원경 도입은 1974년에 발족한 국립천문대 탄생으로 이어졌다.
정부가1974년 미국 볼러&치븐사의 61㎝ 망원경을 설치하면서 소백산천문대는 본격적인 천체관측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지난 50년 동안 61㎝ 망원경은 소백산천문대와 함께 하며 아직도 최고령 망원경으로 현역에서 뛰고 있다. 비록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이 묻어 있지만, 여전히 국내 천문학 연구자와 아마추어 천문가들에게 없어설 안 될 존재로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61㎝ 망원경과 함께 1979년 첨성관에 20㎝ 태양망원경이 들어오면서 소백산천문대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대표 국립천문대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50년 세월에도 아직 건재… 변광천체 연구에 주로 활용
61㎝ 망원경은 설치된 이듬해인 1975년 12월 27일 '오리온 대성운'을 관측하는 데 처음 성공했다. 이후에는 장시간에 걸쳐 체계적인 관측 자료가 요구되는 변광천체(밝기가 변하는 천체) 연구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2001년에는 '2K CCD 카메라'가 도입되면서 혜성, 초신성 등 새로운 천체의 측광(별의 밝기 양)을 관측함으로써 연구 경쟁력을 높였다.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로는 두 개의 별로 이뤄진 쌍성 주위를 공전하는 외계행성의 최초 발견을 꼽을 수 있다. 이재우 천문연 박사 연구팀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총 9년 간의 관측자료를 바탕으로 식쌍성의 극심시각을 분석해 이뤄낸 연구결과로, 2011년 미국 천문학회지의 인용도 조사 결과에서 최다 인용된 5편의 논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식쌍성은 두 개의 별로 구성된 쌍성 중 한 개의 별이 다른 별에 가리면 식(蝕) 현상이 일어나 밝기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61㎝ 망원경은 지금까지 식쌍성, 소행성, 외계행성 등 다양한 천체의 변광연구에 쓰이고 있다. 특히 석·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의 학위 논문에 많이 활용되면서 예비 천문학자 배출에 크게 기여해 왔다. 지난해까지 석·박사 학위 논문 37편을 비롯해 매년 2.42편의 SCI(과학기술논문색인)급 논문이 61㎝ 망원경을 통해 발표되고 있다. 지천명 나이의 61㎝ 망원경이 우리나라의 현대천문학 역사와 함께 해 온 것이다.
천문대 건립 당시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구입한 20㎝ 태양망원경은 1979년 1월 27일 최초로 태양 흑점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태양망원경은 수명을 다해 퇴역했고, 작년에는 강풍의 영향으로 첨성관 돔이 바람에 날아가 임시 돔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교육용동 돔에 있던 천체망원경도 2000년대 초 세종대로 옮겨져 지금은 비어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 정부의 관심과 지원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가동률 95% 이상… "노후 망원경 퇴역시키고 새 망원경 도입할 때"
열악한 상황에서도 61㎝ 망원경의 임무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예전에 비해 연구지원 건수는 많이 줄었으나, 7∼8월 유지보수 기간을 제외하곤 가동률이 평균 95%를 넘을 정도로 왕성하게 쓰이고 있다. 매년 대학과 연구기관 등이 제안한 연구주제를 선정해 관측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도 충북대에서 의뢰받은 '근성점 운동을 하는 근접쌍성의 측광학적 연구'에 61㎝ 망원경이 사용됐다.
하지만, 노후화로 인해 관측 준비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부품 교체와 유지보수 비용 상승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돔 개방구를 열고 관측할 경우 망원경이 추위에 그대로 노출된 채 운영되고 있으며, 적도의 마운트 등 망원경 핵심 장비들이 오래돼 언제 고장나 멈춰설 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천문학자들은 61㎝ 망원경을 퇴역시키고, 이를 대체할 새 망원경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한기영 소백산천문대 관측 오퍼레이터는 "61㎝ 망원경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천문우주과학 발전을 위해 쉼없이 역할을 해 왔고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며 "이른 저녁부터 새벽 늦게까지 근무하는 업무 특성상 어려움이 있지만, 천문학자들의 연구를 도와 좋은 논문이 나올 때 뿌듯함이 크다"고 말했다.
소백산천문대(단양)/글·사진=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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