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 받은 사랑의 촉감을 영화로 만든다면···‘클레오의 세계’[리뷰]
돌봄노동자 또한 누군가의 ‘엄마’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개막작으로 호평 받아
어린 시절 받은 돌봄과 사랑은 내용보다 어떤 ‘촉감’으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손길의 부드러움이나 꼭 붙어 잠잘 때 볼에 닿는 숨결의 따뜻함, 비누 거품이 들어가지 않게 귀를 누르는 엄지의 지긋한 힘 같은 것 말이다. 3일 개봉하는 프랑스 영화 <클레오의 세계>는 이런 기억을 스크린 위에 탁월하게 표현해 낸 작품이다.
파리에 사는 여섯 살 ‘클레오’의 세계는 온통 유모 ‘글로리아’ 뿐이다. 아프리카 이주노동자인 글로리아는 바쁜 클레오의 아빠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엄마 대신 클레오를 길렀다. 클레오를 씻기고 먹이는 일, 자장가를 불러 재우는 일, 등하교 시키고 안과에 데려가는 일은 모두 글로리아의 몫이다. 다른 피부 색과 눈동자 색은 클레오와 글로리아가 서로를 아끼는 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클레오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사건이 발생한다. 글로리아가 모친상을 당하며 고향인 아프리카 서부의 섬나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글로리아가 떠나자 클레오는 학교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가 된다. 병든 닭 같은 클레오를 보다 못한 아빠는 여름방학 동안 클레오를 글로리아에게 보낸다.
낯선 섬에서의 여름은 클레오의 세계를 다시 한 번 세차게 흔든다. 클레오는 글로리아와 재회해 온몸으로 행복해한다. 그러나 곧 그의 삶 중심에 자신이 있지 않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낀다. 글로리아에게는 외국에서 돈을 버느라 제 손으로 기르지 못한 딸과 아들이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클레오는 누군가의 엄마를 빼앗으며 자라난 셈이다. ‘돌봄의 외주화’는 선진국이 자국의 아이를 기르는 방법이다.
어린 클레오는 자신과 엄마를 원망하는 아들 세자르의 마음을, 글로리아가 남매에게 느끼는 죄책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는 서로가 없이도 행복해야 해.” 클레오는 고개를 끄덕인다. 클레오의 세계는 그렇게 한 뼘 더 자란다.
카메라는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몸이 맞닿는 순간을 자주 클로즈업한다. 잠든 글로리아의 팔을 어루만지는 클레오의 고사리 손이나 클레오의 고슬고슬한 머리카락에 닿는 글로리아의 입술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유아기 받은 돌봄과 사랑의 기억이 촉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영화는 영리하게 활용한다. 중간중간 삽입된 유화 형태의 애니메이션 또한 클레오가 느끼는 사랑과 두려움, 혼란을 아름답고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아빠와 보낸 여름의 기억을 그려 호평 받은 <애프터 썬>(2022)을 떠올릴 수 있겠다.
영화는 ‘로린다 코레이아에게’라는 헌정 문구와 함께 막을 내린다. 감독 마리 아마추켈리(44)는 어린 시절 그를 돌봐준 포르투갈 이민자인 코레이아의 ‘사랑’을 <클레오의 세계>에 담았다. 코레이아는 그가 6살 되던 해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 일은 감독이 처음 경험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감독 아마추켈리는 이 영화를 통해 돌봄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들이 가지는 정서적 유대감은 때때로 미리 정의된 업무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모성이 신성시되는 사회에서 부모만이 자식에게 넘치는 사랑을 줄 수 있다고 여기지만 아이는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뛰어난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빼앗고 마는 두 주연 배우는 모두 신인이다. 클레오 역의 배우 루이스 모루아-팡자는 우연히 찾은 공원에서 캐스팅됐다. 글로리아를 연기한 일사 모레노 제고는 아프리카의 섬나라 카보베르데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보모로 일했다. 2년간 한 소년을 돌보는 동안 그의 세 자녀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영화는 그의 실제 경험을 녹여넣으며 한층 풍성해졌다.
러닝타임 84분. 전체관람가.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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