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처럼...배터리 파운드리 시대가 열린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배터리업계가 외연 확장에 열을 올리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내년 대규모 신규 전기차 출시를 앞두고 관련 물량 확보를 위한 막바지 작업과 더불어 고객사가 개발·설계한 배터리 생산을 도맡는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 준비가 배터리업계의 과제로 떠오른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파운드리란 설계를 넘겨받아 생산하는 사업 일체를 의미한다. 금속제품을 생산하는 공정에서 용어를 기인했을 정도로 제품을 찍어낸다는 의미가 큰데, 현재는 주로 반도체 시장에서 통용된다. 1990년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설계·개발에 특화된 팹리스와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대만의 TSMC 등이 대표적인 파운드리 업체다.

배터리 파운드리는 개발·설계뿐 아니라 양산하는 데도 막대한 연구·투자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각각에 특화된 기업이 팹리스와 파운드리를 맡는 방식으로 진화한 반도체 파운드리와 다소 차이가 있다. 전기차 원가의 40% 안팎을 차지하는 배터리로 인해 입김이 줄어든 완성차 기업과 선발주자를 넘지 못한 후발주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새로운 사업 모델로 정착하는 모습이다.

스웨덴 노스볼트가 대표적이다. 2016년 설립된 노스볼트는 2019년 폭스바겐그룹이 지분 20%를 인수하면서 최대주주가 됐다. 노스볼트는 초기 각형 개발·생산에 주력했지만, 최대 고객사인 폭스바겐그룹의 눈높이를 맞추는데 실패했다. 이에 폭스바겐그룹이 배터리를 개발하고, 노스볼트가 이를 양산하는 방식의 새로운 협업 모델을 추진했다.

이후 노스볼트는 원통형·파우치형 제품 개발을 차례로 성공하며 3대 폼팩터 모두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기업공개 및 유럽·북미 등지에 신규 공장을 추진하며 파운드리 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여기에 자국 전기차 시장 위축으로 도산 위기를 맞은 중국의 중소·중견 배터리 기업들도 파운드리 사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관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진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전동화에 사활을 건 현대차그룹이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냄에 따라 배터리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도 파운드리 사업에 속속 뛰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3사 가운데 후발주자로 분류되면서 현대차 판매 비중이 가장 큰 SK온이 관련 사업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의 도요타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들도 배터리 자체 개발에 욕심을 내고 있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3사가 자체 개발·생산뿐 아니라 파운드리에 이르는 사업 이원화 구조로 가게 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기업 대부분이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다가 설비작업 구축과 배터리 양산 경험 부족이 걸림돌로 작용해 대부분 실패했다"면서 "하이엔드 프리미엄 제품의 경우 종전대로 배터리 기업에 의존하는 방식을 채택하기 때문에 국내 3사의 지위는 변함이 없겠지만, 전체 배터리 시장이 확장함에 따라 중저가·보급형 제품 중심의 파운드리 주문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돼 관련 시장을 둘러싼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도현 기자 ok_kd@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