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돌려막기’ 한전, 자회사서 3조2000억 수혈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전 본사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200조원이 넘는 부채로 재무 위기에 빠진 한국전력이 자회사들로부터 3조2000억원의 중간배당을 받아 최악의 고비를 넘겼다. 한전채 발행한도가 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적자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29일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동서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등 6개 발전 자회사와 한전KDN이 각각 이사회를 열고 모회사인 한전이 요구한 도합 3조2000억원 규모의 중간배당 안건을 의결했다.

한수원이 자회사들 중 가장 많은 약 1조5600억원 규모의 중간배당을 할 예정이다. 한국동서발전 등 5개 화력발전 자회사들이 약 1조4800억원을, 한전KDN이 약 1600억원을 중간배당하기로 했다. 한전은 원래 4조원 이상의 배당을 요청했으나 자회사들이 난색을 보이자 규모를 3조2000억원으로 하향했다.

매년 3월 한전은 발전 자회사들로부터 경영 실적에 따른 배당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중간배당을 요구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급전 수혈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자회사들이 중간배당을 의결하면 실제 배당금이 들어오기 전부터 회계상에 한전 자산이 증가한다.

전례 없는 중간배당 요구는 올해 한전채 신규 발행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 속에서 나왔다. 한전법에 따라 한전은 ‘자본금+적립금’의 5배까지 한전채를 발행할 수 있다. 시장 전망대로 2023년 연간 6조원대 영업손실이 나면 2024년 한전채 발행 한도는 현재의 80조1000억원에서 74조원대로 줄어든다.

한전은 이미 지난달까지 79조6000억원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면 오는 3월 결산 이후엔 한전채 추가 발행은커녕 5조원이 넘는 초과 발행분도 즉시 상환해야 한다. 다행히 한전이 연내 자회사들로부터 3조2000억원의 중간배당을 받게되면서 한전의 자본·적립금은 18조1000억원으로 늘었고, 이로 인해 한전채 발행 한도는 90조5000억원까지 증가했다.

한전이 ‘빚 돌려막기’마저 막힐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이는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기요금 인상 등 근본적으로 적자 문제를 해소할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전후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상황에서도 원가에 못 미치는 가격에 전기를 팔고 있다. 그 여파로 2021∼2022년 2년 동안에만 38조5000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