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호 장애 아티스트 전문 엔터사···편견을 감동으로 바꾸는 파라스타엔터 사람들 인터뷰[이 사람을 보라]

김한솔 기자 2024. 1. 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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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엔 아티스트 지닌 장애 상세 기재
장애 콘텐츠 늘며 섭외 문의도 적지 않지만
아티스트 아닌 ‘장애 대변자’로 볼 땐 속상
한국선 ‘좋은 일 하네’ 외국은 ‘재밌다’ 반응
짠한 시선을 ‘벅찬 감동’으로 전환하는 일
‘S-Boyz’ 4월 데뷔 목표로 선곡 작업 중
[이 사람을 보라]
2024년 남다른 생각과 단호한 행동으로 없던 길을 내는 문화인들을 만납니다.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차해리 대표(가운데)와 박진 이사(오른쪽), 권대영 이사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사무실에서 인터뷰 시작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모든 핸디캡은 가능성이다’.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이하 파라스타) 회의실. 인터뷰를 기다리는 중 회의실 한 켠에 꽂혀있는 작은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핸디캡과 가능성. 두 가지 모두 이 회사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단어다. 파라스타는운동선수, 배우, 뮤지션 등 장애가 있는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차해리 대표는 방송국 아나운서로 패럴림픽 사회를 보다 장애를 가진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들이 방송에 진출할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 듣다보니 ‘그런 부분은 내가 쉽게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는 생각이 들었다. 박진 이사는 엔터 업계에서 약 30년간 일한 베테랑이다. SM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부문 이사를 지냈다. SBS <골 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한 차 대표를 검색해보다 파라스타를 알게 됐다. 발달장애를 가진 둘째 아이를 위해 꿈꿨던 사업을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며, 이력서를 들고 회사를 찾아갔다. 권대영 이사는 2022년 초까지 소셜 벤처기업을 창업해 운영했다. 사업을 접고 잠시 쉬려던 차에 차 대표의 창업 상담을 하게 됐다. ‘장애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권 이사가 과거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냈던 아이템과 똑같았다. 자연스럽게 파라스타의 ‘첫 직원’이 됐다.

여러 우연과 인연이 겹쳐 만난 세 사람이 어떻게 회사를 꾸려가고 있는지 인터뷰했다.

국내 1호 장애 아티스트 소속사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아티스트들을 성별, 장애 유형별로 찾아볼 수 있게 되어있다.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갈무리

파라스타 홈페이지에는 소속 아티스트들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는지 자세히 써있다. ‘신체적 장애-뇌병변 장애’ ‘신체적 장애-지체 장애’ 등이다. 파라스타엔터 소속인 댄서 고아라씨의 경우 키 172cm, 발 255mm라는 신체조건과 함께 ‘신체적 장애-청각장애’가 함께 적혀 있다. 회사는 다른 엔터사와 똑같은 일을 수행한다. 소속 아티스트들의 일정과 계약 등을 관리하고, 자기계발도 지원한다.

국내 장애 관련 콘텐츠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자폐 장애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뤄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출연한 <우리들의 블루스>(2022), 배우 정우성이 청각장애인역을 맡은 <사랑한다고 말해줘>(2023) 등 콘텐츠가 나오는 빈도도 전보다 잦아졌다.

국내 1호 장애 아티스트 소속사인 파라스타에도 아티스트 섭외 문의가 적지 않게 들어온다. 권 이사는 “TV, CF, 지면광고, 유튜브 촬영 등 문의는 꽤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장애인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이나 ‘다양성’ 지표가 중요한 대기업들이 많은 편이죠. 저희 목표는 두 가지예요. 하나는 아티스트들에게 더 많은 일거리를 드리는 것, 다른 하나는 이들이 대중적 스타가 되게 만드는 것. 지금은 전자의 문이 먼저 열린거죠.”

그는 “아직까지는 한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 친화적인 환경은 아니니까, 장애인들을 (일상에서) 많이 만날 수 없다. 기존 미디어에서 하던대로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만들어내는거죠. 새로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국내 방송에선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비장애인 아티스트의 소속사였다면 받지 않았을 요청을 받는 경우도 있다. ‘아티스트와 직접 이야기할 테니 개인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차 대표는 “소속사가 있는 아티스트를 연락할 때는 매니저와 소통하는게 기본인데도, 이런 절차를 거치는 것을 번거로워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럴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페이 조정’이에요. 저희와 이야기한 페이의 10분의1 정도를 제시하죠. 아티스트에게 직접 연락해서 ‘이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이고, 장애인식 개선을 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설득하는거예요. 이분들을 아티스트가 아니라 ‘장애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거죠. 이런 조정을 3년째 하고 있어요.”

SM 임원 출신으로 업계 상황을 잘 아는박 이사는 “섭외 환경과 조건을 충분히 듣고, 거기서 나오는 대가가 충분하거나 충분하지 않다, 매우 부족하다 등의 지식을 전달한다”고 했다. “저희는 장애인식 개선과 관련한 활동을 하는게 아니라, 아티스트의 가치에 따라 섭외돼 대가를 받는 것이라는 걸 이해해야 해요.”

‘벅찬 감동’을 주는 회사
차해리 대표(가운데)는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의 키워드를 ‘벅찬 감동’이라고 말했다. 서성일 선임기자

이들은 최근 미국과 독일에 출장을 다녀왔다. 회사 소개를 할 때 한국과는 다른 경험을 했다. 차 대표는 “한국에 있을 때와 똑같이 회사 소개를 했는데, 한국에서는 ‘좋은 일 하네’ 라는 반응이었다면, 외국에서는 ‘재밌다, 되게 유명하네’ 라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청각장애 아이돌을 키우고 있다’고 설명해도 ‘가수인데 청각장애가 있어?’ 인거죠. 청각장애인인데 가수를 하는게 아니라, 가수인데 청각장애가 있는거예요. 우리가 비장애인들끼리 소통할 때 직업을 먼저 말하고 본인의 신체적인 것은 나중에 이야기기 하잖아요. 어떻게 사람을 보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그는 파라스타의 키워드를 ‘벅찬 감동’이라고 표현했다. “기존 장애 관련 콘텐츠, 캐릭터들의 ‘짠함’을 ‘벅참’으로 전환하는 일을 저희 회사가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비주얼은 신선하고, 콘텐츠는 벅찬 감동을 주는거죠. 장애 아티스트들이 이렇게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곳은 저희가 독보적이에요. 3년 이상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 투자를 4번이나 받았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파라스타는 하나벤처스, 씨엔티테크(CNTTECH)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이들의 2024년 목표는 가칭 ‘S-Boyz’의 성공적인 아이돌 데뷔다. 박 이사는 “4월 데뷔를 목표로 선곡 작업을 하고 있다. 안무 연습과 국제수어, 영어수어 교육 중이다. 당초 7명이 출발해서 마지막까지 버텨준 친구들은 3명”이라고 말했다. 다른 유형의 장애를 가진 이들과의 후속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차 대표는 ‘다양성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를 떠올렸을 때 ‘얘네랑 하는 건 좀 벅찬게 있어’ 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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