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女의 손길이 닿자…밀키한 거품이 맥주잔에 흘러내렸다 [푸디인]
어렸을 때 명절날이 되면 전을 굽고 계신 어머니의 주위를 서성거렸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께서 막 구워낸 전을 입속에 넣어주시면 뜨거워 입천장을 데어도 그 맛이 일품이었다.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갓 나왔을 때 먹는 게 최상이다.
살아있는 탄산감과 매끄러운 거품이 생명인 맥주는 어떨까? 맥주공장의 배관을 타고 막 나온 신선한 맥주를 입술 주위에 흘려가며 게걸스럽게 마셔보면 일종의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마흔이 가까운 나이이지만 아직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먹부림의 경력이 부족해서인지 국내에 있는 맥주 공장에서 이런 맥주를 선보인다고 들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 때부터 마음 속 저 깊은 곳에 그 욕망은 꿈틀대고 있었고 드디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바다를 건넜다. 그리고 일본 프리미엄 맥주의 대명사 산토리의 구마모토 공장을 운 좋게 방문하게 됐다. 올해 12월 24일이 마지막 견학 방문 일자였는데 다행스럽게 막차를 탔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장에서 막 터져나온 맥주의 생명력과 시원함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맥주 생산을 위한 각별한 노고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뿐더러, 견학 1시간가량 물도 못 마시게 하는 산토리의 방침이 내 몸속의 주(酒) 세포들을 곤두서게 했다.
2003년 출시된 ‘더 프리미엄 몰츠’는 산토리에서 생산하는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로 100% 일본에서 생산된다. 산토리 맥주 공장은 도쿄 무사시노, 구마모토, 도네가와, 교토 단 4곳이다. 이 중 구마모토 공장은 1983년에 설립한 가장 늦둥이 공장이며 올해 20주년을 맞아 더 의미가 있었다.
‘더 프리미엄 몰츠’는 국제 식품 견본전인 몽드 셀렉션에서 3년 연속 최고급상 등 수상경력이 화려하다고 알려져 있다. 전문가나 일반인이나 결국 사람의 입 아니던가!
그런 수상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입에 지금 막 들어오려는 맥주의 신선함과 온도이고 산토리 공장에서 마신 그 맥주는 지금까지 마신 그 어떤 맥주보다 찬란했다.
‘더 프리미엄 몰츠’는 필스너 계열의 화려한 향과 깊고 진한 맛을 느끼게 해준다는 게 보통의 설명이다. 어떤 이는 같은 프리미엄 라인인 에비스와 비교해 홉 향이 매우 진하고 쓴 맛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아로마 홉의 영향으로 100% 몰트 맥주에 비해 쓴 맛이 적고 은은한 자몽향을 음미할 수 있다고도 한다. 사람의 입맛은 각기 다르니 누구의 표현이 맞다 틀리다고 지적하는 건 오만이다.
내가 느낀 ‘더 프리미엄 몰츠’는 컵에 맥주를 따를 때 밀키한 크림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크림 때문인지 탄산감이 적게 느껴지고 부드러운 목넘김이 좋았다. 탄산감이 기린 맥주보다는 적은 듯 했고 아로마 홉 덕분에 과실향 같은 게 났다.
‘카오루 에일’은 에일답지 않게 부드러웠으며, 플래그십 급의 ‘마스터스 드림’은 농축된 맛이 일품이었다. 3종류 중 한 잔을 더 마실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마스터스 드림’을 주저 없이 택했다.
3종류 외에 ‘더 블랙’은 견학센터 기념품 가게에서 구매해 마셨는데 흑맥주는 개인적인 선호가 떨어져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참고로 한국으로 수입되는 더 프리미엄 몰츠는 전량 교토 공장에서 생산한다고 하니 한국에서 마셔볼 수 없는 맛이라 더욱 설레게 했다.
아래 영상은 맥주러버라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은 산토리의 ‘카미아와’ 맥주 서버이다. 산토리 공장 기념품샵에서 판매중인데 일본 가서 반드시 사와야할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다.
먼저 ‘더 프리미엄 몰츠’는 천연수와 맥아, 홉, 효모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더 프리미엄 몰츠’에 대한 철학은 ‘좋은 제품은 좋은 물로부터’이다. 구마모토를 공장으로 택한 것도 천연수 때문이다. 구마모토현에는 아직도 화산활동 중인 아소산이 광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앞서 말한 산토리 맥주 공장 다른 3곳도 모두 천연수가 풍부한 곳들이며 ‘더 프리미엄 몰츠’는 100% 천연수로만 만들어진다.
바다에서 증발한 물은 구름이 되고 비나 눈이 되어 다시 땅에 도달한다. 울창한 숲에 비축된 물은 천천히 대지에 스며들고 겹겹이 지층을 통과한다. 땅속의 깊은 곳을 긴 세월에 걸쳐 지나다니며 맑게 걸러진 물이 바로 천연수이다.
맥아는 맥주의 깊은 맛과 감칠맛을 더하는 중요한 재료이다. ‘더 프리미엄 몰츠’는 단백질 함량이 높은 두줄 보리 맥아를 사용한다. 맥주의 색과 거품을 좌우하기 때문에 산토리 양조기술자들은 좋은 맥아를 고르는데 신중하다. 또한 세계적으로도 극소량만 생산되는 다이아몬드 맥아도 첨가한다. 이 맥아는 체코와 그 주변국에서 생산되는데 깊은 맛과 감칠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맥주의 우아한 향과 쓴맛을 더해주는 원료가 홉이다. ‘더 프리미엄 몰츠’는 유럽산 아로마 홉을 주로 사용한다. 거기에 파인 아로마 홉을 더해 맥주의 우아한 향을 만들어낸다. 고품질의 홉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양조기술자들이 현지를 방문해 엄선하며 수입 과정에서 홉이 온도변화에 노출되지 않게 냉장운송을 한다.
효모는 극비인지 자세한 설명을 산토리 측에서 꺼리는 눈치였다. 중요한 건 효모가 맥주의 맛과 향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별히 관리한다는 것이다.
‘더 프리미엄 몰츠’의 생산과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원료 엄선으로 시작해 원료로부터 풍부한 맛의 성분을 추출하는 담금, 알코올과 탄산가스를 만드는 발효, 숙성과 여과, 포장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맥주 제조의 첫 번째 공정은 담금이다. 여기서는 맥주의 기초가 되는 맛을 만든다.
우선 맥아를 잘게 부수고 천연수와 섞는다. 그러면 맥아가 가진 효소의 힘으로 전분과 단백질이 분해돼 단맛의 보리 주스인 맥즙이 만들어진다.
맥아의 좋은 맛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효소가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온도를 판단하고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맥아 본연의 감칠맛과 깊은 맛을 살리기 위해 ‘더 프리미엄 몰츠’는 ‘더블데콕션’ 방식을 고집한다. 더블데콕션 방식은 담금탱크에서 맥즙의 온도를 높여 두 번 추출함으로써 아주 진한 맥즙을 만든다.
만들어진 맥즙은 담금탱크에서 여과탱크로 보내져 맥아의 껍질을 제거하고 보리의 좋은 맛이 충분히 배어 있는 맥즙만 걸러낸다.
이후 펄펄 끓이면서 홉을 넣어 우아한 향과 쓴맛의 조화를 살린다.
이때 홉의 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홉을 넣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산토리녀에 따르면 그 타이밍은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며느리한테도 알려줄 수 없는 비법인가 보다.
‘더 프리미엄 몰츠’는 아로마홉과 파인아로마 홉을 두차례 나눠 넣는다. 우아한 향과 쓴맛을 살리기 위해 맥즙을 끓일 때는 아로마 홉만 사용하고 마지막에 파인아로마홉을 투입한다. 이러한 제조법을 ‘아로마리치 호핑’이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맥즙은 알코올과 탄산가스가 발생하는 발효 공정으로 옮겨진다.
여기에 효모가 투입된다. 산토리는 건강하고 생기있는 효모를 사용하기 위해 24시간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며 효모를 특별관리한다. 보리주스인 맥즙은 효모의 힘에 의해 맥주로 점차 변화해간다.
발효는 약 1주일간 지속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게 영(young)비어이다. 그 맛은 아직 거칠고 미완성인 상태이기 때문에 맛과 향을 안정식키기 위해 숙성공정으로 보내진다.
양조기술자들은 숙성탱크별로 맥주의 색과 맛, 향 그리고 거품의 상태를 검사하면서 최적의 숙성기간을 판단한다. 그리고 역할을 마친 효모와 침전물을 제거하기 위해 여과공정으로 보내고 품질검사를 통해 최고의 ‘더 프리미엄 몰츠’를 만들어낸다.
여과된 ‘더 프리미엄 몰츠’는 포장 공정에 도달한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처럼 엄선한 원료와 정성들인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더 프리미엄 몰츠’를 최고의 상태로 고객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포장이 매우 중요하다.
맥주의 가장 큰 적은 산소이다. 맥주가 산소에 노출되는 순간, 신선함을 잃게 된다.
우선 캔 제조회사로부터 엄격히 검사받은 빈 캔을 다시 한번 검사해 이물질이 있는지 확인하고 세정기로 깨끗이 씻는다. 검사를 끝낸 캔은 맥주를 주입하는 필러기가 있는 공간으로 보내진다. 필러기가 있는 공간은 다른 생산시설과 철저히 격리되어 있으며, 이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방진복과 마스크, 손장갑을 끼고 바람 세척을 해야 한다. 필러기가 1회전 하는 사이에 일정량의 맥주를 용기에 주입한다. 맥주에 산소가 함유되어 있으면 맛이 변하기 때문에 맥주를 주입하기 직전 캔 안에 탄소가스를 넣어 산소를 밖으로 밀어낸다. 맥주를 주입한 후에도 산소를 방출시킨 다음 캔 뚜껑을 덮어 조금의 산소도 남지 않게 한다.
완성된 캔은 용량 검사 이후 박스에 담겨 제품 창고로 이동한다.
주당이라면 일본에 가서 이런 호사를 꼭 한번 느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이번 여행의 최고 백미로 손꼽지 않을 수 없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5억원 퇴직금, 월급400% 성과급 줄이겠다”…은행들 몸사리는 까닭 - 매일경제
- 새해 첫날부터 공사중단…“제2 둔촌주공 될라” 재개발 최대어 어디? - 매일경제
- ‘개미들의 짝사랑’ 에코프로…특수관계인 2700억 매도로 한해 끝냈다 - 매일경제
- ‘기름먹는 신차’ 이제 희귀종 된다…새해 출시 단 3종뿐이라는데 - 매일경제
- 전문가 “새해 내집마련 권하지 않지만…사야한다면 ‘이것’ 주목” - 매일경제
- 4년제 학위 없어도 취직…‘화이트칼라’ 대신 ‘뉴칼라’ 직종 뜬다 - 매일경제
- 소개팅앱으로 만난 남자 7명 속이고 30억 가로챈 여자…사용자 80%가 남성 - 매일경제
- 해맞이 명소에 15㎝ 쌓인 눈...국립공원 탐방로 여전히 출입통제 - 매일경제
- “복도식 아파트 끝판왕은 맨 끝집”…복도에 현관문 설치하고 꽃도 키워 ‘불법개조’ 횡횡 -
- ‘새해 축포’ 쏜 ‘쏘니’ 손흥민, 12호 골+평점 8.1 활약→시즌 8번째 MOTM 선정 [EPL]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