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가장 무더웠던 크리스마스!

여정윤 동아대산악회 2024. 1. 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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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에서 산악인으로! 동아대생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 도전기 4회
12월 25일 아콩카과로의 첫 걸음을 뗐다.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인 탓에 내 생애 가장 더운 크리스마스였다. 

12월 23일. 두 번의 경유를 견뎌내고 남미에 입성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멘도사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에서 조벽래 선배를 만났다. 남극 빈슨매시프 등반을 마치고 엘 찰튼El Chalten 트레킹을 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먼 타지에서 보니 더욱 반가웠다. 인터넷을 통해 올려준 남극 사진처럼 밝은 얼굴이었다. 벽래 선배님과 합류하여 멘도사라는 도시로 출발했다. 아콩카과를 가려면 거쳐야 하는 도시이다.

멘도사 공항에서 드디어 재학생 원정대 대장인 조현세 선배를 만났다. 한 달 만에 YB원정대가 완전체가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대장님을 보니 정말 반가웠다. 멘도사 공항에서 예약한 차량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니 근황 토크로 차 안이 시끌벅적했다.

차창 밖 풍경을 통해 비로소 남미에 왔음이 실감났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남미 노래, 낯선 건물들과 도로, 국내 산과는 남다른 스케일의 산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분명 졸음이 왔는데 창밖을 보느라 잠도 사라졌다. 도시를 벗어나자 죄다 산이다. 부산에서 인천공항 갈 때 본 산들과는 딴판이다. 압도적인 높이뿐만 아니라, 나무 대신 모래와 바위가 가득했다. 마치 옛날 서부 영화처럼 모래바람이 잔뜩 불었다.

아콩카과 부근의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 주인은 목소리 텐션이 높고 친절했다. 귀여운 고양이 마샤도 함께 있었다. 시간이 남아 뒷산을 가볍게 다녀오기로 했다. 간단하게 물과 간식 정도만 챙겨서 산으로 향했다. 나오자마자 뜨거운 햇빛이 찍어누르는 듯하다. 선글라스 없이 맨눈으로 있기에 눈이 피곤한 정도다.

아르헨티나 공항 검색대에서 화물 검사를 받고 있다. 검색대 직원은 우리의 많은 식량에 놀란 것 같았다.

숙소의 고도는 약 2,700m. 한라산보다 대략 750m 더 높다. 대장은 충분히 고산증세를 생길 수 있는 고도라며 조심히 다니라고 했다. 첫걸음은 압도적인 산의 스케일에 놀랐다. 땅바닥에 시선을 둘 사이가 없을 정도로 진풍경이었다. 구름이 흘리갈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드러났다.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남미에서 첫 산행인데도 다들 한껏 들떠 있었다. 공항에서 도착하고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했지만,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길을 걸었는데 숨이 찼다. 피곤해서 그런가 했지만 아니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국내에서 기계로 고산 체험 훈련할 때 느낀 어지러움도 생겼다. 고산 증세였다. 오자마자 첫 산행에서 고산증세가 온 게 조금 부끄러웠다. 그래도 솔직하게 머리가 아프고 숨이 찬다고 말했다.

페니펜덴스의 숙소에서 최종적으로 약품을 점검하고 있다. 

"내가 고산 체질? 나의 오만이었다"

남미에 오기 전엔 고산 증세 체험 기계인 하이폭시 훈련에서 나름 잘 버텼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고산증세 없는 고산 체질이 아닐까'하는 오만함을 은연중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딴 건 없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머리가 아팠다. 다른 대원들도 내 컨디션에 맞춰 쉬엄쉬엄 3,300m까지 오른 후 하산했다.

2023년 크리스마스 이브. 시차 적응이 안 되서 어젯 밤엔 산행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잤다. 고산 경험이 가장 많은 졸업생 조벽래 선배는 "완전히 적응하지 않은 고산에서 푹 자는 건 위험하다"고 했지만 이틀 동안 편히 눕지 못했던 탓에 아침까지 너무 푹 자버렸다. 오늘도 부지런한 벽래 선배는 아침을 먹고 바로 아콩카과 베이스캠프로 떠났다.

공원 입장 전, 고소 적응을 위해 차를 타고 칠레와 멘도자 국경 직전까지 가면 해발 고도 4,000m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는 도로가 나온다. 도로 입구부터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제 내가 개복치인 것을 깨달았으니 '더 천천히, 느리지만 부지런하게'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움직였다. OB선배들이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강조하셨던 게 "천천히 가되, 부지런하게"였다.

불편한 점을 하나 꼽자면 너무 건조하다. 건조하고 모래바람이 많이 분다. 이른 아침에도, 한낮의 산행에도, 밥을 먹는 중에도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생긴 꼬딱지 때문에 숨 쉬기가 불편할 정도다. 오늘 산행에서도 코가 막혀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기빈이형이 립밤을 콧구멍에도 바르면 나아진다는 꿀팁을 알려주었다.

국내 산행과는 정말 달랐다. 별거 없는 경사 같지만 국내 산처럼 걸었다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 인생 최고 높이는 여름에 다녀온 일본 북알프스 오쿠호카다케가(3,190m)였다. 오늘 이 높이를 갱신한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1시간 산행했을 때쯤 해발 3,000m가 넘어가서부터 머리에서 신호가 왔다.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3,600m까지 올라가 텐트를 쳤다. 고소 적응을 위해 라면을 먹고, 쉬었다 가기 위해 텐트를 쳤다. 햇빛이 너무 강한데 그늘이 없었다. 밖에 앉아있긴 너무 고통이라 텐트를 가져왔다. 모래바람이라 눈도 따갑고 잠깐 열어놓은 냄비 안으로 모래가 수북하게 들어왔다. 라면 하나 먹기 쉽지 않았다.

고소 적응차 해발 3,600m에 올라 텐트를 쳤다. 라면을 끓여 먹자 두통이 줄어들었다. 

라면은 역시 산에 와서 먹어야 제맛이다. 인생 최대 라면을 두 가지 꼽자면 오늘 먹은 라면과 일본 원정 중 먹었던 라면이다! 다들 남미 도착한지 며칠 안 되었는데 현지 음식을 먹다가 한국 음식만 나오면 감탄하며 먹는다. 나처럼 고소증세로 머리가 아파서 괴로워하던 호선이형도 라면만 먹으면 살 것 같다고 했다.

두통이 심해도 옆에는 말도 안 되게 예쁜 풍경이 펼쳐졌다. 또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대원들이 있어 머리가 아파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모래와 돌이 가득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예쁜 풍경이 있을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이런 모래 속에 풀과 들꽃이 가득하다. 산 정상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있다. 보고서에서만 보던 산들을 눈으로 보니 꿈만 같았다.

나를 견디게 하는 단어 '낭만'

산악부에서는 '낭만'이란 단어에 큰 지분이 있다. 어떤 일이든 참고해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긍정적인 단어다. 산에 다닐 때 형들이 자주 했던 말이다. 낭만이란 단어 덕분에 나도 지금 여기 있다. 산악부에서는 힘듦을 이겨내고 얻은 낭만이란 게 큰 힘이 되고, 행동의 이유를 찾을 때면 용기가 된다.

산에서 거친 숨을 내쉬다 보면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걷다가도, 텐트 안에서 쉽게 잠을 자지 못해 오는 정적 속에서도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서로가 힘들면 찾아오는 '말이 없는 조용한 산행'이 온다. 말없이 조용하지만 대원들 각자 바빴던 산행이었다.

12월 25일, 내 생에 가장 뜨거운 크리스마스 날이다. 이렇게 무더운 날씨의 크리스마스는 처음이다. 크리스마스를 즐길 틈도 없이 우리는 페니펜데스에서 콘프렌시아로 향하기 위해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콘프렌시아로 가기 전엔 호로코네즈에서 입산 허가를 받아야 한다. 호로코네즈 입구로 들어가면 비로소 아콩카과가 나타난다. 차에서 내리니 뜨거운 햇볕이 내리쬈다. 여권을 가지고 입산허가를 받은 후 진짜 콘프렌시아 산행을 시작한다. 조금만 가면 아콩카과 기념사진 명소로 알려진 전망대가 나온다.

베이스캠프를 향해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섰다. 

일반 여행객들이 많았다. 큰 배낭을 잔뜩 진 사람은 우리뿐이었다. 저 멀리서 말로만 듣던 뮬라도 통통 뛰어왔다. 뮬라는 말과 당나귀가 섞인 교배종이다. 캠프에서 캠프로 짐을 옮겨주는 역할을 한다.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통통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엽다. 이곳이 집인 뮬라도 지치는 애들이 있나 보다. 뮬라 무리 중에는 유일하게 짐이 없는 녀석이 어딘가 힘들어 보였다.

뜨거운 햇빛 아래 거친 숨을 쉬며 걸었다. 강한 햇볕을 피하려 모자와 바라클라바를 써도 뜨거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앞 사람 발걸음에 날리는 모래바람에 코와 목구멍이 따끔하다. 사람이 인절미가 되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열심히 걸어 언덕을 올라서자 가려져 있던 콘프렌시아가 처음 나타났다. 순간 반가워서 소리를 질렀다. "콘프렌시아다! 다 왔어!" 겨우 4시간 산행이었는데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눈에 보인다고 다온 게 아니다. 아무리 걸어도 캠프가 가까워질 생각을 않는다. 눈에 보이는데 가까워지질 않으니 미칠 지경이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햇살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피부를 최소한으로 노출했다. 

힘들게 도착해 오늘 잠을 잘 텐트를 설치했다. 현지 대행사에서 주는 식사를 먹으려 식당 텐트에 모여 앉았다. 코스 요리였다. 입맛에 맞지 않는 스프를 꾸역꾸역 삼키자, 피자가 나왔다. 이런 고도에서 예상치 못한 음식이었다. 산행에 지친 대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인생 최고로 맛있는 피자는 아니었지만, 여기 와서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었다. 양치질을 하는데도 숨이 차다. 칫솔질하다 숨이 차서 중간중간 멈춰야 했다. 앉았다 일어나도 숨이 차고 식당텐트에서 내 텐트까지 가는데도 숨이 차다. 여기선 뭐든지 천천히 해야 한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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