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총재 "정상 직전 오르막길 가장 어려워, 인플레와의 싸움 잘 마무리해야"

김유승 기자 2024. 1. 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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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은총재 신년사…"내부 여건에 더 큰 비중 둘 여지 생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2023.12.20/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서울=뉴스1) 김유승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일 "올해 한은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도 경기 회복과 금융 안정에 필요한 최적의 정교한 정책 조합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날 '2024년 신년사'에서 "올해는 주요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가운데, 나라별로 정책이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도 우리 내부 여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정책을 결정할 여지가 커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등산에서 정상 직전 오르막길 또는 마라톤에서의 마지막 구간, 즉 라스트 마일이 가장 어렵다"며 "무엇보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어 "물가 상승세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원자재가격 추이의 불확실성과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 등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물가 안정을 이뤄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또 "대내외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 요인을 세심히 살피면서 물가를 목표 수준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통화긴축 기조의 지속 기간과 최적 금리경로를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긴축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금융 불안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국내에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중심으로 일부 위험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며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신용 위험이 확대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사 시 금융시스템 내 유동성 안전판 강화를 위해 한은 대출의 적격 담보 범위를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출 채권까지 확대하기로 한 만큼, 세부 시행 방안 등 관련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정부 및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부동산PF의 질서 있는 정리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도 힘을 보태겠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정책 조합을 성공시키기 위한 소통 강화 방안을 밝히기도 했다.

이 총재는 "경제 전망 경로를 그간의 반기에서 분기 단위로 세분화해 하반기 중 발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와 관련해 "경제 전망을 상세히 공표할 경우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전망 오차와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면서도 "경제 주체들이 중앙은행 전망의 전제 조건을 보다 잘 이해하게 돼 여건 변화에 따른 정책 변화 방향을 체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되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임직원들을 향해 "그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느라 충분히 살피지 못했던 여러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는 데 한국은행이 더 힘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및 지방소멸을 어떻게 극복할지,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등 과거와 다른 환경에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방식은 어떠해야 할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이 총재는 올해 금융·경제의 디지털 전환 대응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올해 바람직한 디지털화폐(CBDC) 도입 방안 모색을 위해 약 10만명의 국민이 실거래에 참여하는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할 계획"이라며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업무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생산성을 높여나가는 노력도 이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30일 한국은행은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조정없이 연 3.50%로 7회 연속 동결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신년사 전문>

한국은행 임직원 여러분!

오늘은 2024년 새해 첫 업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먼저 지난 한 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주신 임직원 여러분과 통화정책을 이끌어 주신 금통위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불어 우리 직원들이 직장에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가족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푸른 용의 해인 갑진년(甲辰年) 새해를 맞아 각자 염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시는, 용처럼 비상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해는 급변하는 안팎의 여건에 대응하여 보다 나은 정책과 해법을 마련하는 데 분주했던 한 해였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가파른 금리인상에 이어 미국 실리콘밸리 은행 사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으로 경계의 끈을 한시도 늦출 수 없는 긴장된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처럼 높아진 대외여건의 불확실성 속에서 한국은행은 최우선으로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가운데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를 면밀히 점검하며 통화정책을 운영하였습니다. 기준금리를 3.5%의 긴축적인 수준으로 유지하고, 새마을금고 예금인출 사태 등 금융·외환시장 불안에는 시장 안정화 조치를 통해 적극 대처하였습니다.

다행히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을 중심으로 성장세가 회복되고 물가 오름세가 둔화 추세를 지속하는 등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외신에서도 물가, 고용 등 우리나라 경제지표의 안정적인 흐름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국민들께서 고통을 함께 분담해주신 덕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올해 세계 경제는 통화긴축 지속의 여파로 성장세가 약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와 더불어 세계 교역의 분절화, 중동·동유럽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주요국의 선거 결과에 따른 국제 정세의 급변 가능성 등 외부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입니다. 지난해 IMF는 향후 5년간의 세계경제 성장률을 연평균 3%대 초반으로 전망하였습니다. 이는 199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의 전망으로 우리 경제의 대외여건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그간 어려움을 겪었던 반도체 업황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IT 부문의 회복·상승 사이클이 통상 2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수출 중심의 경기 회복세가 이어져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은 2.1% 및 2.3%까지 개선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올해 주요국의 경기둔화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가 완만하게나마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점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IT 제조업을 제외하고 본다면 올해 성장률이 1.7%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어 국민들께서 경기회복의 온기를 충분히 느끼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물가상승률이 점차 2%에 근접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만 목표수준에 안착되는 시기와 관련해서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높아진 물가수준과 고금리 장기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특히 염려되는 이유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고물가에 대응해 한 방향으로 달려온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주요국의 금리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되는 가운데 나라별로 정책이 차별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한국은행도 우리 내부 여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정책을 결정할 여지가 커졌고, 우리가 어떻게 해나가느냐에 따라 올해 경제상황은 물론 지난해 정책운용 성과에 대한 최종 평가도 달라질 것입니다.

이러한 국내외 경제여건의 변화를 고려할 때 올해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면서도 경기회복과 금융안정에 필요한 최적의 정교한 정책조합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등산에서 정상 직전의 오르막길 또는 마라톤에서의 마지막 구간, 즉 라스트 마일(last mile)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물가상승세의 둔화 흐름이 이어지겠지만 원자재가격 추이의 불확실성과 누적된 비용인상 압력 등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물가안정을 이루어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것입니다. 대내외 정책여건의 불확실성 요인을 세심히 살피면서 물가를 목표수준으로 안착시키기 위한 통화긴축 기조의 지속기간과 최적 금리경로를 판단해 나갈 것입니다.

긴축기조가 지속됨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금융불안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부실화 징후가 나타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일부 위험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를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아울러 유사시 금융시스템 내의 유동성 안전판 강화를 위해 한국은행 대출의 적격담보 범위를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출채권까지 확대하기로 한 만큼, 세부 시행 방안 등 관련 제도를 조속히 마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부 및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부동산PF의 질서있는 정리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정교한 정책조합을 성공시키려면 커뮤니케이션 강화에도 힘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 경제전망 경로를 그간의 반기에서 분기 단위로 세분화하여 하반기 중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제전망을 상세히 공표할 경우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질수록 전망 오차와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주체들이 중앙은행 전망의 전제조건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됨으로써 여건 변화에 따른 정책 변화 방향을 체계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되는 장점도 있습니다. 통화정책의 유효성 제고를 위해서는 이러한 경제주체들의 올바른 기대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과감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논의된 분석자료와 조사연구 자료들도 '한국은행 금융·경제 스냅샷' 또는 동영상 자료 등의 시각화 컨텐츠를 통해 국민들께 이해하기 쉽게 전달되도록 할 것입니다.

임직원 여러분!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경제는 명실상부한 선진 대열에 들어서 있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재정의 확대와 저금리에 기반한 부채 증대에 의존하여 임기응변식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눈앞에 두고 있는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수요가 확대일로에 있으며 그간 가파르게 증가한 가계부채 규모는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다행히 최근에는 재정적자 규모가 축소되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저해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습니다. 그간 인플레이션에 대응하느라 충분히 살피지 못했던 여러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는 데 한국은행이 더 힘써야 할 것입니다.

과거 부동산 가격 급등 및 PF 부실화의 구조적 원인과 제도적 보완책은 무엇인지, 향후 디지털 시대의 뱅크런에 대응한 현재의 규제 및 감독 체계는 충분한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비은행 금융기관의 중요도를 고려해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 장치는 더 개선할 사항은 없는지, 높아진 대외건전성에 걸맞게 환율의 대외충격 흡수 기능이 충분히 활용되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는 한국은행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금융당국과 함께 다 같이 노력해야만 합니다. 나아가 보다 중장기적인 시계에서의 구조개혁 또한 지속되어야만 합니다. 저출산·고령화와 수도권 집중 및 지방소멸을 어떻게 극복할지,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기후위기 등 과거와 다른 환경에서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그 방식은 어떠해야 할지,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실제 지난해 여러분이 작성한 보고서들이 다양한 부문에 대한 정책 제안을 통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초저출산 현상이 가져온 극단적 인구구조 문제, 장기구조적 관점에서 진단한 가계부채 현황, 지역별 주요 제조업의 생산 및 공급망, 거점도시 중심의 균형발전 등에 대한 보고서들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주요 현안에 대한 여러 블로그(blog)들도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은행은 깊이 있는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경제의 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가속화되고 있는 금융·경제의 디지털 전환에 대한 대응을 한층 강화하고자 합니다. 금년에는 바람직한 디지털화폐(CBDC) 도입방안의 모색을 위해, 약 10만명의 국민들이 실거래에 참여하는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축적된 경험은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참고할 수 있는 선례가 되고, 디지털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것으로 기대됩니다. AI 기술을 활용하여 업무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생산성을 높여나가는 노력도 이어나갈 것입니다. 또한 우리 외환시장을 보다 개방적이고 경쟁적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정부와 함께 차질없이 이행해 나가겠습니다.

한국은행 임직원 여러분!

새해 최적의 정책운용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와 함께 최고 수준의 싱크탱크로서의 역할에 대해 얘기했습니다만, 이 모든 것들은 우리 개개인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간 경영인사 혁신방안의 성공적 도입과 더불어 임직원 여러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외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두 여러분이 애써준 결과이며, 앞으로도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으로 계속하여 노력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저 또한 그간 우리 직원들의 전문성에 걸맞은 처우 개선을 통해 한국은행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힘써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 나가겠습니다.

새해 우리 경제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를 계속할 것입니다. 때로 예기치 않은 풍랑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우선 순간순간 맞닥뜨린 파고(波高)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만, 크고 작은 파도만을 경계하다 정작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한국은행이 보다 긴 안목과 통찰력을 가지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든든한 나침반이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결같은 자세로 각자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고 계신 직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지난해 새 일터로 이전해 오면서 시설 운영과 안전 관리 등의 업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주신 서무직원 및 청경분들, 그리고 늘 쾌적하고 청결한 업무환경을 위해 애써주시는 미화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민원 응대, 화폐 관리 등 잘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현업업무를 수행해 주고 계신 여러분께도 치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금년 한 해도 우리 경제를 위해 늘 한 걸음 앞장서 나아가는 한국은행이 되기를 희망하며, 새해를 맞아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만복(萬福)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ky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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