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킨슨병 환자 스키장까지 이끈 줄기세포 연구, 끝을 보겠다”

김명지 기자 2024. 1. 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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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지금이 기회다] (下) 김광수 하버드대 맥린병원 교수
맞춤형 iPS세포로 파킨슨병 치료
올해 환자 10명 대상 임상시험 계획
도파민 세포와 T세포 함께 이식 고려
“노벨상 카리코 박사처럼 강한 의지 필요”
하버드의대 맥린병원 김광수 교수가 서울 삼성동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김흥구 객원기자

미국 하버드대 맥린병원의 김광수 교수는 지난 2013년 가을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그 해 여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학회 발표를 잘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학회에서 줄기세포의 일종인 유도만능줄기(iPS)세포로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연구를 발표했다.

자신을 파킨슨병 환자이자 사업가라고 밝힌 이 사람은 김 교수에게 연구비가 얼마가 들던 상관없으니 전폭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처음엔 사기라고 생각했다. 개인이 거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건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번 참석에 3000달러(약 400만원)가 필요한 학술대회를 직접 참석했다는 그의 말에 믿어 보기로 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2017년 세계 최초 파킨슨병 줄기세포 치료제를 이식받은 조지 로페즈 박사였다. 내과 의사 출신의 그는 2008년 파킨슨병을 진단 받은 지 7년 만에 김 교수를 만났다. 파킨슨병은 쾌락 호르몬으로 알려진 도파민 신경세포가 소실돼 나타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도파민은 신경세포간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운동기능이 떨어지고, 나중에는 온 몸 근육이 경직돼 사망한다. 근본적 치료제는 없고 합성 도파민을 하루 세 번 복용해 증상을 누른다.

김 교수는 “로페즈 박사가 2017년 연구실로 찾아와 ‘내가 당신의 실험 대상이 되겠다’고 말한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떠올렸다. 젊은 시절 암벽타기 스카이다이빙을 즐겼던 로페즈 박사는 2017년 제대로 균형을 잡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돼 있었다. 김 교수는 로페즈 박사의 피부세포를 역분화시켜 iPS세포를 만들어 도파민 신경세포로 분화시켰다. 이렇게 제작한 줄기세포를 2017년 9월과 2018년 3월, 6개월 간격으로 환자 뇌 양쪽에 이식했다.

하버드의대 김광수 교수가 제작한 iPS세포 분화 도파민 신경세포를 이식받은 조지 로페즈(George Lopez)박사. 김 교수는 로페즈 박사에게서 채취한 피부 세포를 iPS세포(아래 왼쪽)로 되돌린 다음 이를 도파민 신경세포(아래 오른쪽)으로 분화해 로페즈 박사의 뇌에 주입했다./하버드의대 맥린병원 제공

수술 후 3년 동안 환자 증상이 빠르게 개선됐다. 로페즈 박사는 스키장을 찾은 동영상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고, 김 교수는 이 과정을 2020년 논문으로 발표해 전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다만 수술 6년차인 현재 로페즈 박사의 상태는 더 좋아지지 않고 정체돼 있다.

김 교수는 환자 뇌에 이식한 도파민 신경세포가 기대만큼 자리를 잘 잡지 못했다고 봤다. 이 때문에 도파민 신경세포를 면역세포인 T세포와 함께 이식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염증 반응을 줄여서 도파민 세포의 생존을 돕겠다는 취지다. 로페즈 박사는 수술 후에도 김 교수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며 2차 수술을 고대하고 있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를 받은 후 미국 코넬대 조교수를 거쳐 하버드대 의대 교수로 부임했다. 코넬대에 재직한 28년동안 도파민 신경세포 조절 메커니즘을 연구했고, 하버드 의대에서는 20년 넘게 세포치료 연구를 했다. 김 교수는 현재 도파민 신경세포 분화 과정에 개입하는 단백질을 활용한 파킨슨병 치료제 신약도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기준으로 보면 은퇴할 나이를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연구가 재미있다”며 “하버드에서는 70세가 넘어서 연구하는 교수가 많고, 미국에는 90세까지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공이든 실패든 내 연구의 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김 교수를 서울 삼성동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iPS세포를 주로 연구한 건가.

“나는 줄기세포 전문가는 아니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어떻게 형성되고, 뇌에 어떻게 작용해서, 질병으로 연결되는 지를 주로 연구했고, 뇌 속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생기는 질환, 파킨슨병 치료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연구했으니, 줄기세포로 도파민 신경세포를 만들어 이식하면 세포치료제 될 것이고 생각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임상시험 신청 서류만 3000장을 준비했다. 이식 수술을 두 번에 나눠서 한 것도 FDA 때문이었다. 사람의 뇌가 양쪽으로 대칭된 것처럼, 도파민 신경세포도 양쪽에 배치돼 있는데, FDA는 한 쪽에 먼저 이식한 후 부작용을 확인하고 나머지 한쪽을 하는 조건부 승인을 내렸다.”

-수술 전 성공을 예상했나.

“기대가 컸다. 수술을 하기 전에는 수술 후에 환자가 파킨슨병 치료제를 전혀 먹지 않아도 될 정도로 운동기능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다. 결과적으로 그 정도로 회복된 건 아니지만, 환자 만족도가 컸다. "

-그럼 성공이 아니란 건가.

“그런 뜻은 아니다. 두 번째 수술 3개월 후 환자와 전화 통화에서 음성이 또렷해진 것을 감지하고 ‘우리 방법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환자는 수술 이후 1년 만에 수영 스키 다이빙 등 스포츠를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수술 후 3년째가 가장 효과가 좋았지만 지금 상태는 정체돼 있다. 아무래도 노화로 신체 기능이 저하된 때문으로 본다.”

하버드의대 김광수 교수가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매스제너럴브리검 병원 홈페이지 캡처

-다음 임상은 언제로 예정하고 있나.

“지난 2022년 초에 FDA에 환자 10명에 대한 임상 2상에 대한 IND를 신청하고, 작년 승인을 받았다. 올해 초엔 임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맞춤형 줄기세포 치료 비용이 연구비를 제외하고 200만 달러(약 26억원)이 필요하다. 상용화 과정을 거쳐 비용을 낮추는 게 희망이다.”

-iPS세포로 노벨상을 받은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의 연구가 요즘 지지부진한 것으로 들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시나.

“iPS세포는 이론적으론 우리 몸의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이식해 치료 효과를 낼 정도의 세포를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다. 야마나카 박사 연구팀은 iPS세포를 발견은 했지만, 최적화에는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

-미국 FDA로부터 줄기세포 치료가 아니라 표적 치료제로 파킨슨병 신약 임상 허가를 받았다고 들었다. 세포치료로 가능성을 확인했는데, 신약을 개발하는 이유가 있나.

“파킨슨병을 세포치료만으로는 치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이 부족해서 생긴 병이다. 젊고 건강한 도파민 신경세포를 이식하려고 해도 환자 뇌에 생착이 쉽지 않다. 환자의 뇌 환경이 척박해서다.”

-어떤 약인가.

“도파민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널1(Nurr1)’에 활용한 신약이다. 널1은 도파민 신경세포를 만드는 데 관여하고, 도파민을 유지하는 데도 쓰인다. 널1이 도파민 신경세포 활동을 촉진시켰더니, 운동능력이 개선된 것을 확인했다. 기존에 파킨슨병 치료에 쓰는 합성 도파민은 몸이 뒤틀리는 부작용이 컸는데, 널1은 그런 부작용도 없었다. 이 약이 구현되면, 세포치료보다 더 빠르게 파킨슨병 환자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작년 노벨상 수상자인 커털린 카리코(Katalin Kariko) 박사 얘기를 많이 한다. 카리코 박사는 헝가리 출신 이민 과학자로, 평생 RNA만 연구했다. 암에 걸리기도 하고, 연구비 지원도 못받고, 조교수에도 떨어지는 악재가 겹쳤지만,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을 어떤 방해와 악조건에도 포기하지 않고, 수 많은 생명을 구하고 노벨상까지 받았다. 연구자라면 상황을 탓하기 전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원하는 연구를 끝까지 해내는 ‘꺾이지 않는 의지’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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