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 미중정책연구소장 “중국의 한국 공급망 압박 정책은 이미 시작돼”[신년 인터뷰]

박은경 기자 2024. 1. 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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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협력의 ‘실’은 예상보다 커
미·중 경쟁시대 편승 외교는 곧 비용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탈피해야 ‘조언’
김흥규 아주대 교수 겸 미중정책연구소장이 지난달 28일 경기 수원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중국은 이미 공급망 관련해 한국에 대한 압박 정책을 시작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은 현재 한·중관계과 관련해 이같이 경고음을 울렸다. 김 교수는 미국 미시간대에서 중국정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국립외교원 교수,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 국내통합분과 전문위원 등을 지낸 국제관계 전문가다.

김 소장은 지난달 28일 경기 수원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중국의 요소수 수출 제한은 분명 정치적 결정이고 한국에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의 대중 정책과 관련해 “한·일, 한·미·일 협력을 잘 만들었으니 그 다음은 이제 중국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의장국인 한국이 추진 중인 한·중·일 정상회의 상반기 개최 가능성도 낮게 봤다.

김 소장을 만나 대만 총통 선거(1월),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9월), 미국 대선(11월) 등 중요 일정이 빽빽이 들어찬 새해의 국제 정세 전망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2023년 윤석열 정부 외교에서 가장 상징적 사건은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적 염원을 실현한 지난해 8월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이다.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 국가 구상은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안보협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공략하고 북한 핵·미사일 위협도 억제하겠다는 건데 캠프 데이비드 회담으로 가시화했다. 그리고 비전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게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미국과 일본을 지지하는 국가 수는 줄어들고 있는데 미·일 협력을 바탕으로 유치에 나선 건 이미 지는 게임이었다. 결국 5000억원 넘은 예산을 쏟아붓고도 29표라는 참담한 결과로 나타났다. 이 두 가지 사건이야말로 윤석열 정부 외교의 양과 음이란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윤 정부의 외교적 비전 문제를 극적으로 드러낸 게 부산 엑스포 참패···
지는 게임에 뛰어들어

- 현시점에서 한·미·일 협력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인가.

“한·미·일 협력 추진 이면에는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높은 위기의식과 이념적 대립의 국제 구도 속에서 미·일 중심으로 재편될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다. 공급망 소외 불안감을 해소하고 미래의 경제기술 협력을 위한 정치적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실’은 윤석열 정부의 예상보다 훨씬 크게 나타나고 있는데, 미·중 전략경쟁 시대엔 편승 외교가 곧바로 비용으로 전환된다. 새로운 구조 속에서는 에너지·자원 공급국이 중요한 데 대표적 국가가 러시아와 중국이다. 중·러와 동시에 비우호적 관계가 되면 한국 경제·안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손실로 전환된다. 또 북한이 결정적 도발을 할 경우 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중국인데 외교적 레버리지도 손상됐다.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도 중요한 비용이다. 중·러와 우호적 국가들이 ‘글로벌 사우스’인데 대부분이 민주주의로 분류할 수 없는 정치 체제다. 우리는 미국이 제안한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프레임을 그대로 수용하고, 자기 중심적 동굴에 갇혀있는 모습으로 적대적 이미지를 부각함으로써 이미 대단히 큰 손실을 보고 있다.”

김흥규 미중정책연구소장이 지난달 2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미·중 관계는 지난해 11월 정상회담으로 안정을 찾았다. 새해 전망은 어떻게 보나.

“미·중의 디리스킹(위험 축소) 추구를 가장 잘 개념화한 것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좁은 마당 높은 담장(small yard high fence)’이다. 중국이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기술과 역량을 갖지 못하도록 억제 정책을 펴면서 이 분야 경쟁은 지속 강화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생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는 경쟁과 관계없이 협력하겠다는, 공존 속 경쟁 정책에 합의했다. 중국과의 갈등은 물가 상승과 물자 수급 문제로 이어져 선거 필패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 하원은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고, 미국인들의 반중 감정이 커서 대선 승리를 위해선 대중 강경 입장이 유리하다. 미국 정치 지도자들은 중국이 민감해 하는 대만 문제를 계속 제기하겠지만, 양국 모두 군사적 충돌은 원치 않는다.”

-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2기 체제에서 한·중 외교를 어떻게 예상하나.

“대중 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게 문제다. 한·일, 한·미·일 협력을 잘 만들었으니 그 다음은 이제 중국이라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중국으로선 한국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른 일시적 전술 변화라고 보고 호응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공급망과 관련해 한국에 대한 압박 정책을 이미 시작했고, 새해에도 점진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의 영국 ‘남중국해’ 발언이 중국을 돌아서게 만들어

- 압박 정책 시작의 근거는 요소수 수출 제한 같은 건가.

“정부는 중국의 수출 제한이 인도 공급량 제한 때문이라고 하는데, (요소수) 계약이 체결돼 선적된 것까지 수출 중단시킨 건 대단히 정치적 결정이다. 노골적으로 한국에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영국까지 가서 (영국과는) 큰 관계없는 남중국해 문제를 언급했던 게 계기로 본다. 중국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 발언으로 야기된 갈등 이후에도 한·중관계를 관리하려 노력했다. 중국 내에서 한국 정책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태스크포스(TF)팀들이 한·중관계를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보고를 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영국 발언이 나오면서 ‘대책이 없다’고 판단하고, 요소수 등 공급망 관련 카드를 조심씩 꺼내기 시작했다. 중국도 한·중관계를 완전히 파탄낼 생각까지는 없어 보이지만 올해 총선까지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현 정부가 한·중관계를 풀어낼 복안이 없고 대통령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새해에도 한·중관계를 낙관하긴 힘들다.”

-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한·중·일 정상회의 상반기 개최 가능성은 있나.

“적어도 상반기는 개최가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개최를) 당연한 것으로 보고 (지난해) 연말이나 올해 연초로 개최 시기를 얘기해왔는데, 중국을 너무 잘못 읽었다. 지금처럼 한·일이 한 목소리로 중국을 압박하고, 한국의 연이은 대중 강경 발언 상황에서 중국의 총리가 방한해 ‘들러리’ 선다는 건 중국 정치 체제에서 가당치 않다. 개최 원칙까진 깨지 않겠지만 한국 총선 이후 대중 정책과 수사를 봐가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볼 것이므로 상반기 추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중 간의 정책 우선 순위가 달라 ···차이 구별해서 해석해야

- 올해 북·중 수교 75주년인데 북·중협력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중국은 북·러를 자신들과는 급이 다른 국가로 보고 북·중·러 삼각으로 묶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북한의 지정학적, 군사적 중요성으로 볼 때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수교 75주년 계기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과 관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할 것이다. 북·중 간의 정책 우선 순위는 차이가 난다. 중국의 우선 순위는 한반도 안정이고, 한반도 자체가 중국 대외정책의 변수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반면 북한은 중국을 활용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가진 후 미국의 개입 의지를 약화시키는 게 우선 순위인데, 이런 차이를 구별해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

- 북·중·러 연대를 막기 위해 한국은 어떤 외교책을 펼쳐야 하나.

“이분법적 세계관을 피해야 한다. 북한이 추구하는 군사 위협과 대립, 군비 경쟁을 통한 발전상은 중국의 동북아 미래상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한반도 안정을 위한 한·중의 이해 관계가 일치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통 강화가 중요한데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에선 1.5트랙(반관반민)을 활용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안보와도 연결되는 미래 먹거리 문제에 대해 한·중이 공생할 새 모델이 필요하다.”

대만 총통 선거에 출마한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왼쪽),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운데),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가 지난달 20일 신베이에서 열린 첫 TV 정견발표회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대만 총통선거는 내년 1월 13일에 치러질 예정이다.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 새해에는 76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오는 13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이 재선하면 양안 관계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나. 대만 선거 결과는 미·중 관계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민진당의 독립 선호 성향이 중국의 반국가분열법·국가안전법과 충돌할 수 있고, 미 정치인들도 대만 문제를 입지 강화에 이용할 수 있어 미·중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시나리오가 제기된다. 그러나 미·중 모두 군사적 충돌 억제가 핵심이익이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군사채널을 복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만의 새 정부나 시민들도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고 본다.”

- 미 대선은 한·미·일 정상회의 등 3국 협력에 어떤 영향을 줄까.

“현재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우방은 일본과 한국이다. 미국 조야는 한·미·일 정상회의 지속을 바라고 있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돼도 대놓고 깨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동맹을 경시하고 한·일 선거 결과도 변수라 윤석열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한·미·일 공조 체제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8월 미 워싱턴 인근 미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를 앞두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트럼프 재집권 시 보편관세 10% 부과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바이든 정부 때 미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들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미국 리스크가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에서 아메리카 온리(미국 유일주의)로 갈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모든 리스크를 걸고 핵심 기술과 역량을 미국에 투자할 수는 없다. 정부도 경제적 결정을 정치적으로 강요해선 안된다. 아메리카 온리로 전환되면 바이든 정부가 대중 전선 형성을 위해 추진했던 ① 중국과의 전략 경쟁 지속 ② 동맹·우방국과 연대 ③ 미국의 내적 역량 강화 중 ②와 ③은 상충될 가능성이 크다. 복잡한 국제 정세에서 우리 이익을 어떻게 적절히 확보할 지, 이익 균형 개념을 염두해두고 정책을 펴야 할 때다.”

-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북핵 문제를 포함한 북·미 관계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 문제에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극 나설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핵 능력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핵 동결에서 핵 군축으로 가는 대신 그 대가로 주한미군 감축이나 북·미 관계 개선이란 빅딜을 추진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윤석열 정부의 압도적 압박과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대북 억제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고 곤혹스러운 상황이 된다.”

트럼프 재집권하면 핵 동결과 주한미군 감축 바꾸는 ‘빅딜’ 추진할 듯

- 북한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노딜의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북한은 크게 기대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안 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대가를 크게 요구할 텐데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군 일정표까지 정하고 북·미 관계 개선과 재제 해제를 요구할 수 있다. 빅딜은 북핵의 완전한 해소가 아닌 동결 혹은 제한적 감축선에서 타결될 가능성이 커서 우리로서는 대단히 불리하고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 얼어붙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어떤 외교적 노력을 해야 하나.

“주변 4강 외교를 중심으로 한 대북 외교는 리셋돼야 한다. 북한 문제를 한반도나 동북아로 국한하지 말고 핵확산 방지, 군축, 세계 평화라는 큰 그림 속에서 국제적으로 다자화해야한다. 남북한이 유엔에 각각 가입한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대항적 공존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또 북핵 미사일에 대비해 자강 원칙에 입각한 군사적 대응 전략을 조용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미국의 확장억제에만 기대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신뢰성도 적다. 결국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본다.”

- 윤석열 정부의 글로벌 중추 국가 외교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분법적 세계관과 진영 논리에서 탈피해 세계가 복합적 다각화 시대로 진전하고 있다는 특성을 수용해야 한다. 단군 이래로 우리가 지금처럼 큰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 정치·경제적으로도 그렇지만 소프트파워까지 갖췄다. 이를 잘 활용해서 새로운 국제 질서 속 한국의 이니셔티브(주도적으로 제기하는 구상)를 가져야 한다. 타국을 침략한 적이 없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이룩해냈다는 저력과 매력은 한국만이 가지고 있다. 현재 국제정치 질서는 그야말로 정글의 법칙이다. 새로운 국제질서 변화를 맞아, 자강에 기초해 동맹과 국제 연대를 활용하는 근본적 사고와 철학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적 공감대다. 5000억을 쏟아붓고 겨우 29표를 얻었다는데 국민들은 자존심이 상했고, 졸속 잼버리 대회에도 상처받았다. 정치권이 외교 참사를 ‘배째라식’으로 넘어갈 게 아니라 국민들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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