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해결할 열쇠?…"젊어질 수 있다면" 주사 맞으러 일본행까지

[오팔(OPAL·Older People with Active Lives)세대가 온다] 그들은 누구인가 1-⑨

[편집자주] 1958년에 태어난 신생아는 무려 100만 명.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의학에서 노인의 기준으로 삼는 '만 65세'에 지난해 대거 합류했다. 숨 쉬는 모든 순간 건강과 행복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58년생 개띠들은 사회에서 은퇴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첫 세대로 꼽힌다. 나보다 가족의 건강을 우선시한 이전 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살아있는 동안 '건강한 장수'를 꿈꾸는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웰니스(Wellness)'다. 의료계에서도 시니어 세대의 길어진 평균수명과 이들의 건강관리 수요를 반영해 치료법마저 바꾸고 있다.

고령층의 '신입'인 58년생 개띠 100만 명을 주축으로 한 2024년 시니어 세대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특히 이들이 지갑을 여는 분야가 '항노화'다. 이에 의료계와 헬스케어 산업에선 노화 시계를 거스르기 위한 '비밀의 열쇠'를 찾아 나섰다. 그중에서도 의료계가 주목하는 항노화 키워드는 '텔로미어'와 '줄기세포'다. 과연 텔로미어와 줄기세포가 노화 시계를 되돌리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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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로미어 짧은 노인, 인지장애·치매 대비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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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학이 주목하는 텔로미어는 수명 유전자로 불린다. 인체는 수많은 세포로 구성돼 있고, 각 세포의 핵 속에 총 46개, 23쌍의 염색체가 들어있다. 이들 염색체엔 우리 몸의 설계도인 DNA가 포함됐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끝에 반복되는 DNA 염기서열인데,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진다. 텔로미어가 더는 짧아질 수 없을 때 세포는 분열을 멈춘다. 텔로미어 길이는 세포가 얼마나 분열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생체 시계이자 생체 나이인 셈이다.

사람 나이에 따른 텔로미어의 평균 길이에 대한 연구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텔로미어 길이는 kbp(킬로베이스페어, kilo base pairs)라는 단위로 표시한다. 보통 사람이 태어나면 처음에 텔로미어의 길이는 평균 8.5~13.5 kbp 선이다. 나이를 한 살씩 먹을 때마다 텔로미어 길이는 대략 0.03~0.035 kbp씩 줄어든다. 40세에서는 텔로미어 길이가 약 6.7 kbp, 60세에서는 약 6.1 kbp, 80세에서는 약 5.5 kbp로 측정됐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나이가 많을수록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진 것이다. 보통 텔로미어 길이가 5 kbp 정도 되면 사람의 수명이 거의 다 된 한계점으로 친다.

세계적으로 텔로미어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텔로미어 길이가 짧아질수록 인지장애나 치매가 유발될 위험이 크다는 한국 의료진의 연구 결과가 지난해 6월 미국노화학회지에 소개됐다. 연구를 진행한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외과 한명훈 교수팀은 비교적 건강한 60~79세 노인 137명을 대상으로 '인지 불만'과 우울 증상, 그리고 텔로미어 길이와의 관계를 확인했다. 여기서 인지 불만이란 치매 검사에선 정상이지만 자신은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것 같은 주관적 불안·불만을 가진 상태를 가리킨다. 텔로미어 길이는 혈액을 채취해 측정했다.

그랬더니 상대적으로 텔로미어 길이가 긴 사람은 짧은 사람보다 주관적 인지 불만이나 우울 증상들이 덜했다. 이와 반대로 텔로미어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경우 인지 불만과 우울감이 높았다. 한명훈 교수는 "보통 텔로미어 길이는 5~15 kbp로 알려졌는데, 텔로미어가 15 kbp 라고 해서 꼭 오래 산다는 보장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나이에 따른 평균 텔로미어 길이에서 많이 벗어난 경우 여러 가지 병적 상태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텔로미어 길이는 의료계에서 검진용으로 점차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국내에선 한양대 구리병원을 비롯해 일부 병원과 건강검진센터에서 텔로미어 길이를 측정하는 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한명훈 교수는 "노인에서 치매·우울증의 고위험군을 예측하는데 텔로미어 길이를 아는 게 중요할 수 있다"며 "텔로미어 길이가 짧은 노인은 인지 장애나 우울증 검사를 선별적으로 시행해 고위험군 여부를 확인하고 예방적 치료를 일찍 시작한다면 향후 치매나 노년기 우울증의 발생을 늦추거나 막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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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치료받으러 일본행… 첨생법 개정안 통과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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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치료를 필두로 한 첨단재생의료도 항노화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강자로 떠올랐다. 첨단재생의료란, 사람의 신체 구조 또는 기능의 재생·회복하고 질병을 치료·예방하기 위해 신체의 조직·세포(줄기세포·면역세포 등)를 배양해 가공한 다음 이를 환자에게 투여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이는 일반 환자뿐만 아니라 현재 의료시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만성질환, 희귀질환,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의료분야로 기대를 모은다.

전 세계적으로 이 분야의 강자는 '일본'이다. 일본은 2014년 재생의료 등 안정성 확보 등의 법률제정으로 의사에게 권한을 줘, 선제적인 법제화를 통해 재생의료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내 재생의료 기관은 1000곳이 넘는다. 일본은 세포배양시설을 외국에도 허가한다. 일본 후생성으로부터 허가받은 해외 세포배양가공시설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할 경우, 배양한 줄기세포를 한국에선 치료용으로 주사할 수 없지만 이를 일본에 가져가면 일본에서 주사용으로 맞을 수 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행을 택하는 사람이 연간 1만~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 차움 통합면역줄기세포센터장을 역임한 조성훈 서울예스병원 이음센터 병원장은 "한국에서는 줄기세포와 NK세포를 배양하더라도 이를 치료용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며 "한국인은 일본 후생성의 세포치료시설로 허가받은 국내 GMP 시설 11곳(지난해 9월 30일 기준)에서 줄기세포를 배양한 후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가져가서 주사제로 맞고 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것, 배양한 줄기세포를 치료용으로 사용하는 것 모두 불법이기 때문이다. 조성훈 병원장은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포치료를 일본에 가지 않고도 국내에서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장담해왔지만, 아직도 법을 제정하거나 바꾸기에는 시간이 아주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병원장은 "이제는 자기 혈액 속 면역세포와 지방 속 지방줄기세포를 활용한 치료는 자기 신체를 활용하는 '성분 세포 치료'로 봐야 할 때"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치료인데, 언제까지 외국으로 가야만 하는 환자들을 두고만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우리나라에선 줄기세포 치료를 가능하게 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재생바이오의약품법(이하 첨생법) 개정안이 지난달 18일 국회 보건복지위 제1 법안심사소위를 일단 통과해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 환자단체와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가 "기업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환자들을 노리고 돈벌이하려 할 것", "무분별한 줄기세포 치료제를 맞고 사망하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이들이 늘 것"이라며 강하게 맞서고 있어 줄기세포 치료가 임상에 적용되기까지는 적잖은 파장과 잡음이 예상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