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50억→10억→50억…주식부자 9천명을 위한 주식양도세 역주행

한겨레 2024. 1. 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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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게티이미지뱅크

김우찬 | 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정부는 지난해 12월26일 주식양도소득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에서 50억원으로 완화했다. 연말마다 큰손들이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고 주식시장에 매물을 쏟아내서 개미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너무나도 궁색한 설명이다. 대주주 투매로 인한 일시적인 주가 하락은 개미 투자자에게 오히려 좋은 저가 매수 기회이기 때문이다. 또, 대주주 여부와 관계없이 자본이득에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세제가 예정대로 내년에 시행되면 대주주 지정을 피하려 주식을 투매하는 현상은 어차피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조치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정부의 이러한 어설픈 설명보다는 이번 조치가 가져올 부정적 파급 효과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는 자본이득 과세를 전면 도입하기에 앞서 이루어진 지난 10여년 동안의 정책적 노력을 무위로 만들 수 있다. 정부는 2000년 100억원이었던 대주주 과세 기준을 2013년 50억원, 2016년 25억원, 2018년 15억원, 2020년 10억원으로 점차 낮춰왔다. 그리고 2020년에는 소득세법을 개정해 금융투자소득세제를 도입했고, 그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금융투자소득세제를 무리 없이 연착륙시키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시행 이전에 10억원인 현행 대주주 기준을 더욱 낮춰야 하는 것이 순리겠지만 이번에 이를 오히려 대폭 올려버렸다. 내년으로 예정된 금융투자소득세제 시행 시점을 또 한차례 유예하거나 제도 자체를 폐기할 빌미가 만들어진 것이다.

상장 주식을 장내 매도했을 때 얻은 자본이득에 과세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먼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이 왜곡된다. 근로를 통해 돈을 벌기보다는 주식투자로 돈을 벌려는 경제주체들의 비중이 필요 이상으로 커진다. 주주들은 배당을 요구하기보다는 시세차익에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두게 되고, 기업들은 이에 화답해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주 환원에만 집중하게 된다. 또, 주주들이 장외에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을 꺼리게 되어 공개매수를 통한 기업 인수를 어렵게 한다.

이뿐 아니라 자본이득 과세 포기는 중요한 세원의 포기를 의미한다. 2022년도 주식양도소득세 결정세액은 2조983억원이다.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지난해 세수 부족분이 59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또, 주식양도소득세가 금융투자소득세로 전환되면 세수가 75% 증가할 거라는 과거 기획재정부 전망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참고로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본이득에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9개 국가에 불과하다.

끝으로 자본이득 과세 포기는 명백한 부자 감세다. 현행 주식양도소득세는 시가로 주식을 10억원어치 이상 보유한 부자에게만 부과되고, 금융투자소득세도 주식양도소득이 5천만원 이상인 부자에게 부과된다. 따라서 이를 포기하는 건 부자를 위한 감세 조치임이 명백하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2022년 말 10억원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는 전체 주식투자 인구 1440만명 중 0.09%인 1만3368명에 불과한데, 이 중에서 무려 70%(9207명)가 이번 조치로 세금을 면제받게 된다.

한편, 이번 조치는 보수와 진보 언론 양쪽으로부터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는 데 별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치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유권자는 겨우 9천여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자 감세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낙인이 찍혀 총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2009년부터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세금 정책에 대한 평가도 포함되어 있는데 부유층에 유리하다는 답변 비중은 이명박 정부 시절 80%를 웃돌았다가, 박근혜 정부 시절 70%대로 내려왔고,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40%대까지 떨어졌지만, 윤석열 정부 시절에는 다시 60%대로 반등했다. 종합부동산세 완화, 법인세율 인하, 가업상속 공제 요건 완화, 가업승계 증여세 저율 과세구간 확대 등이 반영된 탓일 것이다.

투표에 임하는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만이 나쁜 세금 정책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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