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아침 뜨거운  가슴으로 열다 [한주를 여는 시 ]

이승하 시인 2024. 1. 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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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이성선 시인의 아침
현대문학사 「시인의 병풍」
무한한 질량과 엄청난 진폭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자연처럼 …

아침

새 아침 뜨거운
가슴으로 열다

피 흘리는 바다로 일어선다.
한 손에 화산을 들고, 정신의 바다
지나온 겨울에 빠져 어정거리는
새벽을 불 지른다.
불가사의한 어둠의 틈새에서 날아온
새들은
하늘의 동작을
날카로운 발톱으로 날라
잠든 내 얼굴에 뿌리고
신선한 벌판 반야般若의 가지를 흔든다.
붉게 솟아, 하늘에
깨지지 않는 거울
머릿속에 눈부시게 내려앉는 중량.
가지들이 어둠에서 뛰어나와
당황해할 때
세계의 신음을 묶어가는 작업 소리.
묶여가는 항구도시를
혁명이 뒤에서 아프게 보고 있다.
퍼어렇게 반란하는 상징의 칼날.
새로운 시간이
마당에 생솔처럼 타고 있다.
님아, 보는가
손바닥에 쌓이는 피의 함성
몸 퍼덕이며 소리치는 공간의 발아를.
올 것이다.
문간에 걸린 허약한 아침을 처단하고
살아온 실책 속에 정각正覺을 다듬으며
빛나는 시간은 올 것이다.
가지에 앉은 해안을 찍어내고
전신을 떨며 올 것이다.

신선히 불을 잡는다.
딴딴한 신의 골격이 공기 속에
불탄다.
문을 두드리다가 문득 들어선 골짝
황홀한 화폭畫幅,
햇빛이 유리알로 깨지는 현관
일제히 달려들어 내 살을 물어뜯는
노의 검고 흰 이빨들
이빨 사이로 불꽃이 일렁인다.
열반의 눈물이 꽃가루로 부서져
죽음의 회화가 공간에 빛날 때
밤에 머리 풀어헤친
욕정의 바다를 다듬는 목탁 소리,
저승의 생각들을
풀잎 위에 결정結晶시키고
님아, 보는가
화안히 일어나 차비하는, 목마른 아침의
신비한 웃음을
폭력에 잡히는
당신의 맑은 사랑을……….
올 것이다. 그렇게
피 흘리는 사람의 생애를 완성하고
불 지핀 심장에 얼굴 부비어
부서지는 취옥翠玉 유리알
넓은 아침을 깨물고
빛나는 시간은 올 것이다.

「시인의 병풍」 현대문학사 1974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1월 1일의 아침이 밝았다. 지난해에는 이 작은 나라에서 웬 사건·사고가 그리도 많이 일어났는지,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 새해엔 정치권의 요동이 제발 좀 진정되고 경제도 안정이 되면 좋겠다. 북한도 전쟁 준비에 열을 올리지 말고 인민의 배고픔을 해결하려 애썼으면 좋겠다.

새해 새 아침을 "피 흘리는 바다로 일어선다"로 시작하는 이성선李聖善(1941~2001년)의 등단작 중 한편을 읽으면서 출발한다. 이 시에는 반야, 정각(正刻이 아니고 正覺이다), 열반, 목탁 소리 같은 불교 용어가 나오지만 조물주가 천지를 창조하는 순간을 묘사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스케일이 크다. 천지가 요동치는 빅뱅의 순간을 그린 것도 같다. 시의 공간은 광대무변하고 시간은 우주의 시간이어서 헤아릴 수가 없다.

이 우주의 첫날 아침에 대한 묘사인 양 어마어마한 힘으로 내 전신을 압도한다. 우리가 맞이하는 아침마다 자연은 이만큼 무한한 질량으로, 엄청난 진폭으로 힘차게 하루를 시작했던 것이다. 자연은 매일 이성선 시인이 묘사하는 것처럼 천지개벽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해 왔지만 우리는 무심히, 아니, 굼뜨게 하루를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말이 있는데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고 거듭 새로워져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은나라의 시조인 탕왕이 대야에 새겨둔 좌우명이다.

내게 주어진 이 하루를 열심히 살면 그게 쌓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1년이 될 것이다. 아침에 새소리를 듣게 되면 쟤들은 저렇게 부지런한데 나는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자. "새들은/하늘의 동작을/날카로운 발톱으로 날라/잠든 내 얼굴에 뿌리고" 있지 않은가.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사랑'에서 온다. "화안히 일어나 차비하는, 목마른 아침의/신비한 웃음"을 지어야 한다. 당신의 맑은 사랑을 폭력에 잡히게 해서는 안 된다. 아침은 피 흘리는 사람의 생애를 시작하고 완성한다.

"불 지핀 심장에 얼굴 부비어/부서지는 취옥 유리알"이, "빛나는 시간"이 "넓은 아침을 깨물고" 올 것이라고 시인은 예언했다.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속초에서 자란 시인은 매일 아침 동해를 봤다. 동해의 일출을 봤다.

우리 모두 올해는 이성선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매일 아침을 동해의 해돋이 광경을 떠올리며 시작합시다. 새벽을 불 지르며 뜨겁게 살자고요.

이승하 시인
shpoe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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