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법” 운운 한동훈의 내로남불

정환봉 기자 2024. 1.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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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월29일 국회 민주당 대표실에서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겨레 프리즘] 정환봉 | 법조팀장

법조 취재를 하면서 검사에게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은 “확인해줄 수 없다”이다. 가끔 이어지는 대화도 선문답 같다. 내 취재력이 변변치 않아서겠지만, 세상의 의심처럼 ‘피의사실’을 술술 이야기해주는 검사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좁쌀만한 팩트라도 건지거나, 수사의 방향을 조금이라도 짐작하기 위해서는 모호한 답변의 행간을 여러번 읽고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노골적으로 수사 상황을 이야기하기도, 취재기자에게 아무런 말을 안 하기도 어려운 처지인 검사로서도 절충적 선택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검찰 취재를 ‘훈고학’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뜬 구름 같은 말에서 취재의 단서를 찾아내려면 ‘해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헌의 뜻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는 훈고학이 의미를 가지려면 전제가 필요하다. 해석하려는 대상이 진실이어야 한다. 검찰 취재를 훈고학처럼 한다는 것은 적어도 검사가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 바탕한다. 이 믿음은 꽤 유효하다. 얕은 거짓말로 당장의 곤란은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오래 유지되기는 어렵다. 검사의 수사와 기소는 재판에서 그 실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지금까지 검사에게 속은 경험은 없다.

오랜 검사 생활을 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도 같은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가 법무부 장관이었던 지난 12월19일 국회에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에 “수사 상황을 생중계하게 되어 있는 독소조항까지 들어 있다”고 했을 때, 그 말이 진짜라고 생각했다. 기존 특검법과 다르게 악용 가능성 큰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면 수정할 필요가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 위원장이 문제 삼은 조항은 ‘김건희 특검법’ 제12조다. 12조에는 “특별검사 또는 특별검사의 명을 받은 특별검사보는 제2조 각 호의 사건에 대하여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하여 피의사실 외의 수사 과정에 관한 언론 브리핑을 실시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는 한 위원장이 활약했던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법’ 12조와 토씨 하나도 다르지 않다.

‘김건희 특검법’이 악법이라면 한 위원장은 같은 조항이 포함된 특검법으로 설립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에 참여했던 것부터 반성해야 옳다. 하지만 그는 당시 수사를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던 것으로 안다. 두 법안의 언론 브리핑 조항이 똑같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수밖에 없는 한 위원장이 이처럼 ‘동료 시민’을 속이고 법률가의 양심을 저버리며 지키려고 하는 것이 고작 ‘자기편’이라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한 위원장은 김건희 특검법이 “다음 총선에서 민주당이 원하는 선전선동을 할 수 있게 딱 시점을 특정해서 만들어진 악법”이라고도 했다. 이 역시 그의 과거 발언에 비춰보면 염치없는 말이다. 그는 지난 8월18일 ‘자신의 구속영장을 비회기 때 청구해달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바람에 “범죄 수사를 받는 피의자가 마치 식당 예약하듯 자기를 언제 구속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일”이라며 “희한한 특별 대접 요구가 참 많으신 것 같다”고 했다.

김건희 특검법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것은 지난 4월이다. 그때 여당이 특검법 통과를 합의해줬다면 특검 수사는 이미 끝났다. 결국 패스트트랙 최장 처리 기간인 240일을 넘겨 국회 본회의에 자동상정돼 통과한 법안을 두고 수사 시기 운운하는 것은 김 여사에 대한 “희한한 특별 대접 요구” 아닌가? 그의 말대로 수사 대상이 “식당 예약하듯” 수사 시기를 마음대로 정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은 늘 문재인 정부 인사와 이른바 ‘386’의 위선과 불공정을 비판해왔다. 그의 말에 공감하는 대목도 많았다. 하지만 그 역시 언제부터인가 아무렇지 않게 내로남불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리 편 앞에서만 멈추는 공정이라면 그것은 공정이 아니다.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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