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 꺾인 전기차, 치고 오르는 하이브리드…차세대 승자는 누구?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전기차 수요가 주춤해진 틈새를 하이브리드차가 무서운 기세로 파고들고 있어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집계를 보면, 2023년 1∼11월 국내 신규 등록된 하이브리드 차량은 35만3천여대다. 벌써 2022년 판매량(27만4천여대)을 훌쩍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연간으로 역대 최다인 40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내 하이브리드차 수요는 7년 새 5배 이상 늘어날 만큼 가파른 신장세다. 반면 같은 기간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4만9천여대로 전년도 같은 기간에 견줘 4% 가까이 줄었다.
차 시장의 흐름이 바뀔 것인가? 당장 판세를 점치기는 어렵다. 도요타 ‘프리우스’를 시작으로 한 시대를 구가했던 하이브리드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꾸준히 독자적 입지를 구축해왔다. 최근의 성장세를 두고 ‘하이브리드차의 재발견’이라고 하기에는 멋쩍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하이브리드차를 비롯해 전기차와 수소차 등 저공해 차량의 수요는 지역이나 나라별 연비 규제와 보조금 정책, 충전 인프라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국내와 달리 미국과 유럽, 중국 등 세계 주요시장에서 전기차는 여전히 강세다. 전년과 비교하면 대략 20~30%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유럽 같은 지역에선 전기차 성장세도 가팔랐지만 절대적인 판매량에선 하이브리드가 전기차를 크게 앞선다. 특히 일본에선 전기차와 비교하면 하이브리드차 비중이 압도적이다.
자동차는 시대의 변화에 민감한 상품이다. 집 다음으로 장만하는데 큰 비용이 투입되는 내구 소비재이지만, 트렌드에 뒤처져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국내 전기차 시장의 부진은 연이은 화재사고로 인한 불안, 충전 인프라 부족에 따른 불편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금리와 보조금 정책도 전기차 수요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다. 하이브리드차의 호조세와 별개로 전기차 증가세가 한풀 꺾인 것은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는 과잉 투자로 부풀려진 전기차 산업의 거품이 제거되는 단계로 보는 시각이 많다. 특히 중국에선 정부 보조금에 기댄 전기차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가 파산하기도 했다. 미국에선 경쟁적으로 전기차 설비 증설과 배터리 투자에 나섰던 업체들이 속도 조절에 나서는 모습이다. 제너럴모터스(GM)는 최근 일본 혼다와 추진하던 50억달러 규모의 새 전기차 공동 개발 계획을 철회했다. 엘지(LG)에너지솔루션과 합작한 테네시주 배터리공장과 미시간주의 전기 픽업트럭 공장 가동 일정도 연기했다. 포드도 전기차 투자 규모를 줄이고 켄터키의 배터리 합작공장 가동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하이브리드차의 공세는 정확히 이런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토요타 아키오 일본자동차공업협회 회장은 지난 10월25일 도쿄에서 열린 재팬모빌리티쇼에서 “세상은 마침내 실상을 깨닫고 있다”며 자신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오랫동안 도요타를 이끌었던 그는 전기차 위주의 정책에 부정적이었다. 전기차가 동력원인 전기를 만들기 위해 그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해야 하는 현실과 함께 전기차의 비용편익이 하이브리드 차량보다 떨어진다고 주장해왔다.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차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7년 세계 첫 양산형 하이브리드차인 프리우스를 선보인 이후 지난 13일 한국 시장에 출시한 5세대 프리우스까지 도요타의 전동화 전략은 일관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결합한, 두 가지 다른 종류의 동력을 사용해 움직이는 차량이다. 저속에서는 전기 에너지만을 사용하고 고속 주행 때는 내연기관 엔진이 작동해 추가 동력을 지원한다.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 엔진과 모터가 최적의 연비로 운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최대 장점이다.
‘전기차 대세’라는 기세에 밀릴 것 같았던 하이브리드차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은 분명하지만, 차세대 자동차 시장의 패권을 쥘지는 불확실하다. 아직 누구도 주도권을 틀어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뛰어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테슬라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완성차 업체들이 전기차든, 하이브리드차든, 가솔린차든 가리지 않고 모델을 내놓는 것은 시장의 합리적 선택이 중요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 세기를 풍미했던 내연기관차가 아직 건재하듯 기술력과 현실 적합성, 미래 잠재성 등을 놓고 볼 때 하이브리드차는 전기·수소차와 함께 상당 기간 공존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차량 안전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소비자 만족도를 얼마나 높이느냐가 차세대를 선점하는 열쇠가 될 전망이다.
홍대선 선임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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