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시네마쿠스’의 비디오테이프 5만 점…‘영화’로운 결말 꿈꾸다
2024. 1. 1. 07:02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 소장 비디오와 책 공공 기증 ‘끝없는 기다림’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란 전구 빛이 가득한 지하공간이 나온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광주 계림동의 한 아파트 지하실이다. 지상으로 난 작은 창을 통해 바람이 들어와 눅눅하진 않았다. 영화인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20년 넘게 모아온 비디오테이프와 책의 상당수가 이곳에 있다. 약 40평의 지하실 한켠에 비디오테이프가 담겨 있는 플라스틱 상자가 가득했다. 2022년 1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기획전시 <원초적 비디오 본색>으로 빛을 본 후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풀어봐야 먼지만 묻으니, 그냥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조대영 디렉터는 줄곧 광주에 터를 두고 30년 넘게 영화 운동을 해온 영화인이다. 1991년 영화 <좋은 친구들>의 원제목 ‘굿펠라스’에서 이름을 딴 영화 동아리를 만든 이후 영화 상영회, 영화 강좌, 창작 워크숍을 진행했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 영상큐레이터, 2007년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개관 멤버를 거쳐 2012년부터 10년 동안 광주독립영화제를 이끌었다.
조대영 디렉터는 아는 사람 사이에선 ‘호모 시네마쿠스’로도 불린다. 영화애호인을 뜻하는 ‘시네필’을 넘어 영화를 떠나 살 수 없는, 영화와 삶이 한 몸이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광주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최성욱 감독이 조대영 디렉터를 다룬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 중 상영되기도 했다.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조 디렉터가 2018년 낸 첫 영화책 <영화, 롭다>(드림미디어)의 발문에서 그를 두고 ‘재야에서 영화하기’ 원칙에 위배되는 어떤 일에도 서툴다고 평했다. “그저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화를 틀고, 영화에 대해 쓰는 일만 하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 실은 그 외에 다른 일은 하고 싶어하지도, 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모은 5만 점의 비디오테이프
조대영 디렉터를 지난해 12월 26일 광주 동명동에 있는 동구 인문학당에서 만났다. “광주에 영화와 책의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내 영화 운동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기고문을 본 후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소장한 비디오와 책을 공공에 기증해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광주의 문화계 인사들이 그의 뜻에 공감해 지역 언론 ‘광주드림’에 릴레이 기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명이 5개월간 기고로 호소했음에도 아직 광주시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광주가 좀더 문화적으로 나은 도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광주에서 30년간 영화 운동을 했는데,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죽고 나서도 광주에 (영화와 책을 주제로 한) 의미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다른 지역이나 기업에서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버틸 만큼은 버티겠다.”
그가 기증 의사를 밝힌 비디오테이프는 VHS와 DVD 등을 포함해 5만 개가 넘는다. VHS 비디오테이프(일본의 JVC사가 1976년 출시한 가정용 비디오테이프 규격)의 규모로만 본다면 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과 보존고에 있는 물량(2만7211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개인이 이만큼 수집하고 관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비디오테이프를 모으기 시작한 때는 2001년이다. 비디오테이프가 소멸의 길을 걷던 때와 겹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과 케이블 방송의 확산, 광대역통신망을 통한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비디오를 빌려 보는 문화는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조 디렉터는 광주 대명초등학교 앞에 ‘비디오 보물섬’이라는 비디오 판매점을 열고, 폐업하는 비디오대여점에서 비디오를 사들였다. 2007년까지 그렇게 비디오테이프를 모았고 지금은 비디오 애호가들이 모인 카페에서 거래하거나 당근마켓을 활용해 컬렉션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비디오테이프가 영화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버릴까라는 마음이 있었다. ‘남들은 다 버리는데, 왜 모으냐, 죽기 전에는 빛을 보지 못할 거다’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식하게 20년 넘게 붙들고 있었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로 그나마 빛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는 지역에서 열렸음에도 10만7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올 정도로 대중적으로 흥행했다. 관객의 상당수는 청년세대였다.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으면 빨려들 듯 안으로 들어가던 느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가 주류가 되면서 비디오테이프는 물론 DVD와 같이 물리적 실체로 영화를 소장한다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더욱 ‘영화’를 만져본다는 느낌이 소중하다. 조 디렉터는 비디오테이프가 갖고 있는 물성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를 안방에서 보는 시대가 열렸지만, 그전 25년간은 비디오를 빌려보는 문화가 존재했다. 비디오테이프가 없어지면 그 문화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비디오테이프라는 실물이 있어야 비디오 문화사도 연구할 수 있다. 아카이브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제가 붙들고 있는 건 결코 미친 짓이라거나 어리석은 행위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문화유산을 다루는 전시를 고민하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김지하 학예연구관도 비디오의 물성에 주목했다. 김 연구관은 “마우스나 리모컨으로 영화를 발견하는 것과 실제 내가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의 차이는 매우 큰 것 같다. 국내 최대 비디오대여점을 재현해 눈앞에서 영화의 패키지들을 찾아내고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이 20~30대 초반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간 것 같다. OTT에서는 즉각적으로 느낄 수 없는 영화의 물성과 물량, 테이프에 쓰인 정보를 스스로 읽어내는 재미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에 특화된 테마 도서관 만들 수 있을까
2010년 이후 비디오대여점은 사실상 멸종했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2011년 비디오테이프로도 선보였는데, 비디오 동호인들 사이에선 그게 국내에서 출시된 마지막 비디오라는 게 정설이다. 마지막까지 VHS를 생산했던 일본의 후나이전기가 2016년 생산을 중단하면서 새로 제작될 길은 막혔다. 지금은 서울 중구 황학동 등에 마니아들을 위한 비디오테이프 판매점만 소수 존재하고 있다.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따 유튜브에 올리거나 일부러 영상에 노이즈를 넣어 비디오테이프로 보는 듯한 느낌을 살리는 이들을 위한 틈새시장이 남아 있는 셈이다.
저장매체로서의 수명은 다했지만, 문화유산으로서의 비디오테이프 가치는 더 커졌다. 김 연구관은 “문화예술사의 측면에서 지금의 발전이 있기까지의 노력과 정보를 이만큼 담아낸 저장매체는 없다. 특히 비디오테이프는 영화의 유통·제작이라는 산업적 측면과 시네필이라는 운동적 측면에서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영화사의 한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조대영 선생님의 소장품은 영화의 역사를 잊지 않고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속시킬 수 있는 자산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디렉터는 비디오와 함께 책도 모으고 있다.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전국의 헌책방을 순례한다. 지난 주말에도 전주 동문 헌책방 거리와 인근 완주의 삼례책마을에서 한 다발을 가져왔다. 그렇게 모은 책들이 또 다른 건물 지하에 가득했다. 1950년대 전후의 고서와 1970년대 문고본, 전시 도록과 교과서를 비롯해 다종다양했다. 신구문화사가 1968년 출간한 현대세계문학전집 1권은 김수영 시인이 번역한 뮤리얼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였다. 책을 소개하는 조 디렉터의 눈이 반짝였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도 좋아하게 됐고, 영화가 종합예술이니 인접한 사진, 만화, 디자인 관련 책도 읽으면서 관심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했다. 2년 전 <어린 왕자 특별전>을 열 때 자신이 소장한 세계 여러 나라의 <어린 왕자> 판본을 포함해 300권을 전시하는 등 인문학당에서는 주로 책을 주제로 전시를 연다.
자신이 소장한 비디오와 책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그가 처음 수집을 시작했을 때부터 꿈꿔오던 일이다. 비디오와 책이 캄캄한 지하를 벗어나 빛을 볼 수 있길 바라지만, 아직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대영 소장품을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은 나왔지만, 실현되기까진 적잖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일차적으로 자료를 담아낼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자료를 영구보존할 수 있는 온·습도 환경을 갖춰야 한다. 체계적인 등록과 관리·활용할 인력도 붙어야 하고, 자료 활용 방안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김 연구관은 “사업가나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공간을 짓고 운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자율적으로 쉽게 풀릴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도서관에서 기증을 받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안”이라면서 “다만 지금 도서관도 수장고 공간이 한정적이어서 오래된 매체를 폐기하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 마을 도서관 같은 곳에서 영화를 특화시켜 테마도서관으로 지원받아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디렉터는 광주극장 뒤편의 ‘영화의 집’이라는 공간에서 16년째 ‘20세기소설영화독본’이라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2주에 한 번 소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자리다. 지금까지 모두 360차례 만났다. 올해 첫 모임이 열리는 1월 17일에는 <백년 동안의 고독>과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안녕 하코부네>를 다룰 예정이다.
조 디렉터는 긴 시간 동안 모임을 유지해온 자신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영화 모임처럼 소장품도 긴 생명력을 갖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랐다. “비디오테이프는 습기에 약해 장마철에는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지금은 (영화 포스터와 소개 글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케이스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창고 두 군데 모두 지하에 있는데, 공간을 잘 만나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란 전구 빛이 가득한 지하공간이 나온다. 지은 지 30년이 넘은 광주 계림동의 한 아파트 지하실이다. 지상으로 난 작은 창을 통해 바람이 들어와 눅눅하진 않았다. 영화인 조대영 광주 동구 인문학당 디렉터가 20년 넘게 모아온 비디오테이프와 책의 상당수가 이곳에 있다. 약 40평의 지하실 한켠에 비디오테이프가 담겨 있는 플라스틱 상자가 가득했다. 2022년 11월부터 2023년 6월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기획전시 <원초적 비디오 본색>으로 빛을 본 후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풀어봐야 먼지만 묻으니, 그냥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조대영 디렉터는 줄곧 광주에 터를 두고 30년 넘게 영화 운동을 해온 영화인이다. 1991년 영화 <좋은 친구들>의 원제목 ‘굿펠라스’에서 이름을 딴 영화 동아리를 만든 이후 영화 상영회, 영화 강좌, 창작 워크숍을 진행했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 영상큐레이터, 2007년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 개관 멤버를 거쳐 2012년부터 10년 동안 광주독립영화제를 이끌었다.
조대영 디렉터는 아는 사람 사이에선 ‘호모 시네마쿠스’로도 불린다. 영화애호인을 뜻하는 ‘시네필’을 넘어 영화를 떠나 살 수 없는, 영화와 삶이 한 몸이 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광주 지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온 최성욱 감독이 조대영 디렉터를 다룬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 중 상영되기도 했다.
김형중 조선대 교수(문학평론가)는 조 디렉터가 2018년 낸 첫 영화책 <영화, 롭다>(드림미디어)의 발문에서 그를 두고 ‘재야에서 영화하기’ 원칙에 위배되는 어떤 일에도 서툴다고 평했다. “그저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영화를 틀고, 영화에 대해 쓰는 일만 하며 살기로 작정한 사람, 실은 그 외에 다른 일은 하고 싶어하지도, 할 수도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모은 5만 점의 비디오테이프
조대영 디렉터를 지난해 12월 26일 광주 동명동에 있는 동구 인문학당에서 만났다. “광주에 영화와 책의 공간을 만드는 것으로 내 영화 운동의 마침표를 찍고 싶다”는 기고문을 본 후 접촉을 시도했다. 그는 “소장한 비디오와 책을 공공에 기증해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광주의 문화계 인사들이 그의 뜻에 공감해 지역 언론 ‘광주드림’에 릴레이 기고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명이 5개월간 기고로 호소했음에도 아직 광주시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마우스나 리모컨으로 영화를 발견하는 것과 실제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의 차이는 매우 크다. 비디오테이프는 영화 유통·제작이라는 산업적 측면과 시네필이라는 운동적 측면에서 영화사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다.”
“광주가 좀더 문화적으로 나은 도시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광주에서 30년간 영화 운동을 했는데,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죽고 나서도 광주에 (영화와 책을 주제로 한) 의미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다른 지역이나 기업에서 제안이 들어오더라도, 버틸 만큼은 버티겠다.”
그가 기증 의사를 밝힌 비디오테이프는 VHS와 DVD 등을 포함해 5만 개가 넘는다. VHS 비디오테이프(일본의 JVC사가 1976년 출시한 가정용 비디오테이프 규격)의 규모로만 본다면 영상자료원의 영상도서관과 보존고에 있는 물량(2만7211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개인이 이만큼 수집하고 관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비디오테이프를 모으기 시작한 때는 2001년이다. 비디오테이프가 소멸의 길을 걷던 때와 겹친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등장과 케이블 방송의 확산, 광대역통신망을 통한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가 일반화되면서 비디오를 빌려 보는 문화는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조 디렉터는 광주 대명초등학교 앞에 ‘비디오 보물섬’이라는 비디오 판매점을 열고, 폐업하는 비디오대여점에서 비디오를 사들였다. 2007년까지 그렇게 비디오테이프를 모았고 지금은 비디오 애호가들이 모인 카페에서 거래하거나 당근마켓을 활용해 컬렉션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비디오테이프가 영화 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왜 버릴까라는 마음이 있었다. ‘남들은 다 버리는데, 왜 모으냐, 죽기 전에는 빛을 보지 못할 거다’라고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무식하게 20년 넘게 붙들고 있었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로 그나마 빛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원초적 비디오 본색> 전시는 지역에서 열렸음에도 10만70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올 정도로 대중적으로 흥행했다. 관객의 상당수는 청년세대였다. 비디오테이프를 플레이어에 넣으면 빨려들 듯 안으로 들어가던 느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다.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가 주류가 되면서 비디오테이프는 물론 DVD와 같이 물리적 실체로 영화를 소장한다는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그래서 더욱 ‘영화’를 만져본다는 느낌이 소중하다. 조 디렉터는 비디오테이프가 갖고 있는 물성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를 안방에서 보는 시대가 열렸지만, 그전 25년간은 비디오를 빌려보는 문화가 존재했다. 비디오테이프가 없어지면 그 문화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비디오테이프라는 실물이 있어야 비디오 문화사도 연구할 수 있다. 아카이브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제가 붙들고 있는 건 결코 미친 짓이라거나 어리석은 행위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날로그 문화유산을 다루는 전시를 고민하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김지하 학예연구관도 비디오의 물성에 주목했다. 김 연구관은 “마우스나 리모컨으로 영화를 발견하는 것과 실제 내가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의 차이는 매우 큰 것 같다. 국내 최대 비디오대여점을 재현해 눈앞에서 영화의 패키지들을 찾아내고 만져볼 수 있는 경험이 20~30대 초반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체험으로 다가간 것 같다. OTT에서는 즉각적으로 느낄 수 없는 영화의 물성과 물량, 테이프에 쓰인 정보를 스스로 읽어내는 재미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에 특화된 테마 도서관 만들 수 있을까
2010년 이후 비디오대여점은 사실상 멸종했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가 2011년 비디오테이프로도 선보였는데, 비디오 동호인들 사이에선 그게 국내에서 출시된 마지막 비디오라는 게 정설이다. 마지막까지 VHS를 생산했던 일본의 후나이전기가 2016년 생산을 중단하면서 새로 제작될 길은 막혔다. 지금은 서울 중구 황학동 등에 마니아들을 위한 비디오테이프 판매점만 소수 존재하고 있다. 비디오테이프 영상을 따 유튜브에 올리거나 일부러 영상에 노이즈를 넣어 비디오테이프로 보는 듯한 느낌을 살리는 이들을 위한 틈새시장이 남아 있는 셈이다.
저장매체로서의 수명은 다했지만, 문화유산으로서의 비디오테이프 가치는 더 커졌다. 김 연구관은 “문화예술사의 측면에서 지금의 발전이 있기까지의 노력과 정보를 이만큼 담아낸 저장매체는 없다. 특히 비디오테이프는 영화의 유통·제작이라는 산업적 측면과 시네필이라는 운동적 측면에서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영화사의 한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조대영 선생님의 소장품은 영화의 역사를 잊지 않고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속시킬 수 있는 자산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디렉터는 비디오와 함께 책도 모으고 있다. 호주머니 사정이 허락할 때마다 전국의 헌책방을 순례한다. 지난 주말에도 전주 동문 헌책방 거리와 인근 완주의 삼례책마을에서 한 다발을 가져왔다. 그렇게 모은 책들이 또 다른 건물 지하에 가득했다. 1950년대 전후의 고서와 1970년대 문고본, 전시 도록과 교과서를 비롯해 다종다양했다. 신구문화사가 1968년 출간한 현대세계문학전집 1권은 김수영 시인이 번역한 뮤리얼 스파크의 <메멘토 모리>였다. 책을 소개하는 조 디렉터의 눈이 반짝였다.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 영화의 원작이 된 소설도 좋아하게 됐고, 영화가 종합예술이니 인접한 사진, 만화, 디자인 관련 책도 읽으면서 관심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했다. 2년 전 <어린 왕자 특별전>을 열 때 자신이 소장한 세계 여러 나라의 <어린 왕자> 판본을 포함해 300권을 전시하는 등 인문학당에서는 주로 책을 주제로 전시를 연다.
자신이 소장한 비디오와 책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건 그가 처음 수집을 시작했을 때부터 꿈꿔오던 일이다. 비디오와 책이 캄캄한 지하를 벗어나 빛을 볼 수 있길 바라지만, 아직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조대영 소장품을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은 나왔지만, 실현되기까진 적잖은 난관을 거쳐야 한다. 일차적으로 자료를 담아낼 공간이 필요하다. 그 공간은 자료를 영구보존할 수 있는 온·습도 환경을 갖춰야 한다. 체계적인 등록과 관리·활용할 인력도 붙어야 하고, 자료 활용 방안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
김 연구관은 “사업가나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공간을 짓고 운영할 수 있다면 그나마 자율적으로 쉽게 풀릴 수도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도서관에서 기증을 받아 관리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방안”이라면서 “다만 지금 도서관도 수장고 공간이 한정적이어서 오래된 매체를 폐기하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 마을 도서관 같은 곳에서 영화를 특화시켜 테마도서관으로 지원받아 운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디렉터는 광주극장 뒤편의 ‘영화의 집’이라는 공간에서 16년째 ‘20세기소설영화독본’이라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2주에 한 번 소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자리다. 지금까지 모두 360차례 만났다. 올해 첫 모임이 열리는 1월 17일에는 <백년 동안의 고독>과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안녕 하코부네>를 다룰 예정이다.
조 디렉터는 긴 시간 동안 모임을 유지해온 자신을 보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그의 영화 모임처럼 소장품도 긴 생명력을 갖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길 바랐다. “비디오테이프는 습기에 약해 장마철에는 힘든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지금은 (영화 포스터와 소개 글이 담긴) 비디오테이프 케이스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창고 두 군데 모두 지하에 있는데, 공간을 잘 만나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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