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연대'라면서 전원회의에서 '중러' 빼놓은 北 의도는?
정찰위성 대대적 선전하면서 정작 도와줬을 러시아 언급 안해
원래 전원회의서 중러 잘 언급 안하지만 북러정상회담 뒤에도?
'남조선 전 영토 평정', '정상국가' 지향 외교정책에 부정적 영향
올해 대만, 한국, 미국 등 굵직한 선거 여럿 예정돼
"대외정책 변화는 그 이후 판단해도 되는 문제로 봤을 가능성"
"대치 국면 유지하며 5개년 계획 성과 조기달성 기반 마련"
"보도 내용 매우 길어져, 업적 분야 강조하며 내부 통제 강화"
최근 몇 년간 북한의 새해 노선을 결정하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에서 의외로 비중이 작게 언급된 부분이 있다. '외교'다. 비중이 작다는 점은 변화가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30일까지 열린 당 중앙위 8기 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대외사업 부문에서는 변화 발전하는 국제정세에 주동적으로, 책략적으로 대처해 나가면서 당의 존엄사수, 국위제고, 국익수호의 원칙에서 강국의 지위에 맞는 공화국의 외교사를 써 나가야 한다"고 언급했다고 31일 보도했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이 "사회주의 나라 집권당들과의 관계발전에 주력하면서 나라의 대외 영역을 보다 확대 강화하며 변천하는 국제정세에 맞게 미국과 서방의 패권전략에 반기를 드는 반제 자주적인 나라들과의 관계를 가일층 발전시켜 우리 국가의 지지 연대 기반을 더욱 튼튼히 다지고 국제적 규모에서 반제 공동행동, 공동투쟁을 과감히 전개해나갈 데 대한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원회의 결과 보도에서 북한의 '외교' 노선에 대한 언급은 이 두 문장이 전부다.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발사 성공이 러시아로부터의 지원 때문이라고 강력하게 의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북러정상회담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정작 만리경-1호 발사에 대해선 "우리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당의 전략적 구상과 의도를 확고한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지혜와 기술로 기어이 우주를 정복할 필사의 각오로 달라붙어 거듭되는 실패를 딛고 일어나 끝끝내 정찰위성 발사를 성공시키는 경이적인 사변을 안아 왔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물론 전원회의가 북한의 내부적 행사라는 성격상 그럴 수는 있다. 실제로 역대 전원회의 결과 보도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등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북러정상회담과 10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방북 이후에도 구체적 언급이 없는 점은 의문을 자아내게 한다.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수석연구위원은 "이는 러시아의 실제 지원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한다"며 "'사회주의 나라 집권당들과의 관계발전에 주력'이라는 사실을 보도할 뿐, 러시아나 중국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는 점은 상징적 측면 이외에 실질적 성과는 여전히 미진함을 암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측된 바이기도 하다. 주러대사를 지냈던 장호진 신임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월 국회 대정부질문(당시 외교부 1차관)에서 "지금 러·북·중 밀착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식으로 굴러갈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압도적인 영향력을 굳이 러시아와 나눌 이유가 없고, 러시아의 경우에는 북한에 대한 입장이 중국과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같은 보도에서 거론된 '남북관계의 대전환', 즉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하여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계속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하겠다"는 선언이 '정상국가'를 지향한다는 북한의 외교정책과 다소 모순되는 점도 존재한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선대의 유훈인 조국통일방안을 180도 바꾼다는 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큰 부담을 질 것으로 보인다"며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외교정책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외교 노선을 택한 이유는 당분간 '신냉전' 프레임이 계속 유효할 것으로 예상된데다, 올해 굵직한 선거들이 여럿 예정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월 13일에 대만의 총통 선거가 예정돼 있으며 4월에는 한국 총선, 11월에는 미국 대선이 뒤를 따른다. 각각 중국, 한국, 미국의 대외정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선거들이다.
원주한라대 정대진 교수는 "대외정책의 변화는 내년 초 대만 총통 선거 이후 양안관계, 미중관계 변화와 내년 말 미 대선 이후 판단해도 되는 문제로 보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외적으로는 현재 '신냉전' 프레임을 활용하면서 '반제자주' 연대와 대미·대남 대치국면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 내년도에 5개년 계획 성과의 조기달성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이익으로 판단한 듯하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현재의 한반도 구도를 유지한 채 경제 분야에 집중하면서, 내부 선전을 지속하는 일이 필요해졌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통일부는 "직접 언급되지 않았으나, 반미·반제 연대 기조는 대미 강경입장을 견지하고 중러와의 협력에 집중한다는 의미로 판단한다"며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주동적', '책략적'으로 대처를 주문한 것으로 보아 변화를 능동적으로 조성해 나갈 것임도 시사,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의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도발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원곤 교수는 "8기 6차 전원회의 보도문은 1만 2천여자이지만, 8기 9차 전원회의 보도문은 2만 5천여자로 두 배에 달한다"며 "부정적 내용도 포함되지만, 북한 보도 내용이 길어지는 주된 이유는 그만큼 업적 분야를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023년 군사 성취를 내세워 경제적 어려움을 상쇄하고, 한반도 전역을 공산화하는 주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미일 위협에 노출됬다는 피포위 의식을 통해 내부 통제를 강화하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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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형준 기자 redpoin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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