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농업을 여는 사람들]① 파인다이닝 사랑 받는 ‘오래 키운 토종닭’

안성=유진우 기자 2024. 1.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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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닭보다 두 달 더 키워
한약 넣어 직접 만든 미생물 발효 사료 사용

[편집자주] 농업 위기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다. 지구 온난화는 우리나라 농업생산 지도를 매년 바꾸고 있다. 노동력 고갈과 농촌 공동체 해체 역시 해묵은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팜·푸드테크·팜테크 같은 산업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조선비즈는 신년을 맞아 이들 산업 연장선에서 오래도록 획기적인 방식으로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가는 생산자들을 만났다. 1차 산업인 농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던 소규모 생산자를 직접 찾아 부가가치를 새로 창출한 철학을 물었다.

한국인에게 닭은 특별하다.

닭은 예로부터 길조와 다산을 상징했다. 신라는 국명이 정해지기 전까지 ‘닭의 숲’ 계림(鷄林)이라 불렸다.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 탄생을 알린 건 하얀 닭이었다. 박혁거세 부인 알영도 닭 모습을 한 용(龍)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관직을 준비할 때 닭 그림을 집안에 걸었다. 닭 벼슬이 관직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닭은 중요한 날 혹은 극진한 대접자리 한 가운데 놓였다. 처가에 찾아온 사위에게 장모는 씨암탉을 잡았다. 여름 대표 보양식 자리는 매년 삼계탕이 차지한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닭이지만 우리는 닭을 모른다. 닭에도 품종(品種)이 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극소수다. 대다수에게 닭은 그저 음식이다. 꼿꼿한 벼슬로 새벽을 알리는 모습보다 식탁 위 튀겨진 치킨이 더 익숙하다.

치킨으로 쓰는 닭 역시 이름이 있다.

국내 고기용 닭(육계·肉鷄) 대부분은 코니쉬 크로스다. 코니쉬라는 품종에 델라웨어 품종을 교배해 인위적으로 만든다. 이 품종은 외국 육종회사가 만들어낸 품종이다.

우리 땅에서 나고 자라도 ‘토종’이라고 부를 수 없다. 우리나라 고기용 닭(육계) 시장 3분의 2를 차지하는 하림과 올품, 마니커 같은 대형 축산 계열화 기업들은 빠르게 자라고 금방 살찌는 이 품종 닭을 선호한다.

나머지 닭이라고 다 토종닭이 아니다.

“보통 시골에서 놓아 키우는 닭을 전부 토종닭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토종닭으로 부르려면 명확하게 지켜야 조건이 있습니다.”

조성현 조아라한약닭농장 대표

지난달 경기도 안성 조아라 한약닭 농장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연간 3만5000마리에 달하는 토종닭을 풀어 놓고 키운다.

그래픽=손민균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한협과 우리맛닭, 소래 토종닭 이렇게 세 종류만 공식적으로 토종닭이라 인정한다. 이곳에서 키우는 닭은 한협 품종 토종닭이다.

한협 토종닭은 일반 고기용 닭보다 미끈하고 날렵하다. 가슴살을 인위적으로 키우지 않아 상체를 치켜 세우기 좋다. 다리는 얇고 길다. 발목이 짧고 허벅지가 두꺼운 고기용 닭과 생김새가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황금빛이 흐르는 붉은 색 몸통을 앞뒤로 움직이며 연신 흙과 잔디를 쪼았다.

토종닭이란 천천히 자라는 품종의 닭을 의미한다.

‘닭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토종닭(Poulet Fermier)을 이렇게 정의한다. 프랑스에서 토종닭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80일 이상 길러야 한다. 일반 고기용 닭은 28일에서 35일 정도 기르고 도축한다. 두 배 이상 오래 키워야 토종닭으로 기본 요건을 갖출 수 있다.

조아라 농장에서는 한협 토종닭을 프랑스 기준보다 오래 기른다. 아무리 일러도 90일 이상 키운 후 내보낸다.

조 대표는 “오래 천천히 키워야 닭이 고유한 육향(肉香)을 갖는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우리는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을 때 흔히 고기가 가진 풍미를 일컬어 육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닭고기를 먹을 때는 육향을 논하지 않는다. 닭에 풍미가 베어들기도 전에 도축하기 때문이다. 양고기도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 양을 도축하면 살은 더 연하지만 독특한 향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조아라 농장은 여기에 좋은 먹이를 먹인다. 일반 사료를 사다 쓰는 대신 20여 가지 재료를 한달 동안 미생물로 발효 사료를 만든다. 1990년대 초 현 대표 아버지 조이형 대표가 개발한 방식이다. 조 대표는 지금도 농장 인근 야산에서 직접 채취한 여러 허브와 솔잎, 버섯, 약재, 그리고 쌀겨, 깻묵을 황토와 함께 발효시켜 닭에게 먹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해당 사료 효능을 놓고 연구를 진행했다. 이 연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아라 농장에서 발효 사료를 먹고 자란 닭 육질은 일반 닭에 비해 칼슘 8배, 인 22배, 칼륨 20배가 높았다. 반면 조지방은 10분의 1 수준으로 낮았다.

그동안 토종닭은 질기다는 편견 때문에 오래 푹 삶는 백숙, 삼계탕 같은 요리에 주로 쓰였다. 그러나 조아라 농장 닭은 부위 별로 발라내 구워 먹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일반 고기용 닭은 근육을 구성하는 섬유가 가늘고 식감이 부드러워 프라이드치킨, 닭강정처럼 튀겼을 때 더 맛있다.

반면 조아라 농장에서 키운 닭은 근섬유가 치밀하고 식감이 쫄깃해 구웠을 때 풍미가 배가된다. 이 때문에 닭을 구이로 소비하는 파인다이닝과 고급 일식당에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토종닭 전문식당에서 백숙과 삼계탕으로 토종닭이 쓰이는 대부분 수요가 여름에 집중되지만, 조아라 농장 닭은 사계절 내내 외식업계에서 선호하는 방식으로 조리하기 좋다”며 “육계 종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소비자 수요를 늘리기 적합한 미래형 축산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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