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대담] “국제사회 신뢰 회복한 韓, 중국과 기술 격차 벌려야”

정미하 기자 2024. 1.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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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갈등은 당분간 지속
기술 분야·수출 통제가 핵심될 것
中과 기술 격차 벌일 절호의 기회
한미동맹 바탕, ‘전략적 명확성’ 추구해야
尹정부, ‘韓은 친서방’ 신호보내, 신뢰 회복
中 이탈 자금 한국 유입 효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24일 ‘2024년 중·미 관계 개편은 불확실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보다 나흘 앞선 12월 20일, 영국 뉴스통신사 로이터는 ‘미·중 관계: 2024년에는 더욱 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제목의 전망 기사를 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 15일 366일 만에 두 번째 대면 회담을 갖고 군사 소통 채널 복원, ‘좀비 마약’으로 불리는 펜타닐 차단에 합의하면서 관계 개선에 나섰지만, 서방과 중국을 대표하는 언론은 미·중 갈등이 2024년에도 이어질 것이라 본 것이다. 2024년 예정된 대만 총통 선거와 미국 대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에 시작돼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올해에도 양국 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미·중 갈등이 미치는 영향력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미국이 중국을 향해 내놓는 첨단 반도체 관련 제재에 한국 기업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소재 분야 관련 수출 통제 역시 마찬가지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박사(선임연구위원, 좌측부터),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경제안보팀장),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달 21일 서울 중구 조선비즈 회의실에서 2024년 미·중 갈등을 포함한 국제 정세와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하고 있다. / 박상훈 기자

조선비즈는 2024년 미·중 갈등을 포함한 국제 정세와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하기 위해 경제 안보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경제안보팀장), 한반도 안보와 북한 경제를 전문으로 하는 고명현 아산경제정책연구원 박사(선임연구위원), 미국 외교 정책·동북아 안보 전문가인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한자리에 모아 좌담회를 진행했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를 밑돌며 올해 겨울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달 21일 조선비즈에 모인 이들은 한 사람씩 도착할 때마다 안부를 묻기에 바빴다. 최근 연 박사와 고 박사는 미국 출장도 함께 다녀왔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기에 자주 모인다”는 이들은 격의 없는 모습으로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기자에게 소개하다 보니, 공통점은 ‘미국과 중국’으로 모였다. 미·중 경쟁, 통상, 공급망 이슈를 주로 다루는 연 박사는 물론 한반도 안보를 연구하는 고 박사 역시 동북아 안보를 다루려면 미·중 갈등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중 갈등은 차기 정권을 민주당이 잡든 공화당이 잡든 이어질 것”이라며 “한국이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고, 신시장을 개척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중 갈등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어떻게 보나.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이하 연원호) “미·중 갈등은 적어도 10년 동안 계속될거다. 바이든 정부에서 만든 대(對)중국 제재 법안 상당수의 기한은 10년이기에, 적어도 10년간 대중 제재가 강도 높게 유지되리라 본다. 이렇듯 미·중 갈등이나 경쟁이 장기화할 듯 하다.”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이하 김인한) “미국이 중국을 계속 때릴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올해 11월 재선을 앞두고 있는 바이든 입장에선 공화당을 의식해서라도 지금까지 강하게 몰아세웠던 중국에 대한 견제를 이어가야 한다. 또한, 바이든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 등 외교 정책에서 보여준 성과가 없기에 유일하게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미·중 갈등을 이용하리라 본다. 다만, 그 기간은 1~2년으로 짧을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대통령. / 뉴스1

바이든이나 트럼프나 대선 승리를 위해 중국 압박 카드를 활용할 것이란 뜻인가.

연원호 미국내 각종 여론 조사를 살펴보면, 미국인은 중국의 부상을 위협이라고 느낀다. 중국에 비호감을 갖고 있는 국민의 비중도 압도적으로 높다. 따라서 국내 정치적으로 중국 때리기는 표로 연결된다. 또한 보통 국내 선거에 가장 중요한 이슈는 국내 경제 문제이지만, 대외 이슈인 중국 문제는 미국의 경제 이슈와도 접점이 크다는 점에서 대외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중국때리기는 선거에 미치는 효과가 좋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더 강하게 대중 견제 정책을 내놓을까.

김인한 “대선 경선이 본격화한 이후 바이든이 대중 정책과 관련해 한발씩 더 나가기도 했다. 여기다 바이든이 11월에 승리한다면 정부 2기를 운영해야 하기에 대중 정책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본다.”

연원호 “그래도 트럼프가 더 강하게 나갈 것이다. 최근 들어 트럼프 캠프에선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원 중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언급했다. 결국 그 자원을 동북아에 투입할거다. 중국에 대한 견제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바이든은 적어도 중국을 ‘경쟁자’로 보지만, 트럼프는 중국을 ‘적’으로 보면서 ‘중국을 경쟁자라고 이야기하면서 경제 통합이나 파트너십을 주장하는 사람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라고까지 한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하 고명현) “두 분 이야기가 일견 모순돼 보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내에서는 연 박사님 이야기처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든, 바이든이 되든 장기적으로 중국을 압박하려는 기조를 세우고 있다. 문제는 미국도 중국도 냉전과 달리 세계를 양분할만큼의 ‘우리가 하는대로 따라’라고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우방이자 동맹국인 한국, 일본, 호주도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는 동의하지만, 일정 부분 거리를 둔다. 중국 역시 미국과 싸우겠다고 나서지만, 주변 국가들이 호응을 해주지 않아 외로운 처지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국을 향해 더 강력한 정책으로 무엇을 내놓을까.

김인한 “기술 분야에 대한 통제, 수출 통제가 핵심이 될 것이다.”

연원호 “기술 향상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미국이 이에 대한 통제에 나설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하나는 중국의 첨단 분야에 미국 돈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 대중국 투자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행정명령을 내놓았다. 김 교수님 말씀처럼, 첨단 기술 분야야말로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할 분야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견제 기조를 ‘스몰야드 하이펜스(small yard high fence·특정 분야에 대한 접근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로 본다면 수출 통제, 투자 제한 강화는 펜스를 높이는 것이라 볼 수 있고, 견제 분야를 추가하는 것은 마당을 넓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박사(경제안보팀장). 한영외고·연세대 동양사학과·영문학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대학원 국제관계학 석사, 스토니브룩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경제통상팀 부연구위원 역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정책자문위원. 미중 경쟁, 통상, 기술 경쟁, 공급망 이슈를 다루는 경제 안보 전문가다. / 박상훈 기자

김인한 “중국은 겉으로 ‘우리 위대한 중국은 굴하지 않을 거야’라고 하지만 사실 시진핑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으리라 본다. 3연임 임기는 시작됐으나, 경제 상황은 좋지 않고 기술 통제, 수출 통제로 인해 경제가 더욱 위축되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군사 강국을 꿈꾸기 힘들어지지 않았나. 시진핑이 다급한 상황에 처했으리라 본다.”

그럼 중국도 미국을 압박할까.

김인한 “처음에는 강하게 나오겠지만, 사실 미·중 관계 개선이 시급한 건 중국이다.”

고명현 “현재 중국은 주도권을 쥘 카드가 없다. 중국을 미국이 압박할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이번에 중국과 미국이 동급의 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럼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중 갈등이 본격화한 이후 미국과 중국의 손익계산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김인한 “미국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이 쫓아온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2010년에 들어서면서 미국 학자들은 ‘중국 멀었어’라는 결론을 냈다. 여전히 미국이 훨씬 앞서있다. 중국과 미국이 경쟁을 할 위치는 아니다.”

고명현 “미국이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혼란을 경험하긴 했지만, mRNA 백신(모더나, 화이자)을 통해 인류 건강에 대한 해결책도 내놓았다. 경제 상황도 팬데믹 때 조금 어려웠지만, 지금은 이전보다 나아졌고, 중국보다 동맹도 훨씬 더 많다. 여러모로 손익계산 측면에선 미국이 더 나은 느낌이다.”

연원호 “손익계산에 대해서는 두 분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2022년 1월 즈음에 두 개의 중국 국책연구소에서 중국의 10대 위험을 언급하면서, 그중에서 가장 큰 위험으로 미국의 수출 통제를 언급했다. 그중에서도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수출 통제가 중국에 손실을 입힌다고 말했다. 베이징대에서도 비슷한 보고서가 나왔는데, 콕 집어서 반도체, 인공지능(AI), 우주항공 이 세 가지 분야에서 미국을 따라가기 쉽지 않다는 내용을 담았다. 결론은 미·중 갈등으로 두 국가 역시 손해를 보지만, ‘진정한 손해를 입는 국가는 중국이다’라는 인식을 중국이 하고 있다고 본다. 이미 손익계산이 나온 셈이다.”

김인한 “연 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국이 반도체, 첨단 기술 분야의 길목을 쥐면서 미국이 기선을 잡고 있는 느낌이다. 19세기 말, 20세기 강대국의 조건은 해군력이었으나, 21세기 강대국은 반도체 분야, 첨단 산업 능력이 좌우한다. 그걸 미국이 쥐고 있다.”

중국 화웨이가 지난해 8월 출시한 스마트폰 ‘메이트 60프로’. 자체 개발한 7나노(nm, 10억분의 1m)급 반도체가 장착됐다. / 화웨이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면서 중국의 기술 발전을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 화웨이가 지난해 8월 출시한 스마트폰 ‘메이트 60프로’에 자체 개발한 7나노(nm, 10억분의 1m)급 반도체가 장착되지 않았나.

연원호 “미국이 제재했기 때문에 돌파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맞지만, 실제로 봤을 때는 기술 개발 속도에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리고 중국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제재하든 안 하든 기술 자립화를 하려고 하는 국가다. 만약 제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이제 남의 기술 갖다 쓸게’가 아니라 자립하려는 국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제재가 효과를 보고 있다, 시간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중 갈등이 지속될 상황이라면, 한국 입장에선 두 나라 사이에서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 할까.

고명현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가야 한다.”

김인한 “또 한미 동맹 이야기한다고 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이야기다. 미·중 갈등 상황에서도 당연히 한미 관계 강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도 상당히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혁신의 본거지, 소위 말해 새로운 기술이 창출되는 곳은 중국이 아닌 미국이다. 또한 한국과 중국이 생산하는 물건이 비슷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발전이 지연된다면, 우리 기업에는 기회다. 격차를 늘릴 수 있는 엄청난 기회다.”

연원호 “기본적으로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따라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는 2022년 12월 인도·태평양 전략을 냈다. ‘자유, 평화, 번영의 비전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포용, 신뢰, 호혜의 3대 협력원칙 하에 인도·태평양 전략을 이해해 갈 것’이라고 했는데, 이에 부합하면 같이 가는 거다. 현재 미국은 당연히 부합하지만, 중국은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호혜 차원에서. 예를 들어, 중국이 공정한 룰에 따라 시장 원리에 입각해 기술 자립화를 이뤘다면 한국도 중국을 비난할 수 없지만, 중국은 부도난 회사도 나라가 보조금을 주며 살려낼 만큼 한국이 세운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

30분 넘게 나눈 미·중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전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한국이 세계 무대에서 ‘친중’(親中) 정부라는 인식을 받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정부의 외교 성과로 ‘전략적 명확성’을 통해 친중 이미지를 불식시킨 점, 이를 통해 국제 사회의 ‘신뢰’를 획득한 점을 높이 샀다. 신뢰를 기반으로 내년과 내후년에 경제적 성과도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고명현 “지난해 초 미국의 한 투자회사에서 나온 보고서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째가 됐는데도 외국에서는 한국이 친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때까지 한국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을 너무 선호한 나머지 미국과 중국 사이에 가만히 있으면, 양쪽에서 모든 이익을 취할 수 있는 것이 당연시 된 결과다. 하지만 이 경우 외국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미국의 동맹인 동시에 기회주의 국가다. 그리고 친중인 나라가 된다. 이 경우 한국에 첨단 기술을 이전할 필요도, 한국에 투자할 필요도 없게 된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 통제를 가할 때 서방이 반발하지 않은 이유 역시 ‘구조적으로 친중인 한국을 우리가 왜 도와줘야 하냐’는 논리가 바탕이 된 결과였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박사(선임 연구위원), 컬럼비아대 경제학 학사, 컬럼비아대 통계학 석사, 파디랜드 정책분석학 박사. UCLA 신경정신의학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 역임. 한반도 안보, 북한 경제, 핵 제재 전문가다. / 박상훈 기자

윤석열 정부 들어 ‘한국은 친중’이라는 인식이 바뀌었다는 뜻인가.

고명현 “지난해 윤석열 정부에서 강하게 추진했던 한일관계 개선, 동맹의 고도화는 단순한 양자 관계 개선이 아니다. 전 세계 투자 업계에 ‘한국은 친서방, 친민주주의 국가다’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전략적 명확성을 기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중국이랑 척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일차원적인 이야기다. 전략적 명확성이 생기면 미국이 우리를 믿고, 호주도 영국도 프랑스도 우리를 믿는다. 중국도 오해를 없앤다. 그러면 오히려 자율성이 생긴다. 명확성을 강조하며 중국이랑 한번 세게 붙었던 일본, 호주가 얻은 게 바로 이거다. 미국이랑 친하다고 밝히니까 중국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고, 그때부터 자율적인 여지가 커지고 중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전략적 명확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 지난해 한국이 거둔 외교적 성과다.”

윤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 성과가 컸다고 보나.

고명현 “윤 대통령이 단시간에 서방 세계가 한국에 갖고 있던 불안감, 불신을 한마디로 불식시켰다. 이를 통해 신뢰라는 무형의 자산을 얻었다. 이렇듯 전략적 명확성은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고, 올해와 내년에도 계속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본다.”

김인한 “요즘 한국 정부가 가치 외교를 강조하는데, 이를 반대하는 쪽에선 ‘왜 자꾸 외국에 나가냐’ ‘실익외교는 어디 가고 가치 외교를 하냐’고 하지만 외교관들은 ‘가치 외교로 접근하니 오히려 이야기하기 더 편하다’고 한다. ‘너랑 나는 이제 친구’라는 식으로 브라더후드를 먼저 만들고 이야기를 하면 더 잘 풀린다는 것이다. 세일즈 외교만 부각되고 있지만, 믿을 만한 친구가 더 많아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고명현 “20세기까지만 해도 ‘이익이 최선, 금전적 이익이 최고’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21세기 들어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화폐는 더 이상 돈이 아니라 신뢰’가 돼 버렸다. 하지만 이걸 눈치채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는 실익외교만 추구하면서 도리어 신뢰를 상실하고 있었다. 이제는 공급망 측면에서도 국제 사회에서 신뢰가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연원호 “미·중 경쟁이 시작되면서 글로벌 패러다임 자체가 바뀐듯 하다. 이젠 중국과 친해져서 이를 활용해 미국과 뭘 해보겠다는 건 먹힐 수 없는 구조다. 한국이 잘못했다기보다 세상이 바뀌었고, 신뢰가 중요한 가치가 됐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해 4월, 윤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 것은 믿음과 신뢰를 주는데 큰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공급망 측면에서도 미국이 신뢰를 기반으로 한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나.”

프렌드쇼어링은 우호국이나 동맹국과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이 중국 의존도를 높이고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한다는 지적에 따라 미국이 오프쇼어링 대안으로 제안한 개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지난해 8월 18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전략적 명확성, 이를 통해 얻은 신뢰로 얻은 경제적 효과는 무엇인가.

고명현 “전략적 명확성은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 중국을 이탈한 자본이 한국 주식 시장에 유입된 것은 신뢰가 가져다준 경제적 효과다. 물론 한국만 수혜를 입은 건 아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양국의 주식시장이 상호 연동됐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투자자들이 한국과 중국을 별개로 생각하면서 생긴 순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최근 증가한 외국인 국내 직접 투자도 신뢰 확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한다.”

2024년 세계 정세를 논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전개되리라 보나.

김인한 “미국은 이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났으면 한다. 미국 입장에선 지금까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했으나, 성과가 없다. 이제 겨울이 오는데 러시아는 점령지를 더욱 요새화할 거다. 이러니 미국에선 우크라이나가 과거처럼 부패해 지원금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이 휴전의 명분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CNN 등은 지난달 23일,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포탄 구매 계약과 관련해 15억프리우냐(약 521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국방부 고위 관리를 구금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군이 포탄 부족을 호소하는 가운데 나온 소식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 필요한 서방의 지원을 받기 위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연원호 “내년에 러시아도 우크라이나도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할 듯하다.”

김인한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낙승일지, 휴전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지 눈여겨 봐야 한다.”

고명현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를 자극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한다. 핵을 쏠까 봐. 그래서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무기를 주지 않았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군이 정작 원했던 건 전투기였지만, 서방은 탱크를 지원했다. 우크라이나 수뇌부도 이를 알고 있을 거다. 러시아가 겨울이나 봄에 한 번 더 대공격을 시도하겠지만, 잘 못할 거다. 그럼 사실상 둘 다 녹다운되는 거고 자연스럽게 휴전으로 가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전장이 경계선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김인한 “사실상 러시아가 이기게 되는 거다.”

고명현 “그렇다. 그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내가 이겼다’고 주장할 수 있고, 대신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유럽연합(EU) 가입이라는 당근을 제시할 거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미국의 반대로 나토(NATO)에는 가입하지 못하겠지만, EU 가입도 충분히 좋은 안이니 받아들일 듯하다. 전쟁은 끝내야 하니까.”

김인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석사, 버지니아대 국제정치 박사. 미국 외교 정책, 동북아 안보, 미중 관계 전문가다. / 박상훈 기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어떻게 될까.

김인한 “곧 끝날거다. 일단 전장이 작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계속 가자지구를 점령할 의사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하마스는 이란에 버림받은 상태다.”

고명현 “이란이 원했던 건 이스라엘군이 소모되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 전사자 수를 보면 이스라엘이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하마스를 밀어붙이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듯 하다. 이스라엘군이 소모돼야 이란이 개입할 여지가 커지는데 지금은 개입했다가 미국에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결국 전술적인 부분에서 하마스가 졌다. 다만,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을 위해 한 기여는 이젠 그 누구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네탸냐후 총리는 유대인 국가만 있는 이스라엘을 원했지만, 이젠 불가능해진 것 같다.”

연원호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은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제학자 입장에서 보면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주변국을 끌어들이냐 아니냐가 더 관심이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을 이유로 홍해 인근을 지나는 상선을 공격하면서 생긴 공급망 이슈가 더 관심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전쟁 자체는 경제학적으로 큰 파급 효과는 없다고 본다.”

그럼 다시 한국 이야기로 돌아가서, 2024년 세계 정세와 관련해 한국 경제가 눈여겨봐야할 이슈는 뭐가 있을까.

연원호 “선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만 선거, 미국 선거는 물론이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너무 낮은 것도 미·중 관계,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유심히 봐야한다 생각한다. 특히 대만의 경우 총통은 민진당, 입법위원 그러니까 의회는 국민당이 지배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현재 민진당이 과반수인데 무너진다는 뜻으로 국민당이 선전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면 정권과 의회의 갈등이 심화돼 정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되고, 국내는 물론 대만을 둘러싼 국제 정세도 불안해지지 않을까.”

김인한 “만약 국민당이 이긴하면 미·중 갈등도 한번 바뀔 수 있는 계기가 될 듯하다. 지금까지 민진당은 ‘중국이 우리를 공격하려 해요. 도와주세요’라는 입장이었고 미국은 ‘도와줄게’로 응했다. 하지만 국민당은 전반적으로 친중이기에 미국이 대만과 중국 사이에 관여하기 애매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연원호 “중국 입장에서 보면 시진핑 이전까지만 해도 양안 관계에 있어 중국은 ‘대만 독립 반대’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대만 독립 반대가 아닌 ‘중국의 통일’을 이야기한다. 대만 독립 반대는 중국의 통일 뿐만 아니라 현상 유지도 포함한다. 대만이 독립을 주장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현상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통일을 언급하는 순간 현상 유지는 옵션에서 제외된다. 즉, 현상을 변경할 의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대만 건국일(10월 10일)을 맞아 대만 타오위안에서 국기를 흔들고 있는 재향 군인들. / 로이터

또 다른 주목할 포인트를 꼽자면.

김인한 “11월 미국 대선 등은 물론이고 ‘중국 경제가 회복하느냐’, 중국 경제의 향방도 한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본다.”

연원호 “내년에도 중국 경제가 회복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2024년 세계 경제가 좋지 않을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렇듯 세계 경제가 좋지 않다는 건 수요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이기에 중국 경제가 회복될 수가 없다. 또한 미국 대선 후보들이 중국 때리기를 할 것이기에 중국 쪽으로 해외 투자가 들어가는 것도 사실 쉽지 않아 보인다.

선거, 중국 경제 외에 또하나의 키워드는 인플레이션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대만 총통 선거에서도 인플레이션은 주요 이슈가 될거다. 현재 발생한 인플레이션은 공급 체계에서 유발됐다. 이에 미·중 경쟁, 추가 관세, 탈탄소에 따른 비용 등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잡을만한 기회는 무엇이 있을까.

연원호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무시했던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과의존은 중국발 공급망 리스크가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중국향 수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강압을 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소 비용을 위해 특정국에 과의존하는 시대를 지나서, 가격적 요소뿐만 아니라 지정학적‧정책적 요소까지 따져 최적비용을 찾는 것이 중요해진 다변화의 시대로 들어가고 있기에 새로운 시장 개척이 중요하다.

이외에도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을 하는 상황은 한국에 위기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미국이 설정한 스몰야드에 속한 산업은 수출 통제나 투자 제한으로 대중국 비즈니스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이런 미국의 조치로 중국의 부상이 지연된다면 한국으로서는 중국과 기술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또한, 미국이 중국 견제를 우선시한다면 우리의 대미 레버리지는 확대된다. 다시 말해 대중국 견제를 돕는 대가로 미국에서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호주는 2021년 오커스(AUKUS, 미국이 영국·호주와 맺은 안보 파트너십)에 참여해 지역 안보를 위한 역할을 확대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핵잠수함 기술을 이전받았다.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가 마비되는 등 다자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상태이기에 양자 협력을 강화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연원호 박사는

한영외고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다. 연세대 동양사학과·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은행을 다니다 UC샌디에이고에서 국제관계학 석사를 하고 스토니브룩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장으로 작년 4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미 정책협의 대표단에 경제안보 담당으로 참여했다.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외교부 북미국 및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문 분야는 미·중 경쟁, 통상, 공급망이다. 산업 측면에서는 반도체를 전문으로 다룬다.

☞고명현 박사는

유년 시절을 아르헨티나에서 보냈다. 컬럼비아대 경제학과, 컬럼비아대 통계학 석사를 하고 파디랜드에서 정책분석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UCLA 신경정신의학연구소 박사 후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전염병을 연구했다. 한반도 안보, 북한 경제, 핵 제재 전문가다. 아산정책연구원에서 11년 동안 일했다.

☞김인한 교수는

고려대에서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과정도 밟았다. 버지니아대 국제정치 박사 학위를 받았다. 콜로라도대 콜로라도 스프링스 조교수와 부교수를 지냈고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로 있다. 한국에 돌아온 지 3년이 조금 넘었다. 전문 분야는 미국 외교 정책, 동북아 안보, 미·중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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