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 투자자 찾는 ‘코인의 블룸버그’ 만든 92년생 창업가… FTX 파산 예견하며 스타 탄생

진상훈 기자 2024. 1. 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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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
2018년 포스텍 졸업 후 창업
초반엔 실패 거듭하며 시행착오
루나 사태·FTX 파산 예측하며 명성
“내년 말 비트코인 가격, 지금보다 높을 것”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이사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크립토퀀트 사무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만화나 드라마의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실화다. 불과 5년 전까지 진로를 고민하며 강의실과 동아리방을 오가던 지방 출신 공대생은 지금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에서 가장 주목 받는 스타가 됐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 무디스 등 여러 대형 금융사가 앞다퉈 협업을 청하고, 매일 전 세계 수십만명의 투자자가 그의 소셜미디어(SNS)를 지켜보고 있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인 크립토퀀트를 이끄는 1992년생 최고경영자(CEO) 주기영 대표의 이야기다. 주 대표는 지난 2022년 5월 테라·루나 폭락 사태가 있기 전 이상 징후를 가장 먼저 탐지해 이목을 끌었다. 반년 후에는 세계 3위 코인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 가능성을 정확히 내다보기도 했다. 블록체인상에서 일어나는 연산 기록, 즉 온체인(On-chain) 데이터 기술로 대형 사건을 잇따라 예측하자, 도박판 같았던 코인 시장에서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투자가 빠르게 확산했고 그의 회사도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현재 크립토퀀트는 전 세계 200만명 이상의 투자자가 이용하는 서비스 플랫폼이 됐다. 스위스의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업체인 글래스노드와 점유율 1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으며, ‘코인 시장의 블룸버그’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과 미국 뉴욕을 오가며 크립토퀀트를 키우고 있는 주 대표를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영등포구의 사무실에서 만나 창업 과정과 성공의 요인, 2024년 가상자산 시장 전망 등을 주제로 인터뷰했다.

◇ 영어 배우려 캐나다 갔던 공대생, 블록체인의 세계로

“단순히 영어 실력을 키우려는 목적에서 캐나다 현지 학생들이 활동하는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그런데 그곳이 바로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만든 동아리였습니다.”

주 대표가 처음 블록체인을 접한 것은 2017년 여름이었다. 그는 포항공과대학교(POSTECH·이하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에 다니다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캐나다로 갔고, 그곳에서 ‘이더리움 모임’에 가입했다. 고향인 울산과 학교가 위치한 포항을 거의 떠난 적 없었던 그가 낯선 해외에서 인생의 항로를 바꾸는 계기를 맞이한 것은 기막힌 우연이었다.

당시 주 대표가 머물렀던 학교는 캐나다 온타리오주(州)의 워털루대학교. 가상자산 시가총액 2위인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린이 다녔던 학교다. 부테린은 이더리움을 개발한 후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났지만, 그의 친구들은 남아서 이더리움 모임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1년 남짓한 캐나다 생활에서 짧게 경험한 블록체인의 신세계는 주 대표의 피를 들끓게 했다. 2018년 졸업을 앞두고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아이콘에 취업했지만, 몇 달 만에 창업에 나서기로 마음을 굳혔다.

주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데는 포스텍 선배인 김서준 해시드 대표의 권유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당시 가상자산을 ‘사기’라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블록체인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결심하고, 조언을 얻기 위해 무작정 김 대표를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대뜸 “기영아, 26살이면 나이에 맞는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장인 블록체인에 돈이 들어오고 있는데, 왜 창업에 도전하지 않느냐는 일침이었다.

주 대표는 바로 아이콘을 나온 후 포스텍 후배들과 손잡고 팀블랙버드를 설립했다. 팀블랙버드는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크립토퀀트를 운영하는 법인의 이름이다. 사무실은 월세 90만원의 서울 망원동 다세대 투룸. 5년 후 글로벌 블록체인 시장의 블룸버그로 성장하는 크립토퀀트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크립토퀀트는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를 비롯해 시카고상품거래소(CME)그룹, 블룸버그, 뱅크오브아메리카, 포브스, CNBC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온체인 데이터와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크립토퀀트 홈페이지

◇ ‘n번방’ 일당 검거 힘 보탰지만…연이은 시행착오

팀블랙버드가 처음 선보인 ‘웨일리(Whaley)’란 이름의 서비스는 일정 규모 이상의 가상자산을 보유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유료 커뮤니티였다. 마치 주식 시장의 유료 종목토론방처럼 고급 투자정보를 얻기 위해 코인 자산가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가입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첫 도전인 웨일리는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주 대표는 “코인 투자자들은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을 공개하길 꺼렸고, 유료 커뮤니티에 대한 수요도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면서 “뒤늦게 입소문을 타긴 했지만, 결국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서비스인 크립토퀀트를 만든 것은 이듬해인 2019년 4월이었다. 전원 포스텍 출신인 멤버들의 전공을 살려,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방향을 튼 것이다.

다만, 크립토퀀트의 초창기는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 가상자산 시장은 각종 데이터와 정보에 기반한 투자가 아닌 ‘주먹구구식’ 투기판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주 대표는 크립토퀀트의 정보 분석 기술을 주로 사이버 금융 범죄를 추적하는 정부나 금융 당국에서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크립토퀀트는 조주빈 등이 주도한 텔레그램방 성(性) 착취, 이른바 ‘n번방 사건’의 수사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당시 조주빈을 포함한 일당들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로 대가를 취했는데, 크립토퀀트가 전자지갑에서 오간 거래 내역을 추적해 경찰에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사업도 결국 접을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금융 범죄 추적에 필요한 기술을 구입하는 데 배정되는 정부의 예산이 적어 제대로 이익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도전 끝에 2020년 여름 가상자산 시장 투자자들에게 갖가지 온체인 데이터를 보여주고 분석하는 현재의 크립토퀀트 서비스가 드디어 첫선을 보였다. 크립토퀀트는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 등을 활용해 약 1만개에 이르는 차트의 온체인 데이터와 각종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 또 대형 투자자의 거래 동향과 거래소, 채굴자의 움직임을 포착해 가상자산의 가격 흐름을 예측하는 기술도 강점으로 꼽힌다.

◇ 테라·루나 사태, FTX 파산 예견하며 코인 시장 스타로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의 지갑에서 무려 8만개의 비트코인이 가상자산 거래소로 넘어갔네요. 권도형씨, 이유가 뭔가요?”

주 대표는 2022년 5월 초 트위터(소셜미디어 ‘X’의 과거 명칭)에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태그한 글을 올렸다. 당시 시세로 비트코인 8만개의 가치는 약 30억달러, 한화로 4조40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권씨가 보유하고 있던 비트코인의 대부분을 거래소로 옮겼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이유에 대해 공개 답변을 요구한 것이다.

주 대표는 “수조원 규모에 이르는 비트코인을 한꺼번에 매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권씨가 이끄는 테라·루나 프로젝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 짐작하고 투자자들에게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 대표의 예상대로 이후 단 며칠 만에 권씨가 만든 가상화폐인 테라·루나의 가치는 ‘제로(0)’에 이를 정도로 폭락했다. 권씨는 비트코인을 전량 매각하고 테라를 사들여 미국 달러화와의 페깅(가격연동)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글로벌 시장에서 77조원에 이르는 투자 손실이 발생했고, 권씨는 현재 몬테네그로의 교도소에서 각국 사법 당국의 심판을 받아야 할 처지로 전락했다.

반대로 테라·루나의 폭락 가능성을 예측한 주 대표는 전 세계 블록체인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이 됐다. 2년간 코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이용자가 늘고 있던 크립토퀀트도 일약 블록체인 시장에서 가장 방대한 양의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주가가 급등했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는 지난 2022년 11월 7일 세계 3위 거래소인 FTX의 스테이블코인 보유량이 급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후 FTX는 유동성 위기에 휩싸이며 파산을 선언했다. /트위터(X) 캡처

주 대표는 반년 뒤인 11월 초 세계 3위 코인 거래소였던 FTX의 이상 징후를 포착했다. 불과 보름 만에 FTX가 보유한 스테이블코인의 93%가 증발했고, 시간당 이더리움 출금 규모 등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공개한 것이다.

거래소가 자체 보유하는 가상자산을 급하게 팔아 현금화하는 것은 재무 구조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다는 신호다. 분석은 정확했다. FTX가 발행한 코인인 FTT는 하루 만에 가치가 80% 넘게 폭락했고, 이 코인을 담보로 거액을 빌려 덩치를 키워 온 FTX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다 결국 파산했다.

◇ “2024년 말 비트코인 가격, 분명 지금보다는 훨씬 높을 것”

‘주반꿀(주기영과 반대로 매매하면 꿀)’, ‘코인 시장의 고인 물’, ‘코인계의 펠레’

가상자산 시장에서 크립토퀀트의 이용자들이 급증하고 주 대표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생긴 별명이다. 온체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주 대표의 예측이 높은 적중률을 보이지만, 때때로 빗나가는 경우도 있어 조롱하는 사람도 늘어난 것이다. 최고의 스타가 최대의 안티 팬을 몰고 다닌다는 속설과 비슷한 경우다.

주 대표는 “코인뿐 아니라 모든 자산은 데이터 외에도 다양한 요인에 의해 가격 흐름이 결정된다”면서 “크립토퀀트의 분석 기술로 변동성 등을 파악할 수는 있지만, 방향성을 더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이사가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영등포구 크립토퀀트 사무실에서 지난 2022년 FTX 폭락 사태를 예견할 당시의 차트를 보며 설명하고 있다. /김태호 기자

주 대표에게 2024년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1월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승인 기대감이 커지면서, 최근 2개월간 비트코인을 포함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은 강세를 보였다. 금융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출시로 더 많은 투자 자금이 유입돼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주 대표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영향 등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수치가 결정하는 영역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그는 비트코인의 발행량 감소와 채굴 비용 상승을 근거로 1년 후 비트코인의 가격이 현 수준보다는 높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주 대표는 “현재 비트코인을 하나 캐는데 1만8900달러가 필요한데, 반감기가 도래하면 비용은 2배 수준인 3만70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비트코인의 공급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희소가치가 커진 기존 비트코인의 가격도 강한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얼마나 오를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한마디만 하겠다”면서 “2024년 12월 31일에 거래소에 표시될 비트코인의 가격은 분명 2024년 1월 1일의 가격보다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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