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2024]① 日 지방창생 해법 NFT서 찾았다… 폐쇄 직전 야마코시 마을 살려

2019년 日 지방창생 프로젝트
NFT로 활동 반경 넓혀
야마코시 마을, 디지털 주민 증가
위스키·멜론부터 고향기부 NFT까지
“이젠 정부가 협업문의 한다”

일본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2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니기타현 나가오카시의 야마코시 마을 풍경. 야마코시 마을은 19세기 초 에도시대 때부터 시작된 비단잉어(니시키고이)를 키워 세계 곳곳에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주민이 740명으로 줄어들며 폐쇄될 위기에 놓여 있다. /풍경 사진 작가 쇼 히로세(廣瀨 翔)

지난달 14일 일본 니가타현 나가오카시 중앙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10분을 달리자 돌연 와이파이 공유기가 먹통이 됐다. 옆에서 운전하던 통역사는 “일본은 아직도 3G(3세대 이동통신)를 쓰는 곳이 많다”며 “이곳이 일본에서 제일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이다”라고 했다.

미시령 옛길을 방불케 하는 산길을 넘어 도착한 야마코시 마을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인구가 점점 줄어 주민은 740명뿐인 데다 고령자 비율은 65%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마을의 주요 산업은 19세기 에도시대 때부터 내려온 비단잉어(니시키고이)를 키워 판매하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곳은 일본 가상자산업계에선 ‘힙한’ 동네다. 대체불가토큰(NFT)을 만들어 지방창생(創生·지방 소멸 대응)에 나서고 있어서다. 지방창생은 2019년 아베 당시 총리가 직속에 마을·사람·일 창생 본부를 설치해 장관을 임명한 뒤부터 일본에서 지방 살리기의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일본 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야마코시를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가상자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곳이다”라고 평가했다.

야마코시가 발행하는 NFT는 마을의 상징인 비단잉어를 그림으로 표현한 니시키고이NFT다. 1만엔(약 9만원)을 주고 NFT를 구입하면 야마코시의 ‘디지털 주민’이 된다. 이들은 마을에 직접 거주하지 않지만, 카카오톡 단체대화방과 유사한 소셜미디어 ‘디스코드’에 접속해 마을과 관련한 여러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원한다면 마을의 대의원으로 출마할 수도 있다. 디스코드라는 가상세계에 마을만의 입법·행정부를 세운 것으로 가상자산의 본질이자 핵심인 탈중앙화를 이뤄낸 셈이다.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서 'ykxotkx'라는 아이디로 활동 중인 일본인이 디자인한 '잉어와 계절'이라는 제목의 NFT(왼쪽)와 오카즈(おかず)라는 예명을 가진 예술가가 그린 '컬러잉어 2.0'이라는 NFT(오른쪽). 지난 8월부터 0.03이더리움(ETH)에 판매되고 있다. 니시키고이NFT는 종류별로 다양한 디자인으로 발행된다. /야마코시주민회의

디지털 주민이 될 수 있다는 것 말고는 니시키고이NFT 거래로 얻는 금전적 이득은 아무것도 없다. 이걸 누가 구매하나 싶겠지만, 지난달 14일 기준 2800여개가 판매돼 1600여명이 NFT를 보유하고 있다. 야마코시 디지털 주민이 최소 1600명이란 의미다. 판매 수익은 119이더리움(ETH)으로 지난달 27일 오전 기준 단순 계산 시 26만5489달러, 한화 약 3억3400만원이다. 이렇게 모인 돈은 모두 마을 발전기금으로 활용된다.

야마코시 주민회의 대표 하루카 다케우치는 시민들이 NFT를 구매하는 이유를 아동이 딱지를 사 모으는 것에 비유했다. 그는 “니시키고이NFT를 구매한다고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면서도 “NFT는 개인적 자아와 관련된 재산으로 야마코시라는 시골과 교류하고 이곳 사람과 소통하는 자기만족을 위해 NFT를 구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디지털 주민이 많아지면서 마을도 차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지난달 11일에는 야마코시 주민 60여명과 니시키고이NFT 보유자 33명 등 100여명이 마을에 함께 모여 송년회를 열었다. 최근에는 NFT를 보유하던 학교 교사가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야마코시로 출퇴근하며 주민회의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 ‘3분 완판’ 후로사토 노제 NFT

한국보다 먼저 저출산·고령화·지방소멸을 겪었던 일본이 NFT를 활용해 지방창생을 꿈꾸고 있다. 평소에는 접하지 못할 신선한 경험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담긴 NFT를 판매한 수익으로 지방 일자리 창출이나 인프라 개선에 나서는 것이다. 모두 중앙정부가 아닌 일본 기업이나 가상자산 스타트업이 주도하고 있다.

2021년 설립된 일본의 증류주 제조·판매사 위스키앤코(Whiskey&Co)는 토큰 Key3를 발행해 시즈오카현 미시마시 살리기에 나섰다. Key3를 판매한 돈으로 후지산 용수가 나오는 미시마 지역에 한정판 위스키를 만들 증류소를 건설, 지방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Key3 구매자들은 투표를 통해 증류소 건설 과정부터 원료 선정, 증류·저장·숙성방식 등을 직접 선택한다. 토큰을 많이 가질수록 투표에서 더 많은 표결권을 갖는 구조다. ‘내가 만든 3년 숙성 한정판 위스키’ 체험이 가능한 NFT가 인기를 끌면서 key3는 발행 20일 만에 1000만엔 넘게 판매됐다.

토큰 발행형 클라우드펀딩 매커니즘. 위스키앤코(Whiskey&Co)가 펀딩 플랫폼 파이낸시(FiNANCiE)를 통해 key3 토큰을 발행하면, 이를 서포터가 구매한다. 서포터들은 미시마 지역 한정판 위스키 제조에 필요한 원료 선정 등 각종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의사결정은 투표로 진행되는데, 토큰을 많이 보유할 수록 더 많은 표결권을 갖는다. 토큰은 1인당 10구(10만pt)까지 보유할 수 있다. /FiNANCiE 보도자료 발췌

최근 국내외 가상자산업계의 주목을 받는 또 다른 NFT 프로젝트는 한국의 고향기부제와 유사한 ‘후로사토 노제(ふるさと納稅)’다. 지자체에 기부금을 내면 해당 지역의 특산품을 받고 기부액 일부를 세엑공재로 돌려받는 것인데, 일본 가상자산 스타트업 아루야우무(Alyawmu)가 NFT를 접목해 이목을 끌었다.

아루야우무는 각 지자체와 협업해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지방의 명소·특산품이 함께 그려진 NFT를 판매해 수익의 일부를 지방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업 시작 20개월 만에 일본 14개 지자체와 함께 약 600종류의 NFT를 발행해 2400여개를 판매, 7200만엔이 넘는 고향기부를 기록했다.

첫 시작은 홋카이도의 요이치초(余市町)다. 요이치는 일본 위스키 브랜드 ‘니카’의 증류소를 비롯해 와인·니혼슈 등 각종 술을 제조·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루야우무는 여성·남성 캐릭터가 와인을 들고 있는 모습의 NFT를 개당 12만엔에 판매했다. NFT를 구매해 보유하면 요이치에서 생산한 한정판 와인을 우선 구매할 권리를 가진다. 첫 사업이었지만 3시간 만에 완판돼 기부액은 648만엔을 기록했다.

추가 출시된 NFT도 불티나게 팔렸다. 새 캐릭터 나루카미(ナルカミ)와 오사카 다이시초(太子町) 풍경을 합친 CNP NFT는 발행 3분 만에 완판돼 666만엔의 기부액을 기록했다. 여행하는 아오판다 NFT도 9분 만에 모두 팔려 999만엔을 거둬들였다.

그래픽=정서희

지난해 기준 일본 고향기부 시장이 9600억엔(약 8조8400억원) 규모인 점을 고려하면, 아루야우무의 NFT는 가능성을 엿본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타나카 히로아키 아우야우무 대표는 NFT 혜택을 강화하면 가파른 성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하타나카 대표는 “온천이 유명한 지역에서 발행한 NFT를 구매한 사람에게 영업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미리 온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특권을 부여하는 게 좋은 예시가 될 것”이라며 “지방에 기부금을 내면 고기·술을 답례품으로 주는 대신 NFT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 공무원 설득한 일본 청년, ‘웹3 국가과제 선정′ 화답한 정부

조선비즈가 만난 일본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들은 사업 초창기 공무원들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타나카 대표는 “(공무원들이) 새로운 도전이나 전례가 없는 걸 안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이미 고향기부에 대한 자세한 규정이 존재하는데, NFT는 규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굉장히 싫어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아루야우무가 요이치초와 함께 시작한 첫 고향기부 NFT 사업이 일부 성공을 거두자 여러 지자체에서 협업할 수 있냐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총무성 시정촌 세금과장이 아루야우무를 직접 방문했고, 자민당이 운영하는 ‘웹3 정책검토 TF’는 하타나카를 초청해 의견을 들었다고 한다.

특히 블록체인 기반 웹3 산업이 국가 과제로 정해진 뒤부터 정부 공무원들이 가상자산업계의 청년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본 가상자산업계에서 1위를 다투는 아스타 재단의 소타 와타나베 최고경영자(CEO)도 격의 없이 일본 정부와 소통하며 이들에게 가상자산 관련 강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시카와 슌 아스타 재단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정부가 가상자산 규제를 완화하면서 관련 스타트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정부가 업계 관계자들과 많이 소통을 하고 있어 서로 도와주는 관계에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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