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新시장] 1년만에 전투기 12대 초스피드 납품… 유럽 놀래킨 KAI
내년 2차 물량 공급… “유럽시장 확장”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 세계 시장이 잘게 쪼개지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각 국의 보호무역주의을 확산시켰다. 한국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언제든 빗장을 걸어잠글 수 있다. 기존 시장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한국 기업의 도전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11월 29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동쪽으로 약 50㎞를 차로 달리자 민스크 공군 기지가 나왔다. 입구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초병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기지에 들어서자 꼬리 날개에 ‘5010′이라고 쓰여진 FA-50 전투기 한 대가 비행 테스트를 위해 활주로로 향했다. 기지 한편에 있는 대형 격납고에는 FA-50을 재조립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센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벽면에 태극기가 걸린 격납고 내부로 들어서자 가로 13.14m 높이 4.94m의 FA-50 전투기 2대(11호·12호기)가 웅장한 모습을 자랑했다. 11호기 아래와 날개에는 작업자 10여명이 달라 붙어 엔진 및 날개 결합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폴란드는 2022년 9월 총 48대(약 4조1000억원)의 다목적 전투기 FA-50을 구입하기로 KAI와 계약했다. 이중 12대(FA-50)는 지난해 말까지 납품하는 조건이었다. 세계 방산 역사상 전투기 12대를 1년 만에 공급한 사례는 없었다. KAI에는 매우 도전적인 과제였다.
◇ ‘스피드 납품’에 놀란 폴란드… 12호까지 납품 완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폴란드에는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작년 7월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서쪽 리비우와 폴란드의 국경은 불과 50㎞ 떨어져 있다. 폴란드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은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 다음 타깃은 폴란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폴란드 정부는 국방력 강화에 나섰고, 시급히 무기를 도입하기 위해 KAI를 선택했다. KAI의 납품은 ‘속도전’이었다. 작년 9월 1호기를 시작으로 기지를 방문했던 11월까지 총 9기의 FA-50을 납품한 상태였다. 지난달 나머지 3기의 작업을 완료해 총 12기의 납품이 1년 만에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KAI 측 관계자는 “한달에 3대씩 공급한 것은 항공기 산업 역사상 최단기 납품 사례”라고 말했다.
수출된 FA-50은 경남 사천 KAI 공장에서 생산된 전투기를 몸통, 양측 날개(2개), 꼬리 날개(2개), 수평날개(1개), 엔진(1개) 등 총 7개로 나눠 비행기로 실어온 뒤 현지에서 재조립한다. 이를 위해 15명의 KAI 엔지니어들이 폴란드에 파견됐다.
이날 격납고에서는 11호기와 12호기의 재조립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장에 있던 폴란드 방산기업 관계자들은 KAI의 재조립 속도에 “믿을 수 없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26일 폴란드에 도착한 11호기는 이틀 뒤인 27일부터 작업을 시작했는데 불과 3일 만에 엔진 조립까지 작업을 끝냈다.
이날 11호기 주변에서는 작업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엔진 설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품질 검증 경력 30년의 베테랑 작업자가 전투기 하단에 손바닥 만한 구멍에 작은 손거울을 넣어 엔진 내부를 살펴본 뒤 “오케이”라고 말하자 다른 작업자들이 엔진 덮개를 들어올리며 볼트를 체결하는 마무리 작업을 했다.
재조립이 끝나면 지상 테스트에 돌입한다. 엔진 점검과 함께, 각종 장비들이 제대로 가동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전투기가 납품 되기 까지는 ‘재조립→지상테스트→비행테스트→폴란드 측 수락검사(외관·비행테스트 등)→서류 검사→납품 승인’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창재 KAI 유럽사무소 소장은 “폴란드군은 우리의 납품 속도에 대단히 놀라고 만족하고 있다”며 “이런 납품 경험은 추후 다른 유럽 국가에 수출할 때도 경쟁력이 될 것 같다. 2025년도부터 납품하는 2차 물량 준비에도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 兆 단위 유지·보수 계약도 기대
KAI는 12대의 전투기를 빠르게 납품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한국 정부의 지원을 꼽았다. 폴란드에 납품된 12대의 초기 물량은 당초 KAI가 한국 공군에 납품하기 위해 만들어 둔 물량이다. 국방부 등 한국 정부가 수출 물량으로 이관할 수 있도록 하면서 빠른 납품이 가능했다. 이번 계약으로 KAI는 지난 2011년 T-50 수출을 시작한 이래 사상 최대규모 계약과 첫 유럽시장 진출 기록을 세우게 됐다.
폴란드는 국내 방산업계의 유럽 전초기지로 꼽힌다. KAI 외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K-9, 다연장로켓 천무 등 총 12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로템도 K-2 전차 등 약 4조5000억원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2차 계약 협상이 진행 중이다.
KAI의 2차 물량 납품은 2025년부터 시작된다. 폴란드 정부의 요청으로 개조된 FA-50PL 형상이 2028년까지 공급될 예정이다. FA-50PL은 항속거리를 늘려주는 공중 급유기능, 능동위상배열(AESA) 레이더, 공대지·공대공 무장 업그레이드 등 FA-50의 최고급 사양 모델이다.
이 소장은 “FA-50PL은 경공격, 특수전술 및 전투임무 등 다양한 임무 작전이 가능할 뿐 아니라 F-16과 호환성이 높고 F-35와 같은 5세대 전투기의 교육 훈련에도 최적화됐다”며 “수출에 성공한 폴란드를 거점으로 유럽 시장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AI는 이번 계약을 계기로 폴란드에 물류허브(Logistics Hub)를 짓고 유럽의 4·5세대 전투기 조종사 훈련 소요를 충당하기 위한 국제비행훈련학교 운용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또 항공기 유지·보수·운영(MRO) 사업 계약 체결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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