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4성으로 구분했을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4. 1. 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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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 따라 인력·자재 달라… 정조의 실용정신 빛났다
창룡문은 산상동성에 포함된 시설물이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화성을 흔히 동성, 서성, 남성, 북성으로 구분해 부른다. 그런데 의궤 전체를 아무리 뒤져도 이런 명칭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4성 구분은 편의상 후세에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니고 권5 실입(實入)에 나온다. 실입이란 공사에 실제 투입된 자재, 인력 등을 기록한 것이다. 실입에 성 쌓는 돌의 사용량을 구분하며 ‘평지북성, 평지남성, 산상서성, 산상동성’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성역 당시부터 사용한 것이다.

의궤에 기록된 4성 체계의 개념은 무엇일까? 우선 4성 중 하나인 평지북성에 대한 의궤 기록을 보자. “평지북성은 8개소인데 화홍문의 서쪽으로부터 서옹성의 북쪽까지로 전체가 737보 4척”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머지 3곳도 똑같은 형식이다. 이 기록에서 유의해 봐야 할 점이 있다. 4성 명칭, 개소 단위, 구간 길이, 기록 순서이다. 이를 살펴보며 개념에 접근해보자.

첫째, 4성의 명칭이다. 4성 명칭은 ‘평지북성, 산상서성, 평지남성, 산상동성’이다. 명칭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용어에 두 의미가 포함돼있다. 앞부분은 평지와 산상이라는 지형이다. 뒷부분은 동서남북이라는 방위다. 이것은 평지와 산상이 4성 구분의 주체이고 지형이 4성 체계의 개념이라는 의미다.

봉돈의 남쪽과 북쪽이 4성에서 원성 구간(개소)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당시 4성으로 구분한 것은 화성을 지형으로 구분할 목적이었음을 말해준다. 왜 지형으로 구분했을까? 지형에 따라 투입되는 인력과 자재가 달랐기 때문이다. 착공 전 조달 준비, 시공 중 투입, 준공 후 정산에 기준을 삼기 위해서였다. 산상성은 높이가 16척이고, 평지성은 높이가 20척이다. 평지성에는 내탁공사가 추가된다. 공사 자체가 달랐다. 뒷부분에 동서남북 방위를 붙인 것은 다시 인력, 자재의 배치나 배분에 편리하도록 4개 지역으로 나눈 것이다. 한마디로 공사 난이도에 따라 평지성과 산상성으로 먼저 구분했다. 그리고 2차로 동서남북으로 구분한 것이다.

둘째, 4성 별 ‘개소’ 단위와 구간 수이다. 4성 체계에 나오는 단위 ‘1개소’는 원성 구간을 말한다. 곡성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유의해야 한다. ‘원성 구간 1구간’이란 곡성이 끝나는 A지점부터 다음 곡성이 시작되는 B지점까지 사이에 있는 순수한 원성만을 의미한다. 한 예로 ‘봉돈에서 동이치까지 114보 1구간’의 의미를 살펴보자.

봉돈에서 동이치까지 사이는 원성 1구간이다. 그리고 길이 114보는 원성 길이를 말한다. 원성이기 때문에 봉돈과 동이치의 곡성 길이는 제외되는 것이다. 이 1구간의 시작점과 종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시작점은 ‘봉돈의 북쪽’이고 종점은 ‘동이치의 남쪽’이다. 원문 ‘자봉돈지북(自熢墩之北)’과 ‘지동이치지남(至東二雉之南)’이 증명한다.

성역의궤 성터, 여장, 4성 모두 행궁 좌향을 기준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기록했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유의할 점은 곡성에 해당하는 시설물과 해당하지 않는 시설물을 구분하는 것이다. 성 가까이 시설물이 위치한다고 곡성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헷갈리면 안 된다. 곡성에 해당하지 않는 시설물은 크게 ‘성 안에 있는 시설물’, ‘용도 안에 있는 시설물’, ‘성 밑에 있는 시설물’로 나뉜다.

각 시설물 이름을 보자. 첫째, ‘성 안에 있는 시설물’은 동북각루, 서북각루, 동남각루, 서노대, 서장대, 동장대, 동북공심돈이다. 둘째, ‘용도 안에 있는 시설물’은 서남각루다. 셋째, ‘성 밑에 있는 시설물’은 북은구, 남은구다. 이외에 중포사, 내포사, 성신사도 있으나 이들은 원래 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헷갈릴 염려는 없다.

예를 들어 서북각루를 보자. 서북각루는 ‘성 안에 세운 시설물’로 곡성 위에 세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서북각루가 원성의 시작점과 종점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화서문 남쪽부터 서일치 북쪽까지’가 원성 구간 1구간이 된다. 화서문과 서일치가 이웃하는 곡성이 되기 때문이다. ‘서북각루 동쪽까지’라는 말이나 ‘서북각루 서쪽에서’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서북각루는 곡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셋째, 4성 각 구간 길이다. 4성 체계에 기록된 구간 개소는 모두 원성 구간이므로 구간 길이의 합도 원성 길이가 된다. 4성 길이를 보자. 의궤 기록에 “평지북성은 737보4척, 평지남성은 282보, 산상서성은 1천193보4척, 산상동성은 1천751보”다. 합하면 평지성이 1천19보4척, 산상성이 2천944보4척이고, 4성 전체 길이는 총 3천964보2척이다. 이 원성 길이에 전체 곡성 길이 635보4척를 합하면 4천600보가 된다. 바로 화성 길이와 일치한다.

화서문은 평지북성과 산상서성의 경계에 있는 시설물이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넷째, 기록 순서다. 북, 서, 남, 동 방향 순으로 기록했다. 이는 행궁의 좌향을 중심으로 좌측부터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행한 순서다. 화성 국면도 행궁의 좌향을 중심으로 후진, 안산으로 부르고 있다. 의궤에서 터닦기 편, 여장 편, 실입 편 모두 행궁 좌향을 기준으로 북, 서, 남, 동 순으로 기록이 진행한다. 의궤 모두 같은 체계다. 현재 안내판 등 모든 체계가 이와 반대로 하고 있다. 수원화성은 화성성역의궤란 기록이 있어 존재하듯 기록 체계도 존중해야 한다.

공사는 지형과 설계에 지배를 받는다. 산상성과 평지성은 계획과 설계가 각각 다르다. 정조는 방위에 의한 단순한 식별보다 지형 개념으로 구분했다. 거기에 방위를 붙여 장인과 백성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화성 4성 체계이다. 4성 체계로부터 정조의 실용정신과 경영철학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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