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지향 ‘특수 관계’ 부정…남북을 ‘전쟁 상대’로 규정
김정은 “더 이상 동족 아냐”
남북기본합의서 원칙 폐기
선대 통일 정책까지 비판
사실상 ‘회복 불가능’ 진단
통일부 “과시성 도발 전망”
남북합의 전면 파기 우려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의 종언을 의미한다. 대신 김 위원장은 “남조선 전 영토 평정”을 외치며 남한을 전쟁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6~30일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한 신년사 격 연설의 핵심은 남북관계 전면 재규정으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 통일 노선과 극명하게 상반되는 ‘흡수 통일’ ‘체제 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 것들과는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이라며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되였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국가 대 국가’ 선언은 같은 민족이라는 관점으로 대화·협력을 모색해온 남북 ‘특수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는 의미로 평가된다. 탈냉전기인 1991년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의 평화 통일·화해 원칙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3년 중반부터 감지돼왔다. 김 위원장이 2022년 12월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한 데 이어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7월 담화에서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호칭하며 비난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괴이한 족속들과 통일 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선대 지도자인 김일성·김정일의 통일 정책을 비판하기에 이르렀다. 김 위원장은 “10년도 아니고 반세기를 훨씬 넘는 장구한 세월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가 내놓은 조국 통일 사상과 노선, 방침들은 언제나 가장 정당하고 합리적이고 공명정대한 것으로 하여 온 민족의 절대적인 지지 찬동과 세계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나 그 어느 하나도 온전한 결실을 맺지 못했으며 북남관계는 접촉과 중단, 대화와 대결의 악순환을 거듭해왔다”고 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선대의 통일 정책 유훈까지 포기하는 선언을 한 점은 남북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파탄 상태에 도달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했다.
향후 대남 정책의 핵심으로는 ‘전쟁 준비’를 내세웠다. 김 위원장은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 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면서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의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 행동에 보조를 맞추어나가기 위한 준비”를 지시했다.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등으로 우발적 충돌 우려가 높아진 한반도 정세는 새해 극한의 군사 대립으로 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이 핵·미사일 개발과 각종 도발적 군사 행동에 몰두하고, 이를 억제하려는 한·미가 전략자산 전개와 각종 연합훈련을 단행하는 악순환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부는 이날 “최고지도자가 직접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언급한 만큼 어떤 형식으로든 과시성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남북합의 전면 파기 선언에 나설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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