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띠 스타' 바둑 전설의 반열에 오른 신진서 9단 [신년 인터뷰]

이재호 기자 2024. 1. 1.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2023년 한해에만 29연승 포함 사상 첫 100승 돌파. 아시안게임 금메달. 48개월 연속 랭킹 1위. 2019년부터 5년간 세계 랭킹 1위. 2009년 이후 14년 만에 '바둑 올림픽' 응씨배 우승컵을 한국에 안기는 등 2023년을 누구보다 화려하게 보낸 신진서(24) 9단이다.

2000년생 '용 띠'인 신진서 9단은 '용의 해'였던 2012년 프로기사로 입단한 이후 11년간 조훈현-이창호-이세돌의 뒤를 잇는 레전드 바둑기사의 반열에 올랐다. 다시 찾아온 용의 해. 푸른 용의 해를 맞이하는 '용띠' 신진서 9단과의 신년 인터뷰를 통해 2023년을 돌아보고 2024년 용의 해에 임하는 마음을 들어봤다.

ⓒ한국기원

▶2023년 최악의 순간과 최고의 순간

신진서 9단에게 2023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신진서는 기쁨의 순간에 대해 "없다"면서 "아쉬운 순간부터 기억난다. 6월 중국 란커배에서 패배가 가장 아쉽다. 첫판을 이기고 나서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그게 자만이었다. 특히 1승1패 후 3국에서 그렇게 유리한 대국을 역전당한 순간은 내 바둑 인생에 없었다. '우승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무너진 스스로에게 한심했다. 그렇게 패하며 우승을 놓치고 후유증이 컸다. 그 정도 패배는 1년 자체를 회복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응씨배, 아시안게임 같은 큰 대회가 눈앞에 있었기에 그렇게 무너질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이후 응씨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며 그나마 할 수 있는 선에서 회복했다. 올 한해를 100점 만점에 30점만 주고 싶은데 그나마 란커배 준우승 이후 회복했다는 점에서 70점 정도를 줄 수 있겠다"고 말한 신진서 9단.

100승 돌파, 응씨배 우승, 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2023년의 수많은 성과에도 자신에게 인색한 신진서에게 그래도 기억 남는 2023년의 순간을 뽑아 달라 말하자 "그나마 올해 특별했던 순간이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시상대에 올라섰을 때다. 사실 아시안게임은 2022년부터 준비해왔다. 물론 개인전 8강에서 대만의 쉬하오홍에게 패했지만 쉬하오홍이 아시안게임에서 120%의 능력을 발휘해 일류기사들과 동급의 능력을 보였기에 인정한다. 바둑은 본질적으로 개인전인데 아시안게임에서는 '팀'으로써 뭔가를 해냈다는 기분이 매우 뿌듯했다.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웃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시상대에서 환하게 웃는 신진서 9단과 바둑 대표팀 선수들. ⓒ연합뉴스

▶바둑만 생각할 수 없는 1인자의 무게감

신진서 9단에게 여전히 어린 시절처럼 바둑 한판 한판이 재밌는지 묻자 "재밌고 편하게 둔 바둑에 대한 기억이 언제인가 싶다. 이제 솔직히 제 바둑에는 재미보다는 중압감과 압박이 더 크다. 사실 '재밌다', '즐긴다'는 것이 대국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며 "그나마 재밌는 순간을 떠올리자면 AI도 생각지 못한 수를 뒀을 때다. 사실 AI 바둑 공부가 기사들이 가장 재미없어하는 부분인데 저는 그 재미없는 걸 가장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다 한달에 한번정도 AI도 생각하지 못한 수가 보일 때가 있는데 그때 잊었던 바둑에 대한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예전에야 승패에만 연연하면 됐다. 하지만 어느새 제 위치가 승패만 생각할 수 없게 됐다. 사실 돌을 나무판 위에 올리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행위에 수많은 팬들이 지켜보고 후원사와 관계자들이 주는 믿음에 보답해야하는 것이 됐다. 그저 바둑 한판을 이기는 게 아니라 '재밌고 좋은 바둑'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졌다고 기분 나빠하는 티도 냈는데 이제 바둑을 통해서 성장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야한다. 바둑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팬들과 소통하는 바둑 기사가 되어야하고 그럴 것이다."

ⓒ한국기원

▶2024년, '1인자 중의 1인자' 전설이 되기 위해

신진서 9단은 2019년부터 세계 랭킹 1위를 놓치지 않으며 조훈현-이창호-이세돌로 이어지는 역대 바둑 1인자 계보를 잇고 있다. 스스로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신진서는 "제가 역대 1인자들과 비교해서 결승전에서 승부사적 기질이 부족하다는 것이 단점인데 이걸 예전에는 스스로 느끼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나. 이제는 인정하고 있다"며 쉽지 않은 얘기를 털어놨다.

"세계 대회를 나가면 결승전 전까지는 문제가 없는데 결승에만 오르면 '한국에 우승을 안겨야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역대 1인자 사범님들은 결승에 오르면 버릴 건 버리고 가져갈 건 가져가며 더 강해지는 모습이었는데 저는 오히려 가져갈 건 버리고, 버릴 거만 가져가며 세계 대회 결승에서 무너졌다"고 말을 이어간 신진서는 "물론 1인자 선배님들을 뒤따라야한다는 압박감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적을 냈을지도 모르겠다. 1인자라는 수식어는 부담감이긴 하지만 원동력이기도 하다. 아직 저는 1인자 선배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것이 부담이 된다면 그건 제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세계 대회인 LG배, 응씨배, 삼성화재배 3개 대회에서 우승을 이루고 싶다고 밝힌 신진서 9단에게 24세가 되는 2024년을 바둑에 비유하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다.

"제 바둑 인생은 지금 대국의 중반정도 왔다. 바둑에서는 중반이 가장 중요한 시기다. 저는 목표가 크다. 하지만 아직 어린 시절 목표였던 이창호 사범 등에 비교하면 부족함을 느낀다. 특히 2023년을 보내며 많은 대국을 통해 체력적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결국 바둑 실력을 더 키워서 넘어서야 한다. 완벽했던 적은 없지만 현역 바둑기사 중에서는 가장 완벽한 바둑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한국기원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

Copyright © 스포츠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