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니 사로잡은 한국 다수확 벼…그들의 든든한 먹거리 되다 [K-농업, 세계를 누비다]

하지혜 기자 2024. 1. 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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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농업, 세계를 누비다] (1) 아프리카 K-라이스벨트…기니 사로잡은 한국 다수확 벼
장마철 길어 물 풍부한데도
관개시설 미비로 기아 심각
‘품질·수량’ 토종보다 월등
통일계 벼 재배 1년여만에
80개 마을 380㏊로 급증
지난해 3모작 성공 농가도
초등학교 점심식사로 제공
아이들 등교 유인책 ‘효과’
아프리카 케이(K) _ 라이스벨트 구축사업 참여국가① 기니 은제레코레에서 생산한 통일계 벼는 인근 마을에 있는 웨야 북부 초등학교의 학교급식 재료로도 쓰인다. 쌀밥 위에 나물소스를 얹어 먹는 게 전부이지만 아이들에겐 귀한 한끼다. ② 웨야 북부 초등학교 학생들이 한국에서 온 손님을 반갑게 맞아준다. 이곳 마을에서 통일계 벼 품종을 재배하면서 한국은 친숙한 나라가 됐다. ③ 드넓게 펼쳐진 평지가 가나 ‘K-라이스벨트 구축사업’의 벼 종자 생산단지가 들어설 자리다. 다산컨설턴트

서아프리카 기니의 수도 코나크리에서 최남단 지역인 은제레코레까지는 차로 꼬박 이틀이 걸린다. 도로가 제대로 닦여 있지 않아 먼 길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니 국내를 오가는 비행기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구호인력 수송용 비행기 한대가 유일하다. 2023년 11월24일(현지시각) WFP의 취재 협조를 받아 이 비행기를 타고 코나크리에서 1시간반 만에 은제레코레에 도착했다.

시곗바늘을 뒤로 돌려 우리나라의 1950∼1960년대로 돌아간다면 이와 같을까. 은제레코레의 첫인상은 꼭 그러했다.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톳길에 늘어선 낡은 단층집들과 인가보다 더 많은 숲에는 시간이 멈춰 있는 듯했다. 한국의 과거와 닮은 건 경관만이 아니었다. 식량 사정도 우리나라의 보릿고개 시절처럼 팍팍했다.

기니 은제레코레 부오지역의 농민들이 통일계 벼 품종 ‘이스리-7’을 수확하고 있다. 기계화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커터칼로 낟알이 달린 줄기 윗부분만 베어낸다.

임형준 WFP 기니사무소장은 “기니는 장마철이 길어 물이 풍부한데도 제대로 된 관개시설이 없어 가뭄이 심한 시기엔 기아에 시달린다”며 “식량 생산이 불안정하다보니 국민의 82%가 하루에 한끼밖에 못 먹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니 서민들은 우리처럼 쌀을 주식으로 먹는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아 고봉밥에 소스를 조금 얹어 먹는 게 식사의 전부다. 쌀마저도 자급률이 65%에 불과해 나머지는 수입에 의존한다. WFP에 따르면 기니의 연간 쌀 수입량은 2010년 26만t에서 2020년 70만t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니 정부는 쌀 생산성 증대에 관심이 많다. 다수확 벼 품종과 농업기술 등을 전수해주는 ‘케이(K)-라이스벨트(한국형 쌀 생산벨트) 구축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현재 기니에선 WFP·한국이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본떠 시행하고 있는 ‘제로헝거 빌리지사업’과 K-라이스벨트 구축사업을 통해 통일계 벼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2022년 2월 1개 마을(0.5㏊)로 시작한 재배규모가 현재 80개 마을(380㏊)로 늘었다. 현지 재래종 대비 짧은 재배기간과 5배가 넘는 수확량, 우수한 맛 등이 농가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결과다. 특히 은제레코레는 ‘이스리-7’ 등 통일계 벼 품종을 가장 활발하게 재배하는 지역으로, 지난해엔 3모작에 성공한 농가도 있었다.

마침 이날 찾은 은제레코레 부오지역에선 8월에 심은 ‘이스리-7’ 수확이 한창이었다. 가지런히 줄을 맞춰 심은 논벼에 황금빛 낟알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우리나라 가을 들녘을 연상케 했다. 반면 6월 인근 밭에 씨앗을 뿌려 심은 재래종 벼엔 낟알이 없는 쭉정이가 숱했다. 조나 소노무 농업기술지도사는 “농가들이 원래 쓰던 토종 벼 종자엔 이것저것 인증받지 않은 종자들이 섞여 있다보니 품질 높은 쌀을 생산하기 어려웠다”며 “통일계 벼 품종은 생산성이 높고 맛과 향·식감이 좋아 종자에 대한 농가들의 수요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부오지역의 농민들이 수확한 벼를 타작하고 있다.

논벼 기계화율이 99.3%에 달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기니 벼농사는 100%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한손에 작은 커터칼을 쥔 농민들이 뿔뿔이 흩어져 낟알이 달린 줄기 윗부분을 낚아채듯이 베어냈다. 수확한 볏단은 땅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조금씩 꺼내 나무 막대기로 타작했다. 그렇게 골라낸 낟알을 두손 가득 모은 농부들의 얼굴엔 수확의 기쁨이 넘쳤다.

수확 현장에 이어 찾은 웨야 북부 초등학교에선 통일계 쌀로 학교급식을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WFP가 마을 농민에게 사들여 학교에 지원하는 쌀은 아이들의 점심식사로 제공된다. 작은 대야만 한 플라스틱 그릇에 쌀밥을 담고 그 위에 나물소스를 뿌리는 게 전부이지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2∼3시간을 걸어오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아울러 쌀밥 한그릇은 교육열이 낮은 기니의 아이들이 학교 교육을 받으러 오게끔 하는 유인책이 되기도 한다.

기다리던 점심시간, 자그마한 아이들은 옹기종기 앉아 맛있게 식사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아프리카에서 난 한국 쌀맛이 궁금해졌다. 밥 한숟갈을 얻어 입에 넣자 익히 아는 구수한 향이 가득 퍼졌다. 밥 짓는 기술이 달라서인지 한국에서 먹는 쌀보다 찰기가 덜하긴 해도 본래 풀풀 날리는 장립종을 즐겨 먹는 이곳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었다.

임 소장은 “통일계 벼 품종 재배를 통해 잉여 쌀이 늘면 학교급식뿐 아니라 쌀가루로 아동영양식도 만들어 지원할 수 있다”며 “통일계 쌀로 빈곤국이 발전할 수 있는 교육·영양 등 인적자본의 토대를 다지고 쌀농가의 소득도 높일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자면 지속 가능한 벼 종자 공급과 관개 및 수확 후 관리시설 등 인프라 구축, 농업기술 향상 같은 과제도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K-라이스벨트 구축사업을 총괄하는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기니에 140㏊ 규모의 ‘이스리-7’ 종자 생산부지를 확보했다. 나아가 2027년까지 기니 포레카리아지역에 벼 보급종 종자 생산단지를 구축해 1800t의 종자를 생산·보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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