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룡아, 우리 농촌에 여의주 좀 물어다 다오

관리자 2024. 1. 1. 05: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갈수록 녹록지 않은 농업 환경
피해 갈 수 없다면 뛰어넘어야
도전은 이 시대 농부들의 숙명
새해 여는 상서로운 용의 기운
농촌에 깃들게 하는 건 우리 몫
자긍심 갖고 희망의 밭 일구자

갑진년(甲辰年) 용의 해가 밝았다. ‘갑’이 오방색 중 청색을 의미해 청룡의 해다. 물을 다스리는 용은 구름을 움직여 비를 조절하는 운행우시(雲行雨施)의 능력을 지녔다. 농악대가 풍물을 놀 때 마을 공동우물에 들러 치성을 드릴 정도로 농촌에서 물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절대적이기에, 농경문화권에서 용은 곧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용의 입에는 으레 여의주(如意珠)가 물렸다.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여의주는 말 그대로 뜻한 바를 술술 이뤄주는 영묘한 구슬이다. 농업 환경이 갈수록 험난하고 농가 살림살이도 여의찮기에, 청룡의 해를 맞이하며 바라본 첫 소원이 ‘청룡아, 우리 농촌에 제발 여의주 좀 물어다 다오’다.

어느 한해 무탈한 적이 없었듯 새해에도 우리 농촌에 드리운 먹구름은 여전할 것이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이제는 기상이변 없는 해가 비정상인 시대가 되면서 올해 역시 각종 자연재해에 ‘역대 최대급’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을 것이고, 기후변화와 생태계 불균형에 편승한 병해충도 더 그악을 부릴 게 뻔하다.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방역망을 뚫고 축산농가들을 울리는 악성 가축 바이러스의 준동 또한 마찬가지다.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자연환경뿐 아니라 농업·농촌을 둘러싼 사회적·경제적 여건도 악화일로다. 불안한 국제 정세로 농자재값·유류대 등 경영비는 상승하고 고령화에 따른 극심한 인력난에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는 높아만 간다. 이런 가운데 개방화의 파고는 더욱 거세져, 올해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모를 메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까지 앞두고 있다. 국산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도 점점 약해져,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되고는 있으나 솔직히 국내 농축산물에 대한 애정은 갈수록 줄어드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급기야 사회 일각에서는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마저 흔들어대고 있다.

뭐 하나 녹록한 게 없으니 어찌 보면 도전과 응전은 이 시대의 농민들이라면 도리 없이 짊어져야 할 숙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농민들이 누구인가. 우공(愚公)이 산을 옮기듯, 땅의 힘을 믿고 우직하게 간난신고를 헤쳐나온 이 땅의 농민들이다. 먹구름 뒤에는 분명 햇빛이 있으니 묵묵히 그리고 당당히 맞서자. 우리가 언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갔나. 피할 수 없으면 뛰어넘으면 된다. 장애물은 도전 의지가 꺾였을 때만 장애물이다.

여우가 따 먹기 어려운 높이에 달린 포도를 보고 ‘저 포도는 보나 마나 신 포도일 것’이라며 짐짓 포기했다는데, 우리는 회피하지 말자. 사다리를 만들어 포도를 쟁취하는 여우가 되자. ‘우는 아이 젖 준다’고 했다. 엄혹한 농업 현실과 바뀐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정책적으로 이끌어낼 것은 떳떳이 요구해 관철하자. 이 과정에서 농민들도 명확한 논거와 합리성으로 무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위기에 대처하는 최선의 전략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알리는 것이다. 열악한 생활인프라, 생산비 건지기 쉽지 않은 농산업 구조 등 불합리한 부분은 설득력 있는 접근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

또한 현실을 직시하고 시대 흐름에 두 눈 똑바로 뜬 영악한 농민이 돼야 한다. 봄에 깐 병아리 가을에 세어보는 식으로 응당 챙겨야 할 부분에 무신경하거나 관행적 사고에 젖어서는 승산이 없다. 고품질 농축산물 생산에 더해 소비 트렌드에도 관심을 갖자. 밥상을 알면 판로가 보인다. 디지털 세상에도 적응해야 한다. 인터넷 공간에 가득한 알찬 정보를 못 챙기면 우리만 손해다. 농산물을 소비하는 도시민은 황새걸음인데 그들을 우군으로 만들어야 할 농민이 뱁새 걸음이어서는 안된다.

우리 농업·농촌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임을 자부하며 농민들 곁을 지켜온 ‘농민신문’도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농민 독자들 덕분에 예순 성상 동안 최고 농업정론지로 자리매김해온 만큼 앞으로도 연륜 내세우지 않고 더 겸손한 자세로 농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농민들 배부르고 등 따습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농부는 하늘의 시를 땅에 쓰는 거룩한 존재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 국민 식탁에 올리는 이들이다. 이 거룩한 존재들이 농촌소외·농업경시 풍조에 의연히 맞서 용틀임하겠다는데 청룡의 기운이 깃들지 않을 수 없다. 자긍심을 가지고 올 한해 또 희망의 밭을 일궈보자. 여의주 문 청룡을 농촌으로 오게 하는 건 우리 하기에 달렸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