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 성공 도전기] “천생 농부의 아들…안 맞는 양복 벗고 축산업 뛰어들었죠”
직업군인·영업직 적성 안맞아
고향 와서 본격적인 농사 시작
자가인공수정 교육 등 들으며
한우 번식 단계별 체계적 관리
이장 맡아 주민 복지수준 높여
콤바인 운용 등 고령농가 도와 강원>
농가 경영비는 널뛰는데 소득 상승은 더디다. 농업을 둘러싼 대외환경도 결코 녹록지 않다. 그런데도 생명산업인 농업에 희망을 걸고 농촌에 터를 잡는 이들이 있다. 바로 농촌에 전에 없던 활력을 불어넣는 귀농인이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랴, 농토에 씨를 뿌리랴, 영농기술을 배우랴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쓰는 귀농인의 고군분투기를 연재한다.
“소를 길러보는 게 어릴 적부터 가져온 꿈이었고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젊은 시절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13년 전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뛰어들었죠.”
최근 찾은 강원 원주시 호저면 무장1리. 남한강 상류인 섬강 자락에 60여가구가 모여 사는 이곳에서 한우 100여마리를 기르며 벼농사를 짓는 윤경수씨(46)가 있다. 그의 이력은 꽤 독특하다. 학군장교(ROTC) 출신으로 일찌감치 직업 군인의 길을 택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음을 깨닫고 5년6개월 만에 대위 군복을 벗었다. 이후 한 제약회사에서 6년 가까이 영업사원으로 일했지만, 여전히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수십번 고민한 끝에 2011년 윤씨는 더 늦기 전에 농사를 제대로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결국 고향으로 왔다. 2003년 부부의 연을 맺고 윤씨가 하는 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온 아내 이경자씨(45)조차 ‘왜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불안정한 농사일에 투신하느냐’며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윤씨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저는 농부의 아들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소를 8마리 정도 키우셨는데, 저는 먹이를 줬어요. 소가 ‘음매’ 하고 울며 커다랗고 순박한 눈망울을 끔뻑거리면 귀엽잖아요. 허허. 그 모습에 이끌려 마치 운명처럼 고향을 다시 찾게 된 거죠.”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330㎡(100평)짜리 작은 축사를 짓고 소 10마리를 들인 후 ‘고려농장’이라는 간판을 달았다. 부지런한 성격의 윤씨는 2975㎡(900평) 규모로 벼농사도 같이 시작했다. 생산비를 낮춰 경영안정을 이루고자 자가인공수정 교육을 받았고 시농업기술센터의 한우 고급육 출현·개량 강의도 빠짐없이 들으며 번식 단계별로 체계적인 관리에 나섰다.
물론 생각했던 것처럼 농사가 쉽진 않았다. 질병 관리 능력이 부족한 탓에 2014년께 잘 자라던 소 10마리가 하루아침에 죽었을 땐 ‘이 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단다. 그러나 특유의 끈기와 열정을 무기 삼아 영농 기술을 습득해가는 과정이 퍽 보람찼다는 윤씨.
축분을 발효한 퇴비를 벼농사에 사용하며 화학비료 살포를 줄였다. 벼 수확 후에는 논에 깔린 볏짚을 베일러(수확한 건초를 압축하는 작업기)로 모아 조사료로 활용하고 주변 농가에도 저렴하게 나눠주며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밖에 콤바인을 직접 운용하며 인근 대다수 고령농가의 농작업을 대신해줬다. 기록의 중요성을 잘 알았기에 영농 일지를 작성해 연중 농사 주기를 세밀하게 파악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귀농 이듬해인 2012년부터는 이장과 농협 영농회장직을 도맡으며 주민 복지 수준을 높이는 데도 헌신했다. 집집이 지하수를 끌어다 마시던 마을에 처음 간이상수도를 놓도록 힘썼다. 또 지난해부터 전국한우협회 원주시지부 사무장으로 활동하며 지역축산업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는 50세 이하 농민을 대상으로 결성한 원주농협 청년부 초대 회장을 맡아 젊은 구성원간 소통에도 앞장선다. 동시에 1421㎡(430평) 축사에 소 100여마리를 키우고 9.9㏊(3만평) 면적에 벼농사를 지으며 영농 규모도 크게 불렸다.
이런 윤씨에게 지난해 말 경사가 찾아왔다. 농협중앙회에서 매달 최우수 농업명장에게 수여하는 ‘이달의 새농민상’ 11월 부부 수상자가 된 것이다. 아내 이씨도 이젠 그의 농사 인생과 철학에 차분히 보조를 맞춘다.
앞으로 원주를 대표하는 ‘치악산한우’ 명품화에 선봉장이 되겠다는 윤씨는 희망하는 이웃에 성공 비결을 공유하며 주변과도 적극적으로 상생한다는 계획이다. 고급육 생산 저변을 넓히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보통 귀농하면 재배기술 부족, 높은 경영비 부담, 원주민과의 갈등 같은 시행착오를 겪다 아예 농사를 포기하는 예도 많죠. 그럴수록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주변에선 제가 농사에 재능이 있다며 칭찬하는데 사실은 남모를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은 것이죠. 남들은 저보다 덜 실패하고 더 빨리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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