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노래 그 사연] 희망찬 미래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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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미래를 담은 노래 가운데 전 세대가 아는 노래를 고른다면 아마도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그는 이전에는 '원조 테리우스'로 불리며 1990년대 외모 중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가수였다.
일반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그의 성장 과정을 본다면 신성우가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노래를 데뷔곡으로 왜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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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미래를 담은 노래 가운데 전 세대가 아는 노래를 고른다면 아마도 신성우의 ‘내일을 향해’ 정도가 되지 않을까.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는 그는 이전에는 ‘원조 테리우스’로 불리며 1990년대 외모 중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가수였다.
신성우는 1991년 록 장르 ‘내일을 향해’라는 곡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 곡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어두웠던 과거를 버리고 희망찬 내일을 맞이하자는 내용의 가사로, 노래방에서도 젊은이들에게 인기곡이었다.
“나 어릴 적 꿈에 바라보던 세상들은/ 낯설은 꿈의 거리/ 내일을 향해서라면 과거는 필요없지/ 힘들은 나의 일기도 내일을 향해서라면.”
신성우는 노래도 노래지만 외모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그 시절 가요계에선 외모보다 노래 실력이 가수 데뷔에 더욱 중요한 요소였다. 한국인 대부분은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작아, 잘생겼다는 기준은 연예인 중에서도 주로 배우나 탤런트에게 적용됐다.
신성우는 노래를 잘할 뿐 아니라 얼굴 골격이 뚜렷한 서구적 미남이었다. 그는 많은 여성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일본 만화 ‘캔디’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테리우스에 비유됐고 곧 스타로 떠올랐다.
신성우는 미남 이미지와는 다르게 매우 고단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1967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그는 집안 사정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홀로 서울에서 자취하며 살았다. 당시 군인이었던 어머니는 심심함을 달래라며 라디오를 선물해주었는데 그때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던 음악을 들으며 록밴드 음악에 심취하게 됐다.
그는 고교 시절 간간이 음악을 했지만 대학에서는 미술을 전공하며 독일로 유학을 떠나고자 돈을 벌기 위해 음반을 발표하게 됐는데 그것이 ‘내일을 향해’였다.
일반 사람들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그의 성장 과정을 본다면 신성우가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하는 노래를 데뷔곡으로 왜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신성우는 ‘서시’ ‘친구라 말할 수 있는 건’ 같은 노래를 히트시켰고 2000년대 들어 뮤지컬로 전향해 승승장구하며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올해는 용(龍)의 해다. 동양에서 용은 호풍환우(呼風喚雨)하는 비상한 존재다. 과거 임금의 얼굴을 용안, 옷을 곤룡포, 조선왕조의 행적을 담은 서사시를 용비어천가라고 부른 것도 그런 이유다. 대한민국은 부동산문제, 대출이자 급등, 전세 사기 등으로 서민 경제가 만신창이다. 이럴 때 천룡(天龍) 같은 존재가 나타나 국민의 희망찬 내일을 이끌어줬으면 한다.
박성건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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