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을 없애고 공간을 창조하라"...현대건축의 구조미 탐구 [정태종의 오늘의 건축]

2024. 1. 1.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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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건축의 상호의존성
편집자주
'정태종의 오늘의 건축'은 치과의사 출신의 건축가인 정태종(58)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가 국내외 현대 건축물을 찾아 각 건축의 지향점과 특징을 비교하고 관련된 이슈를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4주에 1번씩 연재합니다.

인류 초기의 건축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나무, 흙, 돌을 이용하여 공간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나무나 돌은 기둥으로 이용하여 구조체로 하중을 받치는 역할을 하고, 가장 흔한 재료인 흙으로는 벽돌을 만들고 쌓아서 벽을 세우고 벽 사이의 공간을 이용한다. 건축에서 하중을 받는 구조의 역할을 하는 벽을 내력벽이라 하는데, 벽돌은 쉽게 구할 수 있고 시공도 수월하지만 벽돌로 만든 내력벽 자체가 구조의 역할을 하다 보니 벽 자체가 두꺼워지고, 조정하기도 어렵고 커다란 문이나 창을 낼 수도 없다. 결국 필요한 내부 공간은 줄어들고 필요할 때마다 변형하기 힘들고 창이 작아 햇빛이 적게 들어서 사용하기 불편한 상태가 만들어진다.

서양에서는 중세시대까지 이러한 내력벽 구조의 건축이 대부분이어서 많은 공간적 문제가 발생했는데 근대사회로 오면서 건축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내력벽을 '기둥-보 구조'로 전환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도미노 시스템 제안이다. 근대건축은 이것을 계기로 자유롭고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는데, 현대건축은 이마저 새롭게 재해석하고 변형하여 과거와는 다른 구조와 건축을 제시한다. 기둥, 보, 벽, 슬래브 등 건축구조 요소들의 상호의존성에 의해 만들어진 놀랄 만한 공간의 현대건축을 살펴본다.


주택 혁신의 시작, 도미노 시스템

르 코르뷔지에가 구콘크리트의 구조적 성질을 이용해 만든 '도미노 시스템'. 르 코르뷔지에 재단 홈페이지 캡처

근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도미노 시스템은 집이라는 라틴어 도무스(Domus)와 혁신(Innovation)이라는 단어의 조합이다. 말 그대로 주택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한 개념이다. 이전의 주택은 실마다 만들어진 두꺼운 내력벽 때문에 사용하기 힘들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둥, 바닥판 슬래브, 계단만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도미노 시스템을 제안한다. 도미노 시스템을 언뜻 보면 단순하고 기능적이고 건축적 디자인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건축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 요소가 된다. 이 요소들 이외의 디자인은 건축가의 몫이 되는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 창, 옥상 공원, 필로티 등 근대건축의 5요소도 도미노 시스템 때문에 가능하다.

그런데 현대건축은 도미노 시스템을 구성하는 건축 요소를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한다. 바닥판을 변형해서 층 구분을 없애거나 중간에 구멍을 뚫어 빈 공간인 보이드를 만들거나 바닥판을 기울여서 변형을 주기도 한다. 계단을 경사로인 램프로 바꾸거나 수직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등 다른 방식의 수직 동선을 제시하기도 한다. 최근 현대건축의 관심은 아마도 기둥에 집중된 듯하다. 기둥은 수직 하중을 직접 받거나 보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도 하중을 받아내는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개념은 하중을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하중을 받는 방식을 다양하게 변화시켜 기둥 없이도 구조가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다. 기둥을 없애려는 건축가의 고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기둥을 잘게 쪼개서 가늘게 만들어 분산시키거나 기둥 대신 외피 파사드를 이용하고, 바닥판과 상부 슬래브를 하나로 연결하여 공간을 한 덩어리로 만들기도 한다.


기둥 없이 만드는 무주 공간

네덜란드 건축가 메카누가 설계한 가오슝 아트센터. 콘크리트 외피의 한쪽 끝을 고정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만들어 독특한 공간감을 만들었다.

대만의 남쪽 도시 가오슝. 한국의 부산과 비교할 만한 도시이다. 네덜란드 건축가 메카누는 2018년 이곳에 과감한 현대건축을 시도한다. 거대한 열대우림의 공원 한쪽에 있는 가오슝 아트센터는 대규모의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홀, 플레이 하우스, 리사이트홀을 포함한다. 열대우림을 대표하는 나무인 반얀트리의 울창한 가지들 사이 비어 있는 공간에서 모티브를 찾았다는데 아트센터 규모와 공간을 살펴보면 그저 감탄만이 나온다.

외부 형태는 단순한 직육면체인데 군데군데 부풀어 올라온 듯한 공간이 있고 옆면은 마치 샌드위치처럼 위아래 슬래브 사이가 떠 있거나 내부 프로그램을 넣었다. 쉽게 말하자면 샌드위치처럼 위, 아래 슬래브를 만들고 사이에 다양한 공연장을 넣어서 한 덩어리로 만든 것이다. 이곳은 거대한 규모도 놀랍지만, 공간을 형성한 방식이 기존의 기둥-보 구조가 아니라 하부와 상부를 하나로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철근 콘크리트로 공연장을 에워싸고 그 틈새로는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동선을 만들고 바깥쪽에서는 콘크리트 외피가 캔틸레버(한쪽 끝은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의 보)로 떠 있다. 이전의 기둥 없이 만드는 무주 공간은 주변의 거대한 기둥을 이용하거나 트러스처럼 상부에서 건물을 매달거나 했지만, 이곳은 바닥과 벽체와 지붕을 한 덩어리로 만들고 구부려서 사이 공간을 만들어 낸다.


거리 풍경을 반사하는 유리 박스

건축가 이토 도요의 설계작, 센다이 미디어테크 건물. 건물의 투명한 입면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센다이는 일본 동북지역의 중심도시이지만 생각보다 크지 않고 걸어 다니기 좋은 도시이다. 중심가를 걸어 다니다 보면 투명한 유리 박스의 건축물이 눈에 띈다. 현대건축의 가장 중요한 건축으로 평가되는 이토 도요의 센다이 미디어테크이다. 멀리서 보이는 외관은 단순한 직육면체이다. 그런데 건축물 입면의 유리가 너무나 투명해서 외부의 거리와 미술관 내부가 마치 명확한 경계 없이 연속적인 공간처럼 느껴지는 공간의 시각적 확장이 일어난다. 외피인 투명한 유리는 자신은 감추고 주변의 거리 풍경을 반사하면서 서 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 속 구름과 도시 풍경은 투명한 유리의 현상학적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저녁이 되어 내부에 조명이 켜지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곳은 유리를 이용하여 투명하게 만든 것뿐만 아니라 내부를 지지하는 기둥 같은 구조체도 눈에 보이지 않게 설계해서 비어 있는 공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실제로 로비 대부분은 비어 있고 안내 접수대와 카페만이 한쪽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우리 눈에 익숙한 기둥이 안 보인다. 커다란 기둥 대신 기둥을 잘게 쪼개서 마치 기둥이 없는 듯한 건물을 만들었다. 기둥조차 없는 텅 빈 내부는 아래부터 꼭대기까지 흐느적거리는 수초와 같은 흰색의 원통이다. 입구에 가까이 있는 계단은 투명한 유리 박스 안에 담겨 있고 반대쪽 엘리베이터도 기둥을 변형한 원통형 철골구조 안에서 움직인다. 기능에 꼭 필요한 계단 등 건물 코어 빼고 나머지는 빈 공간이다. 공간을 담은 새로운 구조체의 탄생이다.


현대건축의 백미는 단순한 구조미

스위스 건축가 발레리오 올지아티가 리모델링을 진행한 쿠어 대의회 건물. 길가에 노출된 출입구에 독특한 아치 벽체를 만들었다.

스위스 도시 쿠어의 구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쿠어 대의회는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1863년 건축가 요하네스 루트비히가 지은 후 무기고로 이용되었다가 1959년 건축가 마틴 리시가 극장과 의회로 분리해서 현재는 의회 건물로 사용한다. 현재의 건축물은 2008년 건축 현상 공모에서 스위스 건축가 발레리오 올지아티가 당선되어 리모델링을 진행했다.

이전의 건축은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지만, 리모델링 이후 올지아티의 계획에 따라 새롭게 설계된 정면 입구를 보면 남다르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백색의 노출콘크리트를 이용하여 1층 부분 처마를 만들고 아치 형태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단순한 형태의 벽체가 입구를 가리면서 약간의 각도로 틀어져서 위치한다. 이를 통해 길가에 그대로 노출된 주 출입구가 자연스럽게 가려지면서 입구 공간이 보호된다. 입구 앞쪽에는 경사로가 있어 따라 올라가면 주출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독특한 형태와 공간도 좋지만 단순하고 명쾌한 구조를 이용하여 풀어낸 것이라 더 아름답다. 쿠어 대의회는 최신 스위스 건축의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구조 미학의 세련된 결정체이다.


건축에서 구조와 공간의 관계

스위스 건축가 크리스티안 케레즈가 설계한 크리스티안 케레즈 로이첸바흐 학교는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구조체를 보여준다.

건축 설계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나 건축물이 들어갈 대지의 상황 등 다양한 분석을 통하여 개념을 결정하고 필요한 실과 프로그램 구성, 내·외부 공간구성 등을 진행하면서 건축의 공간과 형태를 만든다. 이후 디자인한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기본적인 건축구조와 안전성 검토를 하고 구조 시스템을 결정한다.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한 최적의 구조체를 사용해 시공 후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최소화한다.

그렇지만 너무 안전과 그에 맞추는 건축구조만 강조하다 보면 디자인과 공간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 도미노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근대건축은 나름 자유롭고 다양한 건축적 평면과 입면을 구사해 왔다. 현대건축은 이러한 관점을 벗어나서 조금 더 과감한 공간과 혁신적인 디자인을 위해 과거와 다른 몸짓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구조체의 변형을 통한 진화된 구조의 추구이다. 현대건축은 완전히 새로운 구조의 실험대다.

글·사진=정태종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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