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 진짜야?" 일본인 부녀의 대화... 한류스타 '이 드라마' 회피 사라졌다
①전쟁 범죄 참상 그려 외면 우려... '경성크리처' 8일째 日 넷플릭스 톱7
②'각시탈'땐 배우 7명 출연 거절... K콘텐츠 힘 커지면서 주체적 활동
③한국 제작사, 일본 드라마도 제작... 수출 넘어 현지화
1940년대 일본의 전쟁 범죄를 비판한 한국 드라마 '경성크리처'가 공개 후 일본 넷플릭스에서 8일째 톱7 순위권을 지키고 있다. 일본의 민감한 역사를 건드려 현지에서 철저히 외면받을 거란 우려와 달리 일본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K콘텐츠의 파급력이 커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다. 이런 변화를 계기로 일본에서 인기인 한국 배우들도 더는 극구 피하지 않고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일본 제국주의를 꼬집는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한국 제작사들은 일본 드라마 제작까지 나섰다. 한류가 바꾸고 있는 일본 속 '한국 소비'의 새로운 양상들이다.
어린 딸 둔 일본인 아빠 "'경성크리처' 계몽적"이라고 한 사연
'경성크리처'는 공개 하루 뒤인 지난달 23일 일본 넷플릭스 시리즈 부문 7위(플릭스패트롤 기준)로 등장한 뒤 지난달 24일부터 30일까지 줄곧 2~7위 사이를 오르내리며 현지 시청자를 꾸준히 불러 모으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일본군이 경성의 병원 지하실에서 조선인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해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전쟁 범죄의 참상을 그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에 주둔하며 세균전을 준비했던 일본군 731부대에서 '마루타'라 불린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해부 실험 등을 자행한 반인륜적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내용이다.
드라마 제목을 일본어로 검색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현지 시청자들 반응을 살펴보니 "보고 5분 만에 기분이 나빠졌다"(@1uL****), "일본이 너무 극악무도하게 그려져 속이 쓰리다"(@yuk****) 등 보기 불편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경성크리처'가 한일 역사 인식에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40대 일본인 A(@ch****)씨는 SNS에 "'경성크리처'가 731부대를 다뤄 주니 고마운 일"이란 글을 올렸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10대 초반인 딸이 '왜 (한국 배우들이) 일본어를 해?'라고 물어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던 시대가 배경이니까'라고 얘기해 줬다"며 "'진짜 저런 일(생체 실험)이 있었어?'라는 물음에는 '서울에서 괴물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물론 픽션이지만, 중국에 연구소를 두고 인체 실험과 생물무기 제조를 한 것은 사실이고 희생자 중엔 조선인도 다수 있었다'고 얘기해 줬다"고 말했다. 그는 '경성크리처'를 "계몽적"이라고 표현했다. "731부대와 생체 실험 등 우리 일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할 역사가 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아 한국 콘텐츠를 통해 그 역사를 알게 된 것은 일본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젊은 세대는 교육의 기회를 얻었다"는 게 그의 말이다.
A씨처럼 '경성크리처'가 '반일 드라마'는 아니라고 본 일본 시청자는 속속 등장했다. SNS엔 "7화까지 봤는데 반일이 아니라 반일본제국군·731부대 드라마인 것 같다. 아무리 폭력을 당해도 어머니는 아들을 마루 밑에 숨기고 괴물이 되어도 딸을 보호한다"(@mi****), "잔인한 연출이 있긴 했지만 일본을 비난하는 내용은 아닌 것 같았다. 약간 우파 성향의 남편도 '전혀 반일적인 내용이 아니지 않나?'라고 하더라"(@lo****), "역사적으로 일본의 잔학 행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인데 그것을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반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웃기다.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가 홀로코스트의 잔혹성을 소재로 삼으면 '반독일'인가'"(@So****) 등의 글이 일본어로 잇따라 올라왔다.
"일본 시장 걱정보다 작품성" 달라진 한류스타들
20대 직장인이라는 일본인 B씨는 "평소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자주 보고 있었고 한소희를 좋아해 '경성크리처'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서준과 한소희 등 청춘 스타들이 줄줄이 출연하면서 '경성크리처'에 대한 일본인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대부분 한류 스타들은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 시절을 다룬 드라마 출연을 꺼렸다. 방송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각시탈을 쓰고 일본군과 맞서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각시탈'(2012)을 제작할 때 7명의 배우가 주역 제안을 고사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일본 시장 눈치를 보느라 한류 스타들이 출연을 꺼린 탓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배우와 K콘텐츠의 일본 시장 의존도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K콘텐츠 시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20, 30대 한류 스타가 소속된 매니지먼트사 세 곳에 물었더니 모두 "일본 시장 (위축) 우려보다 작품이 먼저"라는 답이 돌아왔다.
30대 유명 배우를 매니지먼트하는 기획사 대표는 "청년들이 독립운동가로 나오는 시대극 제안을 최근 검토했다"며 "대본이 얼마나 좋으냐와 그 작품에서 배우가 얼마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를 고민했지 일제강점기 배경이라는 점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동남아뿐만 아니라 북미와 유럽까지 시장이 넓어진 마당에 일본 시장에 민감할 수 있다는 걱정으로 작품을 포기하진 않는다"는 설명이다. 20대 인기 배우를 매니지먼트하는 또 다른 기획사 이사도 "일제강점기 작품이라 일본 시장에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하더라도 완성도와 메시지가 좋다면 그 출연으로 다른 해외 시장에서 배우가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며 "요즘엔 K콘텐츠 시장의 유명 작가와 감독과 어떻게 작품으로 인연을 맺느냐도 중요해져 일본 시장 부담을 이유로 작품을 내부적으로 제외하는 일은 없다"고 귀띔했다. 일본 시장 눈치 보느라 정작 제 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룬 작품에 배우들이 출연을 포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더는 벌어지지 않게 된 배경이다.
이제 일본 드라마도 만든다
K콘텐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한국 제작사는 일본 드라마 제작까지 착수했다. '사랑의 불시착'(2019)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드래곤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일본 드라마 '아수라처럼'을 만들고 있다. 이 작품엔 미야자와 리에, 아오이 유우 등 일본 스타 배우들이 출연한다. JYP엔터테인먼트가 'K팝 DNA'를 이식해 일본에서 그룹 니쥬를 데뷔시킨 것처럼 방송 시장에서도 현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형 스튜디오 관계자는 "일본에서 '한국이 영화나 드라마를 잘 만든다'는 평가가 있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이 줄줄이 나오다 보니 글로벌 유통을 위해 일본에서도 한국 제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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