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비극의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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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13일 '바로크 문화'의 중심 독일 드레스덴이 불바다로 변했다.
2차 대전 연합군 폭격기가 2~4t짜리 폭탄을 셀 수 없이 투하했다.
드레스덴 폭격은 '블록버스터'라는 합성어를 낳았다.
드레스덴 문화유산이 지금도 '복원' 중이니 가자가 원래 모습을 되찾는 데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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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월 13일 ‘바로크 문화’의 중심 독일 드레스덴이 불바다로 변했다. 2차 대전 연합군 폭격기가 2~4t짜리 폭탄을 셀 수 없이 투하했다. 소이탄이 내뿜는 ‘화염 폭풍’은 군수공장뿐만 아니라 민가 수 만 채를 파괴했다. 사망자는 1만8000~2만5000명으로 알려졌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녹아내린 시신이 많아 지금도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연합군이 무차별 공습에 나선 이유 중 하나는 나치 독일의 런던·코벤트리 민간시설 폭격에 대한 보복이다. 드레스덴 폭격을 주도한 아더 해리스 영국 장군은 살아서는 ‘살인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전시내각을 이끈 윈스턴 처칠도 그를 외면했다. ‘전쟁 범죄’ 논란에서 한 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드레스덴 폭격은 ‘블록버스터’라는 합성어를 낳았다. 한 블록(Block)을 날려 버릴(bust) 만큼 엄청난 위력의 폭탄이란 뜻이다. 요즘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대작을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특정 목표를 겨냥한 정밀폭격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걸 쓸어버리는 ‘융단 폭격(Carpet bombing)’이란 단어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스라엘이 새해를 앞두고 하마스가 통치 중인 가자에 블록버스터급 융탄 폭격을 감행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금까지 가자 주택 43만9000채 중 70%가 파괴됐다고 보도했다. 세계은행(WB)도 통신·상업시설 70%가 피해를 봤다고 평가했다. 구호단체 ‘쉘터 클러스터’는 전쟁이 끝나도 불발탄·잔해 제거에 수 년이 걸린다고 전망한다. 드레스덴 문화유산이 지금도 ‘복원’ 중이니 가자가 원래 모습을 되찾는 데 얼마나 걸릴 지 알 수 없다. 러시아도 지난 29일 우크라이나에 미사일 122발을 발사해 120개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우크라이나가 보복에 나서면서 양측 사상자는 수 백명에 달한다. 대량 살상용 블록버스터가 낳은 비극이다.
한반도에도 전운의 그림자가 짙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30일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교전 국가’로 규정하면서 통일은 없다고 선언했다. “전쟁은 현실적인 실체”이며 “유사시 핵무력을 동원해 남조선을 평정”해야 한다면서 “내년에 군사정찰위성 3개를 추가 발사한다”고 위협했다. 정전협정 체결 70년이 되도록 무력충돌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기관차가 마주 보고 달리는데 누구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니 갈등만 끓어오른다. 이래선 미래가 없다. 비극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남북을 눈물짓게 방치해선 안 된다.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한 새해다.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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