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개전 후 최대 공습… 우크라 후방 도시 190여명 사상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4. 1. 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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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오데사·하르키우·르비우… 전국 주요 도시 미사일·드론 맹폭
지난 29일 러시아의 대규모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의 쇼핑몰. /AP 연합뉴스

새해를 불과 이틀 남긴 세밑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022년 2월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공습을 주고받으며 각각 1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미사일이 폴란드 영공을 침범, 폴란드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이번 겨울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후방을 노리는 소모적 공방전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서방 지원이 약해진 우크라이나와 전시 경제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러시아 간 무기 공급 상황이 역전되면서 우크라이나가 더욱 불리한 입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지난 30일 오후(현지 시각) “러시아가 전날(29일) 새벽부터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122발과 드론 36대를 동원한 대규모 폭격을 해 와 지금까지 민간인 30여 명이 숨지고 160여 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수도 키이우 및 남부 오데사, 중남부 드니프로·자포리자, 동북부 하르키우, 서부 르비우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가 모두 공격받았다. 아파트와 주택 등 주거 시설, 드니프로에선 쇼핑 센터와 산부인과 병원에 미사일이 떨어졌다. 르비우에선 학교와 유치원 등이 파괴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군 방공망이 87발의 미사일과 드론 27대를 격추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하르키우 호텔 초토화 - 지난 3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도심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공습을 받은 호텔 건물이 처참하게 파괴돼 있다. 전날 러시아는 키이우, 오데사, 하르키우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재작년 2월 침공 이후 최대 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미사일과 무인기 158대가 총동원된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190여 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을 통해 “최소 120개 도시와 마을이 공격받았고, 수백 개 민간 시설이 타격을 받았다”며 “러시아의 침략이 개시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공격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발전소와 변전소 등이 상당한 타격을 입으면서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새벽 공습으로 최소 수백만명의 민간인들이 겨울 추위 속에 대피소로 피해야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난방과 조명을 끊어 항전 의지를 약화시키려 겨울마다 에너지 시설을 집중 공격해 왔다.

러시아군은 이날 공습에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 등 폭격기에서 발사하는 순항 미사일을 주로 동원했다. 지상이 아닌 공중에서 미사일을 쏘면 사거리가 늘어나고, 우크라이나군의 방공망을 피해가기 쉽다. 이 과정에 일부 미사일이 나토 회원국인 폴란드 국경을 잠시 침범하기도 했다. 폴란드군은 “29일 오전 7시쯤 러시아 미사일이 약 3분간 우리 영공에 40㎞가량 진입, 우리 공군 전투기가 요격을 위해 출격했다”고 밝혔다. 폴란드 군에는 비상 경계 태세가 발령됐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긴급 안보 회의를 소집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통화했다.

그래픽=양진경

우크라이나군은 이튿날 대대적 보복 공격에 나섰다. 러시아 정부는 30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30㎞ 떨어진 서부 벨고로드 시내와 브랸스크 등에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날아온 미사일과 로켓탄이 떨어져 10여 건의 화재가 발생하고 40개의 민간인 시설이 파괴됐다”며 “이로 인해 어린이 3명 등 총 21명이 사망하고 110명이 부상했다”고 했다. 러시아 매체들은 “이번 공격은 러시아 본토에 가해진 최대 규모 공격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하일 무라시코 보건부 장관을 현장에 급파, 피해 조사를 지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국제법상 민간 지역 사용이 금지된 ‘집속탄(集束彈·cluster bomb)’을 썼다고도 주장했다. 벨고로드 시내에 떨어진 ‘빌카’ 미사일 2발에 이 폭탄이 실려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벨고로드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테러 공격’을 논의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31일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하르키우를 이란제 샤헤드 드론으로 재차 공습해 카페, 주택, 사무실 건물 등이 피해를 입었다고 키이우포스트가 보도했다.

30일(현지 시각) 러시아 공습을 받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부상을 입은 한 시민이 군인들의 부축을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한편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30일 “러시아가 무려 160개의 미사일과 드론으로 우크라이나를 공습했단 사실은 한때 바닥났던 러시아의 무기고가 다시 채워졌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전시 경제 체제 전환에 성공, 장기전을 할 채비를 갖췄다는 것이다. 인도가 서방 제재를 받는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구매했고,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 교류도 전방위로 확대됐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일시 중단과 유럽연합(EU)이 약속한 포탄 수급 지연 등으로 무기고가 바닥난 상태다. 이 매체는 “우크라이나의 반격 단계는 완전히 지나갔다”며 “새해엔 영토 수복이 아닌 방어에 급급할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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