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놈 때려잡는 놀이하던 北꽃제비가 美 장학생으로… 이게 한미동맹 위대함”
“북한은 저를 꽃제비로 만들었지만, 대한민국과 미국은 저를 학자로 키워줬어요. 제 삶 속에 한미 동맹의 위대함이 녹아 있습니다.”
탈북민 이성주(37)씨는 6년 전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선발돼 조지 메이슨 대학교 카터 스쿨에서 ‘남북한의 갈등 해결’을 주제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캠퍼스가 수도 워싱턴 DC 인근이라 알링턴 국립묘지의 한국전쟁 참전 용사 기념비 주변을 틈날 때마다 산책하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묘역을 거닐며 미군이 한반도에서 엄청난 피를 쏟았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껴요.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오늘날 제가 여기서 공부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하고요. 미국놈 때려잡는 놀이를 매일 하던 북한 소년이 미국 정부의 장학금을 받으며 통일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게 인생의 신비한 아이러니로 느껴집니다.”
1987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씨는 호위국 소좌였던 부친 덕분에 유복하게 살았다. 1997년, 부친이 김일성 사망 후 체제 비판을 했던 사실이 적발돼 일가족이 함경도로 추방당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던 ‘고난의 행군’ 시기, 부모님이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소식이 끊겼다. 홀로 남은 이씨는 꽃제비가 돼 4년간 구걸과 도둑질로 연명했다. 2002년, 먼저 한국에 정착해 있던 아버지가 탈북 브로커를 보내 그도 탈출했다. 중국 다롄 공항에서 위조 여권으로 입국했는데, 비행기가 뭔지 몰라 신발을 벗고 탔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영어는 알파벳조차 몰랐다. 꽃제비 생활 여파로 학교 수업 따라가기도 벅차 방황했다. “나는 ‘두 개의 한국’을 품은 한반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깨닫고 나서야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검정고시 등을 거쳐 서강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캐나다 하원에서 인턴 보좌관으로 일하며 ‘북한인권결의안’ 통과 작업을 도왔고, 영국 외무부 장학금으로 대북 정책을 연구해 석사 학위(영국 워릭대)를 받은 뒤 미국 국무부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70여 년 전 인민군과 맞서 피 흘렸던 나라들이 그에게 자유와 장학금을 줬다.
“그 옛날 한국의 젊고 똑똑한 학생들이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며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배웠고, 그런 가치를 널리 공유하려 애쓰는 사회 지도층 인사로 성장했기에 오늘날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한미 동맹이 굳건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이런 교류의 폭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2018년부터 풀브라이트 탈북민 전형이 신설되면서 혜택을 봤습니다.”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은 1946년 미국 국무부가 미국 대학원 학위 과정이나 전문가들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창설한 것으로, 이 장학금을 받고 유학한 전 세계 지식인이 약 160국 40만여 명에 이른다. 한국에선 1961년부터 약 7300명이 혜택을 봤다. 한승수·이현재 전 국무총리와 조순·장기영·권오기·김동연 전 부총리,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 등도 이 프로그램 동문이다.
이씨는 “탈북민들이 예전엔 단순 증언자 역할에 그쳤지만 이제는 여러 경력을 겸비한 전문가로 성장해 글로벌 무대에서 주도적으로 해결책을 찾아나가고 있고, 이런 모습을 북한이 가장 두려워한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배움의 기회를 나눠 더욱 놀라운 변화가 생겨나도록 새해에도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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