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띠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하늘로 날아오르는 ‘용꿈’을 꾼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12지(支)를 이렇게 외우고 다녔다. 쥐소범토용뱀말양원닭개돼. ‘태정태세문단세…’ 마치 조선 시대 왕의 계보를 외우듯이. 어린 나이에도 ‘사람’이 태어난 해를 12마리의 ‘동물’과 매칭해 ‘띠’로 부른다는 게 재밌고 신기했다. 옛날 옥황상제가 주최한 동물들 달리기 경주에서 도착한 차례대로 12지의 순서가 정해졌다는 얘기를 접했을 때는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킨 부분은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해에 해당하는 동물을 딱 한 마리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고 싫어도 바꾸거나 거부할 수 없는 정해진 숙명의 동물. 나와 매칭된 숙명의 동물은 다섯째 ‘용’이었다. 그런데 그 대목에서 나는 조금 아쉬웠다. 다른 띠들은 일상에서든 동물원에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동물인데, 용은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동물이 아닌가. 왜 12지에 있지도 않은 동물을 한 마리 끼워 넣었을까. 그리고 하필 왜 나는 하고 많은 동물 중에서 용과 매칭이 되었을까. 12지에 상상 속 동물이 왜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용띠 동갑 친구가 해준 다음 같은 말에 나는 용띠인 것을 더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특별하지 않니? 어디에도 없는 동물이잖아.” 친구는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용은 신성하고 귀해서 왕처럼 위엄한 존재를 표현하는 단어에 자주 쓰인다고 말했다. 곤룡포(袞龍袍), 용안(龍顔), 용좌(龍座) 등등. 용이 가진 상서로운 힘을 알기에 조폭도 몸에 용 문신을 하는 거라고도 했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는 동료 작가에게 돼지꿈보다 좋은 꿈이 용꿈이란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용은 꿈이란 세계에서는 볼 수 있구나 싶어서, 전설에 나오는 용이 꿈에 나온다면 길몽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어서, 새해 첫날 용꿈을 꾸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소설 쓰기가 갈수록 힘들어져서 용꿈을 꿔서라도 글쓰기의 동력과 즐거움을 되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용은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서 만날 수 없기에 그 노력이란 것도 허구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기 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용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용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반복 시청했다. 인쇄한 그림을 지갑에 넣고 다녀보기도 했다. 그런데 사진도 영상도 실제 용이 아닌 그래픽으로 그려낸 가짜라 그런 걸까. 몇날 며칠을 봐도 용은커녕 용의 발톱조차 꿈에 나타나 주지는 않았다.
지금이야 더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고, 그렇게 인위적으로 꾸는 꿈이 행운을 가져다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용꿈 꾸기를 포기했냐고? 어떤 꿈이든 꿈은 포기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최선을 다해 내 할 일을 하면서 꿈이 이루어질 날을 자연스러운 태도로 기다릴 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내 아이패드 배경 화면에 깔아둔 용 사진을 여전히 바꾸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패드를 켤 때마다 용은 입을 벌려 내게 말을 건다. 용의 해에 태어난 너는 나와 숙명의 관계야!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더없이 특별하고 신비로운 용. 그러니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 내 꿈에도 나와주지 않을까.
천간(天干) 10개 중 갑(甲)·을(乙)은 푸른색에 해당한다고 한다. 2024년 갑진년은 푸른 용, 청룡의 해다. 12지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인 만큼, 갑진년에는 우리 모두 청룡처럼 푸른빛으로 날아올라 자기만의 특별한 꿈과 상상의 세계를 펼치기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어디에도 없는 귀하고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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