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1]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문태준 시인 2024. 1. 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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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 되므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김종삼(1921-1984)

일러스트=박상훈

김종삼 시인이 이 시를 발표한 때는 등단한 지 서른 해 가까이 되었을 때였다. 거의 서른 해 동안 시를 썼지만 시인은 정작 시를 모르고, 시인이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겸손의 말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지만 시행을 따라가며 읽다 보면 김종삼 시인이 말하려는 것은 다른 쪽에 있음을 알게 된다.

시인은 날이 어둑어둑해졌을 때 떠들썩한 시장 안에 있다. 그러곤 북적대는 서민들 무리에 섞여서 빈대떡을 먹으며 장사로 생업(生業)을 삼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손님을 맞아 흥정을 하되 성질이 유순하고, 고집스럽지 않고, 원만하고, 남을 동정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말씨와 태도와 성품을 본다. 그러면서 그들이 이러한 됨됨이를 갖춰 세상을 슬기롭게 살 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이 곧 시인이라고 말한다. 이때에 이르러 시인이란 시를 전문적으로 짓는 사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새해 첫날이 밝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도 비록 시인이 못 되지만, 올 한 해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또 만나야 할지를 생각한다.

※문태준 시인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오늘부터 매주 월요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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