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새해 경제정책 納期, 지켜야 한다
영국 노동당 내각을 이끌며 ‘일하는 복지’를 제시한 토니 블레어(71) 전 총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국가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2016년 싱크탱크를 설립, 현재 아프리카·동남아 등지 40국 자문에 응하고 있다. 대통령이나 총리를 만나면 늘 “계획이 있냐”고 묻는다. 탈탄소 시대를 맞아 ‘오일 머니’ 의존도를 낮추고 IT·신재생에너지 등으로 경제 구조를 다변화하겠다는 ‘비전 2030′ 구현에 한창인 사우디아라비아도 고객이다. 뭐든 원하는 대로 된다고 해서 ‘미스터 에브리싱’이라고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겸 총리도 늘 미래와 계획을 묻는다.
대외 의존도가 높고 안보 위험이 남다른 한국은 계획을 제대로 점검하고 새해를 시작했을까. 국가 한 해 계획인 ‘경제정책 방향’도 내지 않은 채 새해를 맞았다는 점에서 유감이다. 경제 전망과 정책 밑그림을 담은 보고서를 12월 중순경 미리 발표해 왔는데, 올해는 경제부총리 인선 지연으로 1월 초순 낸다고 한다. 해를 넘긴 경우는 2008년 2월 기획재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고물가·저성장 복합 위기에 ‘두 개의 전쟁’이라는 안보 불안이 겹친 비상 시국이다.
장관 6명을 4월 총선 후보로 차출한 여파다. 2023년 마지막 근무일인 지난달 29일 취임한 새 부총리가 판을 짤 시간을 주자는 취지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15년 관행인 대국민 납기(納期)를 어긴 점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정치 판도를 흔들 총선을 앞두고 정부 방향이 무슨 소용이냐’는 시선도 정부 안팎에서 있지만, 정책 방향이 제때 나오지 않아 혼란을 겪었다는 기업인도 적지 않았다. 한 대기업 간부는 “회사 관련 정책 내용을 파악해오라”는 상부 특명으로 살얼음판 같은 연말을 보냈다고 한다.
기재부 전신인 재정경제부 시절엔 12월 대선 등으로 1월에 정책 방향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8년 정책 방향도 전례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한달 앞 둔 그해 1월 나왔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회의에서 ‘새 정부 몫인데, 우리가 발표해야 하느냐’는 취지로 물었고, 일부 참모들은 “경제 전망·진단에 대한 수요가 있어 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제때 납품된 정책 방향에는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국내 금융시장 악영향 가능성 등 시의적절한 진단이 담겼다. 3월 새 정부가 ‘MB노믹스’라는 별도 계획을 발표하기까지 두 달간 기업들이 기댔던 정부 공식 진단이었다.
총선 대비는 당 지도부나 비상대책위원회의 일이다. 상설 비대위인 정부 일정표는 국민·기업의 기대와 수요를 우선시해야 한다. 정책 수요자인 국민을 대상으로 납기를 어기는 일이 앞으로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2기 경제팀의 충실한 계획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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