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타는 로봇·전류 통하는 옷… “세상 바꾸는 개척자 되겠다”

임경업 기자 2024. 1. 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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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양대산맥’ KAIST·포스텍 젊은 창업자 6인의 새해 출사표

벽을 타는 네 발 로봇과 전 방향 바퀴 이동 로봇, 배터리를 이용한 탄소 포집 기술과 전류가 통하는 옷, 중장년 정신 건강 앱과 웹툰 인공지능(AI). 각각 한국의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이라고 하는 KAIST와 포스텍에 재학 중인 2030 창업자 여섯의 사업 아이템이다. 젊은 창업자들은 혁신 로봇과 신소재 기술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기후변화와 노령화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심으로 똘똘 뭉쳤다.

높은 연봉 안정적 직장 대신 '멈추지 않는 도전' -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생활을 버렸다. 대신 기술로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의 양대 기술 대학, KAIST와 포스텍의 2030 여섯 창업자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겠다는 각오로 2024년을 달린다. 왼쪽 사진은 KAIST 출신 김병수(왼쪽부터) 그리너즈 대표, 김준하 디든로보틱스 대표, 조기웅 삶의질연구소 대표. 오른쪽 사진은 포스텍 출신 김지성(왼쪽부터) 크림 대표와 엄기영 모토마인드 대표, 장세윤 마이다스H&T 대표. /대전=신현종 기자, 포항=김동환 기자

한국 경제는 지난해 혼돈의 한 해를 보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전쟁과 갈등으로 세계 정세가 복잡해지며 외환 위기 이후 최장기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전자제품·석유화학 등 한국의 주력 산업 성장세도 크게 꺾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AI 기술 패권을 두고 경쟁이 치열하지만, 한국은 AI 경쟁에서도 한 걸음 뒤처진 상태다. 하지만 이런 환경도 젊은 창업자들의 열정을 꺼트리지 못했다.

KAIST의 김준하(29) 디든로보틱스 대표, 김병수(38) 그리너즈 대표, 조기웅(30) 삶의질연구소 대표와 포스텍의 장세윤(31) 마이다스H&T 대표, 엄기영(23) 모토마인드 대표, 김지성(23) 크림 대표 등 6인은 많은 연봉과 안정적 생활 대신 스스로 세상을 바꾸는 길을 택했다. 여섯 창업자는 입을 모아 “파이어니어(개척자)가 되겠다”고 했다. 2018년 14만곳(중소벤처기업부 조사) 수준이던 한국의 청년 창업(30세 미만)은 2021년 18만곳을 돌파하면서 3년 사이 32% 증가했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들이 있어 한국 경제의 엔진은 앞으로도 계속 뜨겁게 돌아갈 수 있다.

그래픽=김성규

◇세계 수준의 기술로 창업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 연구진·학생을 보유한 두 대학 창업자들은 세계 무대에서도 독보적이거나 독창적인 기술을 앞세우고 있다. 마이다스H&T는 말랑말랑하면서도 전기가 통하는 고분자 신소재를 만든다. 이 소재를 사용하면 옷에 전기가 통할 수 있어 센서 등 다양한 전자 기기 연결이 간편해진다. 옷을 입기만 해도 사람의 동작, 호흡 수, 심박 수를 체크하고 열을 낼 수도 있다. 장세윤 대표는 “골프 스윙 밸런스 시스템에 우리 기술을 적용해 지난해 매출 50억원을 기록했고, 미국 공군연구소와 군 작전에 쓰는 작전복 연구를 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고 했다.

디든로보틱스의 로봇은 수직으로 벽을 탄다. 자성을 가진 로봇의 네 발을 정밀하게 조절한다. 자석 발을 가진 로봇이 스파이더맨처럼 강철 위를 걸어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초당 0.7m로 빠르게 움직이고, 작은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김준하 대표는 “강철 구조의 건물·정유탱크·교량·선박 등 사람이 직접 보고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곳을 로봇이 대신 갈 수 있다”며 “사람이 3주 걸리는 검사 작업을 3일이면 끝낸다”고 했다.

모토마인드의 로봇은 바퀴가 전 방향, 360도로 쉽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 배달·서빙 로봇은 움직이는 방향에 한계가 있어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일이 많았다. 모토마인드는 바퀴의 수평 이동을 정밀하게 제어하고, AI를 활용해 복잡한 도심과 야외 환경에서도 로봇 스스로 길을 찾아낸다. 엄기영 대표는 “완전 자동화 수준이 가능한 수준의 로봇을 만들어 로봇 산업 전반을 개편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기후·시니어·AI… 난제에 도전

창업자들은 대기업들조차 꺼리는 난제에도 도전한다. 그리너즈는 배터리 기술을 이용한 탄소 포집 모듈을 개발한다. 전기화학 기술 원리를 활용해 배터리 충전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만 포집해 별도로 배출하는 방식이다. 배터리를 활용한 일종의 ‘탄소 필터’다. 김병수 대표는 “기후 문제는 반드시 인류가 풀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기술이 있다면 그만큼 시장과 기회도 크다”고 말했다.

삶의질연구소가 풀려는 문제는 ‘중장년의 정신 건강’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폐쇄형 소셜미디어 ‘앤서록’은 가족끼리 퀴즈나 설문에 수시로 응답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대화를 유도한다. 조기웅 대표는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통해 가족 소통을 부활시키고, 중장년의 정신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요소도 도입했다”며 “누군가는 해결해야 할 한국의 문제”라고 말했다.

크림은 한국 대표 콘텐츠 산업인 웹툰에 특화된 AI를 개발했다. 작가의 화풍을 그대로 모사해 웹툰 캐릭터를 일관성 있게 그려낸다. 김지성 대표는 “기존 AI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결과물이 다르지만, 우리 AI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작가 화풍을 모사해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AI 창작물의 가치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그는 “결국 1~2년 내 AI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안정적 연봉과 직장을 포기한 창업

KAIST와 포스텍은 고(故) 김정주(넥슨 창업자)·장병규(크래프톤 창업자) 등을 배출한 한국 벤처·스타트업의 요람이다. KAIST 출신이 창업한 곳은 총 1276곳(2021년 기준)으로 이 기업들의 총매출은 28조원, 고용 규모는 4만7000여 명에 이른다. 두 대학은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창업 지원을 한다. 포스텍은 3개월간 집중 기술 교육을 하는 창업 경진 대회를 비롯해 총 13가지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난 3년간 학교를 거쳐 창업했거나 창업 준비 중인 팀은 107곳에 달한다.

하지만 이런 지원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도전을 택한 이들의 굳은 결심이다. 그리너즈의 김 대표는 “기후 문제 해결에 빠져 전공도 화학공학을 선택했고, 현대차에서 수소 전지 사업을 담당하다 창업을 위해 퇴사하고 대학을 다녔다”고 했다. 모토마인드의 엄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로봇에 빠졌던 한국과학영재학교 동아리 친구들과 창업했다”며 “로봇 개발의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마이다스H&T의 장 대표는 “사업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공학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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