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신춘문예] 초심·뒷심 그리고 열심 ‘3심’으로 오늘까지 왔다
나는 매년 12월 초쯤이면 우체국에 들르곤 했다. 신춘문예를 발송하고 문을 나서면 설렘보다는 왠지 허탈했고 겨울 날씨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올해는 당선될 수 있을까, 낙선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과 함께 혹시나 하는 한 가닥 희망의 불쏘시개를 지피며 위안을 갖기도 했다. 내게 신춘은 매년 그랬다.
교직을 끝으로 백수가 된 나는 할 일이 없어 노트북을 들고 동네 도서관에서 4년을 방황하였다. 지정석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보았지만 맨날 답보 상태였다. 동시 쓰기를 포기하려고 몇 번인가 마음을 먹었지만 이런 말이 떠올랐다. 엉덩이로 글을 쓴다고, 글을 쓰려면 3심이 필요하다는 말. 초심, 뒷심, 열심. 그러나 싸다니기를 좋아하는 내겐 어려운 일이었다. 수년 전 지방 신문사 신춘문예 시로 당선된 적이 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과 한 권의 동시집을 출간했다. 아마도 이런 잠재의식이 동시를 붙잡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매년 통과의례처럼 신춘문예에 응모했지만 결과는 뻔했다. 이왕지사 갈 데까지 가보자라는 각오로 오늘까지 오게 된 것이다. 막상 당선되고 보니 이제 갈 길이 멀다. 두려움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이다.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작품을 쓰고 싶다.
올봄 서해안고속도로 고창 휴게소에서 다섯 살쯤 된 아이가 풀밭에 앉아 민들레 꽃씨를 하늘을 향해 후후 불고 있었다. 날아가는 꽃씨를 보며 신기해하던 아이의 모습이 이번 당선작의 모티브가 됐다. 지금쯤 그 꽃씨들은 어디선가 봄을 향해 기지개 켤 날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동안 동시를 쓰면서 마음에 빚을 진 분들이 많다. 특히 동시 공부 열심히 하라고 회초리를 놓지 않았던 권오삼 선생님과 늘 곁에서 성원해 주었던 김현숙 이대일 조삼현 정형일 시인, 또한 온라인 카페인 동시마을 동시편의점, 시와 공감 회원들의 격려가 있었음을 밝혀 둔다. 끝으로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새해에는 열심히 시의 밭을 일궈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조수옥
-1954년 진도 출생
-협성대 교육대학원 졸업
-1997년 충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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