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금리 오래 간다... 현금보다는 채권”
1년 전 이맘때, 세계 경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곧 다가올 경기 침체’를 얘기했었다. 2023년 내내 세계는 문 앞에 바짝 서 있을지 모를 침체를 기다리며 불안에 시달렸으나, 일부 유럽 국가와 중국 등을 제외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금리를 올렸던 미국은 역대 최저 수준의 실업률을 유지하며 양호한 성장세를 이어가는 저력마저 보였다. “물가상승률을 잡기 위해선 높은 실업률이 필요하다고 했던 경제학자들은 틀렸다”고 말한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현재로선 이기는 분위기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2024년을 ‘전환의 시기’로 한 줄 요약했다. 미국과 유럽이 금리 인하를 시작하겠지만, 팬데믹 이전처럼 초저금리 시대가 당장 오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처럼 거시경제가 탄탄한 나라는 생각보다 긴 중금리 기간을 거치겠고, 물가가 빠르게 안정되는 신흥국은 금리 인하 사이클이 상대적으로 더 빠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중금리 시대, 오래갈 것”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올해도 시장이 연착륙에 대한 희망과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요동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이 지난해 강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이는 코로나 팬데믹 때 깊은 수렁에 빠진 후 회복 중인 과정에 지나지 않으며, 금리가 내린다 해도 통화정책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는 상당히 긴축적인 수준”이라는 게 블랙록의 시각이다. 작년 말 연준 위원들은 올해 말 정책금리를 현재 대비 0.75%포인트 낮은 연 4.6%(중간값)로 예상했다.
JP모건은 올해 상반기 미국 경제가 둔화하겠지만, 심각한 침체 가능성은 25% 수준으로 낮게 봤다. 5%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보였던 작년 3분기에 비해 4분기, 올 1분기는 상대적으로 저조하겠지만, 하반기에 다시 성장률이 올라가는 모양새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골드만삭스 역시 “시장의 기대와 달리 현실은 연준이 현재(2023년 말)와 매우 비슷한 수준에서 금리를 오래 유지할 것이라는 점”이라며 “경제가 연착륙한다면 연준이 금리 인하를 위해 빨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개하는 채권 투자
고금리에서 중금리로 가는 길목에서, 투자자들에게 주식보다 채권에 비중을 더 둘 것을 권하는 IB들이 많다. 경제가 감속이 예상될수록 미래 수익이 약속된 채권의 가치는 올라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올해를 ‘채권의 해’로 평가하면서 채권 투자가 현금 보유보다 나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미국 국채와 회사채 등 미국 투자등급 채권은 앞으로 10~15년간 연 5%가 넘는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 역시 “’TINA(There Is No Alternative)’의 시대는 가고, ‘TARA(There Are Reasonable Alternatives)’ 시대가 왔다”고 평가했다. 주식 말고는 대안이 없던 때가 지나고, 미국채와 투자등급 선진국 회사채 등이 대안인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성격 급한 투자자들은 작년 4분기부터 채권 시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작년 10월 중순 연 5%를 찍었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12월 중순 3.8%대로 뚝 떨어졌다. 불과 두 달 사이 채권 값이 20% 급등하는 초강세를 보인 것이다.
◇중국, 올해도 걱정거리 될 듯
한때 세계 경제의 엔진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걱정거리가 된 중국 경제는 올해 성장세가 4%대 중속(中速)으로 내려앉으며 다소 부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블룸버그가 취합한 투자은행들의 올해 중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4.7%다. 작년 성장률 전망은 5.2%였다.
모건스탠리는 “중국의 미지근한 성장세는 신흥시장 전반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멕시코와 인도를 제외한 신흥시장 주식 비중 축소를 권고했다. 이 투자은행은 “중국 경제가 부채 디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져 나머지 아시아 지역 등에 파급 효과를 미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 정부는 GDP(국내총생산)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작년 3.8%에서 올해 4%로 확대하고, 지급준비율을 인하하는 등 돈 풀기 정책을 통해 부동산 경기 등 방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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